사진속일상

목계 나루

샌. 2004. 8. 13. 08:50

목계 나루터에 다녀왔다.

신경림 시인의 시 중에서도 '목계장터'는 절창의 노래이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예전에 이 시를 만나고 자주 읊조리고 했는데 그래서 목계 나루터는 언젠가 가 보리라 마음에 담고 있었는데 이제야 길을 나서게 되었다.

장호원에서 제천으로 이어지는 38번 국도를 따라 가다가 보면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목계대교가 나오고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목계 나루터이다.

목계 나루는 남한강을 따라 만들어진 나루터 중에서도 가장 큰 나루였다고 하지만 유명해진 것은 아마도 시인의 '목계장터'라는 시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백년 전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백사장은 풀로 덮여있고 인적이 끊겼다. 나룻배들이 오갔을 강물도 한여름의 햇볕 아래 조용하기만 하다. 상류 쪽에 만들어진 댐 탓인지 수심도 얕아서 지금 같아서는 배들이 다니지도 못했을 것이다.

목계 장터는 어디쯤 될까? 저 아래로는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봇짐을 메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겠지. 그리고 건너편 가흥창에는 짐을 나르는 인부들로 북적거렸을 것이다. 지금은 여느 강가와 다를 바 없는 빈 터에서 옛 모습을 상상해 내기란 힘들다. 바로 옆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들의 소음이 정신을 차리라고 한다.

현장의 설명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여년 전 조선조 초기만 해도 중부 내륙 지방의 인구가 소규모 분산 거주하고 있어서 그 당시는 자급자족 시대였으며 또한 여주 이상 상류로 올라오면서 흥창, 가흥창, 목계, 충주, 청풍, 매포, 영월 등 큰 마을을 이루고 있어서 조세곡(租稅穀)이 한성으로 내려가고 올라올 때 내륙 지방에서 식생활에 중요한 소금, 해산물 등 기타 생활 필수품을 싣고 와서 소규모로 포구에서 물물교환 상거래가 이루어졌으나 조선조 후기에 이르러 인구 증가로 상거래 양이 많아지고 상설 시장이 필요함에 따라 지리적 여건을 갖춘 목계 나루터가 내항으로 크게 발달하였다. 그러나 목계 이상의 상류는 봄, 가을 갈수기에 수심이 얕아 수백 섬을 싣는 큰 배가 운행할 수 없고 목계 나루에 수십 척이 선착할 수 있는 넓고 깊은 강과 백사장이 있어서 물물 상거래 장소로 편리하고.....'

강가에 서서 다시 '목계장터'를읊어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민초들 삶이야 늘 폭폭하고 고단한 것은 마찬가지이리라. 그들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대신에 체념과 굴신의 처세훈을 저절로 익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구름, 바람, 들꽃, 떠돌이...... 이런 것들이 어디 낭만적으로 가볍게 불려질 수 있으랴.

강가에 서서 돌아보는 나그네의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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