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묵주

샌. 2004. 6. 7. 14:33

터에 찾아온 J 수녀님에게서 묵주를 선물 받았다.

돌아가신 언니 수녀님이 사용하셨던 묵주인데, 수녀님이 보관하고 계시다가 기도를 많이 하라면서 내 손에 건네 주셨다. 아마 최근에 침체된 내 상태를 전해 들으시고 자극을 주시려는 것 같다.

묵주는 황색의 묵주알에 나무 십자가가 달려있는 작고 소박한 것이다.

손때가 묻고 닳아있는 것이 오랜 기간 수녀님의 기도와 함께 했었음을 알아볼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T 수녀님으로부터도 사용하던 묵주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묵주는 전부 나무로 된 것이었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했는지 십자가의 귀퉁이는 닳아 없어지고 나무 색깔도 까맣게 변해 있었다.

기도가 생활화된 수녀님들이지만 이 정도까지 되자면 보통 세월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분신처럼 묵주가 소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뜻에서 다른 어떤 선물보다도 고맙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수녀님들이 쓰는 묵주를 보면 대체로 수수하다. 값으로 치면 몇 푼 나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물건의 가치는 경제적 값어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수녀님의 묵주에서 느끼게 된다.

그래서 더욱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몇 만 금짜리 물건보다 훨씬 더 소중한 것이다.

자칭 가톨릭 신자라고 하지만 요사이는 일주일에 한번 성당에 나가는 것 외에는 기도며 성서 읽기 등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아내는 이런 나를 날나리 신자라고 한다. 그런데 아직은 날나리든 말든 신자라는 명칭을 붙여주니 다행일지 모른다.

수녀님이 주신 묵주는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가끔씩 주머니에 손이 가고 묵주가 만져지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나는 소중한 그 무엇과 눈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런 것도 종교심이라면 비록 날나리긴 하지만 가톨릭 신자 행세를 한들 하느님도 크게 책망하지 않으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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