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비 개인 인왕산

샌. 2004. 6. 21. 21:12

 

며칠간 비가 계속 내리더니 오늘에야 그친다.

사무실에서 바라보이는 비 개인 인왕산이 아직 물기를 잔뜩 머금은 모습으로 앉아있다.

인왕산(仁王山)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산으로 풍수적으로는 우백호에 해당되는 화강암질의 크지 않은 산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인왕산 호랑이라는 말도 아마도 이런 풍수적 의미가 담겨있지 않은가 싶다.

요즈음은 자주 떠오르는 단어가 무상(無常)이다.

아무리 심한 장대비라도 한 나절을 넘길 수 없듯 성하면 쇠하고, 쇠했다가는 성하는 것이 인간사 뿐만 아니라 만물의 원리가 아닌가 싶다.

전에는 세상을 본질과 현상으로 나누고, 변하지 않는 본질과 쉼없이 운동하고 변하는 현상으로 구분하여 생각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런 구분조차 모호해진다.

과연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복(福)과 락(樂)도 지나가는 한 순간의 달콤함일 뿐이다. 어느 순간 그것은 사라지고 화(禍)와 고(苦)로 바뀌어 있음을 본다.

그래서 순간 순간 변하는 양태를 주시하면 복과 화의 구분조차 무의미함을 알 수가 있다. 즉 어느 한 쪽에 집착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생각임을 알아채게 된다.

이런 자세라면 조금은 인생을 여유롭게 넉넉하게 바라보며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길이 막혔다고 절망에 빠져있지만은 않을 것이고, 탄탄대로가 열렸다고 자만하며 기뻐하지만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인왕산을 바라볼 때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라는 그림이 떠오른다.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진경산수화의 대표 걸작이라는 그 그림이 바로 250여년 전 겸재의 생가터가 있었다고 알려진 이 부근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의 인왕산이나 지금 내가 바라보는 인왕산이나 보이는 시각이 비슷하다. 소나기 내리고 난 후의 여름 인왕산이라는데 때도 아마 지금쯤이 아닐까 싶다.

다만 현대식 집들이 산 아래까지 파고들고, 암질의 산이나무로 덮혀서 전체적인 산의 골격이나 느낌은 그림과는 많이 차이가 난다.

그래도 인왕산을 바라볼 때면 늘 이 그림과 겹쳐져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앉아있는 이쯤 어디메서비 개인 여름의 어느 날 겸재가 붓을 놀리고 있었다는 상상만으로도 즐겁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림에서처럼 비가 그친 뒤 산 아래로 안개 구름이 휘어감는 그런 때를 나도 한 번 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

< 인왕제색도 / 겸재 정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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