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월드컵의 추억

샌. 2003. 12. 13. 12:30

어제 일산에 다녀오면서 월드컵 공원에 들렀다.

예전에는 난지도로 불리웠던 섬이었는데 서울 시민들의 쓰레기를 15년 동안이나 쌓아 올려서 지금은 높이 100m의 산으로 변해 버렸다.

그 쓰레기 위에다 흙을 덮고는 공원으로 조성했다.
올라가 보니 주로 억새가 많이 심어져 있다.

그런데 1억t의 쓰레기더미 위에 서 있는 느낌이 묘했다.
지금 발 밑에서는 온갖 쓰레기들이 썩어가고 있을 것이다. 침출수와 가스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 부패 위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화스럽기만 한 풍경이 아이러니칼했다.

이 공원은 현대 문명의 상징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치 희망의 땅이라도 될 듯이 한 쪽에서는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쉽게 갖다 버린 쓰레기는 분명 그만한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눈을 가린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때 이 쓰레기를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얘기도 있었다.
제발 강이나 땅으로 더 이상의 오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가까이에 월드컵 경기장이 내려다 보였다.
경기장을 보니 작년 월드컵 때 일이 생각났다. 그 때 나는 우리나라경기를 한 게임도 보지 않았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과는 거의 절연되어 있을 때였다. 오랜 기간 신문도 TV도 보지 않고 지냈다. 축구 경기도 우리나라의 선전 소식도 별 관심이 안 생겼다.
온 나라가 월드컵의 광풍에 휩싸여 있는 것이 도리어 의아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오직 한 가지 염원뿐이었다. 한국팀의 승리만 있어야 했다.

시청 앞에 모인 붉은 색의 바다는 섬뜩하게도 느껴졌다.
국민적 에너지의 결집이니 한민족의 뭐니 하며 떠들었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미국과의 게임이 있던 시간에는 한 친구와 서울대공원에서 만났다. 다행히 이 친구도 축구는 좋아하지만 이런 열풍은 마땅찮다며 중계를 안 보려 했다.
덕분에 조용한 공원에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한발짝 비켜난여유와 또는 오만을 둘이서 즐겼는지 모르겠다.

또 어느 나라인가와 붙었을 때는 선배와 술집에 있었다.
모든 의자를 TV로 향해 놓고 난리가 난 속에서 우리는 TV가 보이지 않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술만 퍼마셨다. 다행히 이 선배는 축구보다도 한국보다도 술을 더 사랑했다.
잔뜩 취해서 나온 거리는 자동차의 크렉션 소리, 고함 소리로 가득했다.
거리에 앉아 오랫동안 그 모습을 방관자로 구경했다.

몇 강전이었는지 토요일 오후에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마침 장인 어른 생신이라 여러 가족들이 콘도에 함께 모였다. 안 그래도 별난 사위 취급을 받는데 이 때도 혼자서 빠져나와 주변을 산책하며 보냈다.
박수 소리, 탄식 소리가 멀리서 가끔씩 들렸다.
그러나 내 고집이 그다지 밉게 보이지는 않았다.

세상에 대해 멀어지고 싶었고, 그래서 세상과는 삐딱하게 대치하고 있었던 때가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순화되어 있다.
칼날같이 사는 것도 한 길이지만 많은 길 중에 하나일 뿐임을 지금은 안다.
오히려 베이기 쉬운 위험한 길일 수도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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