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경주의 봄

샌. 2004. 3. 28. 21:35

경주에 출장을 다녀왔다.
남녘 지방이라 역시 봄이 한 발 앞서 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길섶에서는 현호색, 꽃다지, 민들레, 괴불주머니 같은 꽃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안압지의 진달래도 환하게 피어났다.

진달래를 보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 고향에서는 이 꽃을 참꽃이라고 불렀다.
봄이 되면 마을 뒷산이 붉게 물들었다.
지금처럼 나무가 우거지지 않아서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산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배 고프면 진달래를따 먹었다. 그러면 손가락에도 발간 물이 들고 입술은 새까매졌다.
진달래는 가장 어린 시절을 추억케 하는 꽃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보문단지의 벚꽃길은 아직 개화 전이었다.
나무들이 볼그스름하게 꽃망울을 달고 있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 곧 터져 나올 듯 보였다.

그 때가 되면 어느 시인처럼 봄의 환희를 노래할 수 있으리라.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그러나 기차를 타고 오간 길에서 본 봄을 맞는 우리 산하는 왠지 슬프고 아파 보였다.
어디를 가나 파헤치고 허물고 건설하느라 국토는 만신창이가 되고 있었다.
땅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나만의 비관적인 느낌이었을까?

잘은 모르지만 사실 우리나라처럼 전국이 공사중인 나라도 없을 것 같다.
어떨 때는 저 수 많은 건설 장비들을 놀리지 않기 위해서 땅을 파헤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기도 한다.

곧 개통 예정이라는 고속 열차가 시운전을 하는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날렵한 몸매와 속도가 경제 성장과 문명의 상징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왠지 가슴이 답답해진다.
논밭을 덮고 산을 잘라내며 직선을 따라 거침없이 질주하는, 곡선과 장애물을 용납하지 않는 저 씩씩한 기차의 모습에 두려움이 생긴다.
빠르고 편리함을 얻는 대신 우리는 더 소중한 그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길 모퉁이에서 목련 한 그루를 만났다.

목련이 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나무 중의 하나지만 그동안 꽃이 예쁘다는 느낌은 별로 갖지 않았다.
특히 꽃이져서 땅에 떨어진 모습은 다른 꽃에 비해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데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있는 목련은 색다른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마치 하얀 작은 새들이가지에 가득 앉아 날개짓을 하는 것 같았다.

목련은 이렇게 보아야 아름답구나 하는 것을 새롭게 발견했다.
나무 아래에 서서 고개를 위로 젖히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해서 쳐다보면 목련의 또 다른아름다움을 만날 수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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