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춘색(春色)

샌. 2004. 4. 18. 20:05

터에 다녀오는 길은 봄으로 가득했다.
사계절이 모두 나름대로의 특징과 아름다움이 있지만 일년 중 지금 이 때만큼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취하게 하는 때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터의 집 앞에 앉아서, 또는 오고가는 길에서 봄의 향기에 취하고 또 취했다.
몇 장의 사진을 남겼지만 마음의 감흥을 어찌 다 옮길 수 있을까?

세상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으로 무척 아름답다.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
초록이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지지 아니할 것이다.
예컨대 이러한 고귀한 순간의 단풍 또 낙엽송을 보라.
그것이 드물다 하면 이즘의 섶, 밤, 버들 또는 임간(林間)에 있는 이름없는 이 풀 저 풀을 보라.
그의 청신한 자색(姿色), 그의 보드라운 감촉, 그리고 그의 그윽하고 아담한 향훈(香熏), 참으로 놀랄 만한 자연의 이치가 아니며, 또 우리가 충심(衷心)으로 찬미하고 감사할 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가 아닌가!
< 신록예찬 / 이양하 >

또 봄을 맞이합니다.
며칠 전 여행길에서 본, 논물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 시골을 생각합니다.
나도 시골에 작은 집을 가지고 싶었던 것은 아주 옛날부터의 일입니다.
서울 태생이라서 그런 거라고 한 마디로 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만, 변명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넘겼습니다.
시골서 온 나의 옛 학교 친구들의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풍부함과 아름다운 추억의 근거 때문에 나는 미처 당할 수 없는 힘의 한계를 느낀 그런 결론 때문이었습니다.
숲이 세찬 바람으로 무서운 소리를 내고, 밤이 도둑 때문이 아니고 여우나 늑대 때문에 무섭고..... 하는 시골에서 나는 나의 딸들을 길러보고 싶었던 것인데.....
< 봄을 맞이하는 마음 / 이경희 >

민들레와 바이올렛이 피고, 진달래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 살구꽃 그리고 라일락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러한 봄을 사십 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은 아니다.
더구나 봄이 사십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녹슬은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우는 기쁨을 주나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폐(幽閉)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아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간마다 가까와 오는 봄!
< 봄 / 피천득 >

나는 봄기운이 결여된 생활과 사회 국가를 부정한다.
일부러 꾸며서 정을 감추고 웃음을 모르는 채 허장성세에만 기운을 쓰는 인간사회도 저항한다.
우선 우리네는 봄과 화합하고 화음을 일으키며 삶을 이루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천지가 깨어 노래 불러도 이를 들을 줄 모르는 인간사회는 봄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지니, 모름지기 얼었던 마음의 피리가 우주를 향하여 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봄은 왔다가 다시 가고 갔다가 다시 오는.....
제 아무리 호화스런 정원을 가졌다 한들, 무수한 봄새가 그 정원을 지나간다 한들, 그 집과 정원의 주인인 사람의 마음에서 봄 소리가 안 들려오면 그 정원의 봄은 봄이 아니요 사막이나 다름없으리라.
< 어느 날의 일기 / 모윤숙 >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 윤사월/ 박목월 >

봄의 노래는 얼어붙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풀리게 한다.
대화는 고사하고 마주서는 것조차 싫어하던 이웃간에도 담장 너머로웃음을 보내는 즐거움이 봄에 있다.
고양이가 발소리를 죽여가며 이웃집에 살고 있는 사랑을 찾는 것도 봄밤이 아니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흐뭇한 정경이라 하겠다.
이 밤 먼 나그넷길에서 찾아오는 형제가 있다면.... 뜨거운 눈물로 얼굴을 적시며 불길같은 손으로 그의 손을 덥석 잡을 것이다.
막이 올랐어도 관객없는 나의 연극에 혼자 휘파람을 불며 한바탕 춤을 추고 나면 휘청거리는 발길. 분명 산너머 봄의 합창소리가 들려오건만, 그 합창소리 뒤에 폐허의 정적을 감당할 길이 지금 내게는 없다.
< 대춘부(待春賦) / 박송 >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기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김영랑 >

나에게 있어 봄은 갈 때 애달프고 올 때에 슬프다.
어린 시절 이른 봄이면 곧잘 올라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서 묵은 해의 시든 잔디 속에라든가, 어쩌더가 젖혀본 돌 밑에 어린 쑥이 연두빛으로 연한 고개를 뻗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땐 언제나 가슴이 뻐근해졌던 것을 잊지 않는다.
그것은 기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슬픔에 가까운 심정이었다.
`돌아온다`는 말의 의미를 알도록 자라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슬픔같은 것이 봄안개처럼 젖어드는 것이었다.
< 돌아온 봄 / 한무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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