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나무가 아파요

샌. 2004. 5. 25. 14:48

서울 시내를 걷다보면 가로수에 번호가 적힌 명찰이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못을 박아서 나무에 걸어 놓았는데 바라볼 때마다 영 기분이 꺼림찍하다.

물론 충분히 검토를 하고 나무에 아무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겠지만 그렇더라도 나무에 박힌 못은 왠지 불편하다.

몇 년 전에 소백산을 찾았을 때였다.

순흥 쪽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사라는 작은 사찰이 하나 있다.

그런데 절 경내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소나무 두 그루에 큼지막한 대못이 박혀있는 것이었다. 보통 볼 수 있는 못이 아니고 대형 공사장에서나 쓸 법한 아주 큰 못이었다. 그 광경은 날 얼어붙게 만들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뭔가가 적혀있는 플랭카드를 걸기 위해서 그 짓을 한 것이었다.

미물 하나의 생명까지 소중히 여기고 부처로 존중한다는 불가에서 본 광경이기에 더욱 놀라웠다.

서울의 가로수를 보면서 그 때의 충격이 자꾸만 되살아난다. 인간이 필요하다면 다른 생명에 못을 박아도 괜찮다고 하는 무의식적 사고 방식이무섭다. 이것이 나만의 과민반응이라면 좋겠다.

가로수를 보면서 자꾸 눈에 들어오는 명찰, 안 그래도 검은 매연을 뒤집어쓰고 허덕이는 나무에게 꼭 저 방법밖에 없었는지 아쉽기만 하다.

엄마 손을 잡고 가는 어린 아이가 묻는다.

"엄마,나무에 못이 박혀 있어."

"응, 명찰을 달려고 그랬단다."

"엄마, 나무가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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