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749

감나무

감나무 바라보기 김광섭 (.........) 멍청하니 오랫동안 감나무를 바라보면 어떨까 바쁘게 달려가다가 힐끗 한 번 쳐다보고 재빨리 사진 한 장 찍은 다음 앞길 서두르지 말고 그 자리에 서서 또는 앉아서 홀린 듯 하염없이 감나무를 바라보면 어떨까 우리도 잠깐 가을 식구가 되어 작년 늦가을, 친구와 인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시간이 많이 남아서 경복궁에 들어가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북쪽 어느 모퉁이에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아마도 관상용으로 감은 따지 않고 그냥 두었는가 보다. 덕분에 까치 두 마리가 포식하고 있었다. 까치밥이 아니라 까치의 잔칫상이었다.

사진속일상 2003.10.10

어느 묘비석

산길을 가는데 묘비석 하나가 길에 나뒹굴고 있었다. 까만 돌에 정성들여 음각한 글자가 선명한데 어쩌다 제 자리에 있지 못하고 길에 파묻혀 등산객들 발길에 밟히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했다. 그 비문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기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하여 평생을 바쁘게 일 속에서 사시다 가신 아버님께서 잠드시다. 우리들이 짐을 벗겨드리기 전에 먼저 가셨다. 이제 무거웠던 짐을 다 벗어놓으시고 편히 쉬시옵소서. 가을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처럼, 선인들처럼 바쁜 걸음 멈추고 저 흙으로, 고요로 돌아가리라.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사진속일상 2003.10.09

개업 선물

밤새 대전 상가에 다녀온 후 새로 개업한 사우나에 들렀다. 개업 선물로 휴대용 화장지를 주는데 업주 지음이라고 적힌 참승리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꿈은 금이요, 그 성취는 은이며 또한 실패는 다이아몬드니 좌절뒤 도전은 이 모두를 다 갖는 것이다. 아마 이분도 실패와 좌절을 겪으셨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위로와 다짐으로 이런 글귀를 적지 않았을까? 업주님, 사업의 번창을 기원합니다.....

사진속일상 2003.10.03

남이섬에 다녀오다

[남이섬의 메타세콰이어 길 - 멀리 찍힌 다정한 연인이다가오더니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 하늘에 이끌려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도시를 벗어나니 가을이 성큼 가까이 와 있었다.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자연의 순환 -- 고달픈 인생사를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야속할 정도로 자연의 변화는 냉정하다. 우리나라 자살자 수가 노인만 하루에 7명이 넘는다고 하는 보도를 어제 신문에서 보았다. 그렇다면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하루에 얼마나 되는 걸까? 수십명? 수백명? 그들의 절망감은 얼마나 컸던 것일까? 막상 자살을 결행하지 못하는 같은 고통의 또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것은 동시에 나의 아픔에 대한 위로도 된다. 누구 하나 가..

사진속일상 2003.09.30

가을 유감

가을이다. 시름 가득한 세상 가운데로 가을이 오고 있다. 몇 달간 지루하게 계속된 장마가 농부들의 애를 태우더니 명절날 찾아온 `매미`의 날개짓으로 남부 지방은 쑥대밭이 되었다. Exodus Korea의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한국을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살아가는게 폭폭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그건 비단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악질적인 투기와 싸움박질, 있는 사람은 더욱 부자가 되고없는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기고 있다. 누구는 소주 한 잔 마시기도 힘든데, 누구는 천만원짜리 양주잔을 홀짝인다. 이 정권에 걸었던 작은 희망마저 이젠 접어야할까 보다. 어제 저녁에 TV로 백기완님의 노나메기 강의를 들었다. `노나메기`란 같이 일하..

사진속일상 2003.09.16

어머니의 송편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고, 어머니는 가마솥에서 떡을 찝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은 저의 몫이죠. 이내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구수한 떡 내음이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언제 느껴도 풍성하고 따스한 추석 풍경..... 그러나 세월은 많은 것을 떠나 보내고, 낡게 만들고, 지금은 어머니의 등마저 휘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어머니가 쪄 주시는 송편 맛을 볼 수 있을런지... 정다운 것과 만나는 기쁨 속에는 떠나 보내야 하는 슬픔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사진속일상 200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