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750

동생네 집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동해 바다로 갔다. 3시간여를 달려간 곳은 낙산 해수욕장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더니 아침이 되니 고요해 졌다. 가지 가지 사연을 안고선 사람들 너머로 해가 떠올랐다. 어제 밤에는 해안가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돌아보니 아내와의 여행도 근 5년 만이다. 자주 여행을 다닌 편이었는데 터에 미친 뒤로는 발길이 뚝 끊어졌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잃게 되는 터였다.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것이 어느 때가 되면 하찮은 것으로 전락해 버린다. 그리고 반대로 하찮게 여겼던 것의 가치가 새롭게 살아나기도 한다. 내 주위를 스쳐가는 만상들은 상대적이며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그 중 어느 하나에 집착함이 얼마나 우스운 노릇인가! 나는 왜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고 가볍게 살기가 힘..

사진속일상 2004.02.28

봄이 오는 소리

자전거를 타고 집 옆에 있는 공원을 찾다. 며칠 전에 비가 내린 후 기온은 다시 내려갔지만 대기 중에는 이미 봄기운이 완연하다.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나 표정에서도 봄이 오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간지럼 같이 속삭임 같이 봄의 숨결이 잠자고 있던 생명체를 깨우고 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보인다. 관음(觀音)이라고 불리는 부처가 있다는데 `소리를 본다`는 의미를 요즈음 같으면 나같이 아둔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버드나무에도 어느덧 초록의 물이 들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마흔 번 넘게 봄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고 축복이라고 한 어느 분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이 손님을 지금 몇 번째나 맞고 있는가?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이 기적의 잔치를 다시 맞을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그 외에 더..

사진속일상 2004.02.24

산야초차 선물

몇 달 전에 `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이야기`라는 책을 샀다. 책을 구매한 사람중에서 추첨을 해서 저자가 직접 덖은 산야초차를 선물한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냥 잊고 지냈다. 그런데 한참 뒤에 당첨되었다는 연락이 왔고, 작은 산야초차 한 봉지가 배달되어 왔다. 뚜껑을 여니 연잎차라고 적혀 있는데, 달여 마시거나 녹차처럼 여러번 우려 마시라고 되어있다. 작은 선물이지만 무척 감사하고 기뻤다. 지리산 어딘가에서 자라던 연잎이 누군가의 정성에 의해 이렇게 만들어져서 내 앞에 놓여있다. 내가 이 차를 마시는 것은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과 동시에 지리산의 정기를 내 속에 모시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전문희님은 특이한 분이다. 서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지내다가 어머니의 암 치료를 위해서고향으로 ..

사진속일상 2004.02.06

자전거 산책

날씨가 포근해졌다. 따스한 햇살에 봄기운마저 느껴진다. 그동안 쉬고 있던 자전거를 닦고 기름친 다음에 한강으로 타러 나간다. 그러나 강변의 바람은 의외로 차다. 가만 있으면 따스한데 달리면 찬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손이 시럽고 눈에서는 눈물도 나온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하다. 도시의 가운데에서그나마 강변을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잘 마련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서울의 동과 서를 완전히 관통할 수도 있고, 또 각 지천을 따라서도 자전거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욕심이라면 이런 자전거 도로가 일반 거리에도 되어 있어서 누구나 손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시의 인구 밀도가 높고 길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무리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앞으로의 교통 정책은 자동차 중심의 구조에서..

사진속일상 2004.01.31

한강이 얼다

며칠간 된추위가 계속되더니 한강이 꽁꽁 얼었다. 설날을 정점으로 해서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씨가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오늘한강에 나가 보았는데 한낮인데도 강변의 바람은 아직 칼같이 매섭다. 이렇게 기온이 떨어지면 고통받는 것은 대개 서민들이다. 계절로 보아서는 당연히 추워야 하고 또 추운 것이 정상이지만, 없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혹독한 때이기도 하다. 이번 추위에도 노숙자가 사망하고, 보온이 잘 안된 보일러나 수도관이 얼어터지고 하는 보도들이 안타깝게 한다. 지금 나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스위치 하나만 돌리면 여름이 무색하게지내고 있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실내에서도 내복을 입고 지내보자고 결심한 적도 있지만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그리고 난방비 걱정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골로 내려가면 ..

사진속일상 2004.01.25

Delete!

컴퓨터에는 [Delete] 키가 있어서 원하는 것을 지울 수가 있다. 그런데 세상 일에도 작동되는 [Delete] 키는 없을까? 이 세상을 프로그래밍한 절대 존재의 손에는 이 키가 들려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술봉 같은이 키를 잠시나마 빌릴 수 있다면..... 돈만이 최고라고 외쳐대는 물신(物神)의 우상숭배를 Delete! 개발과 성장에 중독된 자본주의의 탐욕을 Delete! 자본의 부스러기에 기생하는 사이비 설교자들을 Delete!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와 어리석음을 Delete! 차떼기로 주고 받으면서도 뻔뻔하기만 한 저 도적놈들의 소굴을 Delete! 권력에 아부하느라 꼬리치기 바쁜 똥강아지들을 Delete! 이리저리 눈치 보느라 눈만 반들반들해진 영악한 쥐새끼들을 Delete! 돈이 되는 ..

사진속일상 2004.01.19

겨울 산길을 걷다

어제는 직장 동료들과 예봉산(禮峰山)을 올랐다. 예봉산은 경기도 남양주군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683m이다. 옛날에는 겨울 한양의 땔감을 대부분 이 산에서 벌채해 한강을 따라 날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큰 나무는 별로 없고, 다만 군데 군데 눈에 뜨이는 노거목들이 그 때의 정황을 전해주고 있다. 산의 이름이나 생김새는 다르지만 산에 들면 그런 구별은 사라지고 어느 산에서나 공통된 마음의 넉넉함과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산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이런 마음의 여유일 것이다. 그것은 아직 우리가 이해하기 못하는 산의 정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산 기운이 우리 마음을 순화시키고 세상의 욕망을 잠재워 준다고 말이다. 바닥에서 아웅다웅 다투며 속 끓이고 하던 것들이 산길을 걸으면 기이하게도 봄 ..

사진속일상 2004.01.17

동면(冬眠)

한겨울이 되니 자꾸 졸음이 찾아온다. 동면(冬眠)에 들어가야 할 때인가 보다. 일상의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그간 블로그 신세를 많이 졌다. 덕분에 내 본 일기장은 부피가 얇아져 버렸지만..... 또 몇기억에 남는 분과 만난 것도 고마운 일이다. 그래도 눈을 뜨는 틈틈에는 이곳에 들릴 예정이다. 모든 분들, 새해 복(福) 많이 지으시고, 뜻하신 일들 잘 이루어지시길 기도드립니다.

사진속일상 2003.12.29

성탄

"이 세상으로부터 그대의 이름을 떼어버린다면, 세계가 그 근저로부터 뒤흔들리리라." --르낭 오전 성탄 미사에 다녀오다. 성당 마당과 제대 앞에는 아기 예수가 모셔져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예했고, 아기 예수를 경배했다. 역사적 예수가 어떤 분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또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우리 영혼을 일깨우는예수와의 만남은 어느 순간 우리를 찾아온다. 그것은 개인에게전 생애를 변화시키는 특별한 만남이 될 수도 있다. 내 존재와 삶을 변화시키는 그런 실존적 만남이야말로 예수가 이 땅에 찾아온 이유일 것이다. 20대 이후 몇 차례 이분과의 만남을 경험했지만 나는 아직 이분을 잘 모른다. 어느 때는그림자를 보고 이분의 ..

사진속일상 2003.12.25

Happy Christmas!

♡ 올림픽공원의 크리스마스 트리 오전까지 안개가 자욱했다.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포근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을텐데...... ................................ 오늘은 가난과 낮음을 택하신 그 분을 텅 빈 마음이 되어 맞이하고 싶다. 내 마음 속에 그 분의 따스한 불빛 하나 간직하고 싶다. .............................. 모든 분들, 그리고 아름다운 창조 세계의 뭇 존재들과 함께 Happy Christmas! 를......... .........................

사진속일상 2003.12.24

금강에는 철새가 없다

어제 몇이서 금강 하구로 철새를 보러 갔다. 혹시나 가창오리 떼의 저녁 군무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금강에서는 철새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숫자를 셀 수 있을 정도의 오리류들 만이 수면 위에 작은 점으로 떠있었다. 탐조대의 안내 데스크에 물으니 약 30만 마리가 와 있다고 하는데 다들 어디에 숨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으나 오리 무리의 멋진 비행은 끝내 보지 못했다. 실망한 우리들 머리 위로 예닐곱 마리의 기러기 가족이 북쪽으로 날아갔다. 철새를 본다고 기대에 부풀어 따라나섰던한 사람은 아주 실망한 눈치다. 때를 잘못 선택했기도 있지만 이런 것은 TV를 통해 눈 맛을 버려놓은 탓도있지 않는가 싶다. 우리는화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너무나 멋진 광경을 ..

사진속일상 2003.12.17

월드컵의 추억

어제 일산에 다녀오면서 월드컵 공원에 들렀다. 예전에는 난지도로 불리웠던 섬이었는데 서울 시민들의 쓰레기를 15년 동안이나 쌓아 올려서 지금은 높이 100m의 산으로 변해 버렸다. 그 쓰레기 위에다 흙을 덮고는 공원으로 조성했다. 올라가 보니 주로 억새가 많이 심어져 있다. 그런데 1억t의 쓰레기더미 위에 서 있는 느낌이 묘했다. 지금 발 밑에서는 온갖 쓰레기들이 썩어가고 있을 것이다. 침출수와 가스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 부패 위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화스럽기만 한 풍경이 아이러니칼했다. 이 공원은 현대 문명의 상징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치 희망의 땅이라도 될 듯이 한 쪽에서는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쉽게 갖다 버린 쓰레기는 분명 그만한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

사진속일상 2003.12.13

아내의 내복을 입다

날씨가 추워져서 내복을 입으려니까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아내의 내복을 입기로 했다. 아랫도리 중에서 제일 헐렁한 것을 골라 입으니 그런대로 몸에 맞는다. 여자 옷을 입으면 고추가 떨어진다며 아내가놀린다. 그러나 이젠 별로 쓸데도 없지 않느냐며 같이 웃다. 다른 사람 몰래 바지를 치켜 올리고 보면 무척 재미있다. 분홍색 바탕에는 예쁜 무늬도 들어 있다. 불편한 점이라면 화장실에 가서 거시기할 때 뿐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의아해 하겠지. 만약 안다면 不出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ㅋㅋㅋ......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하든 재미있다. 똑 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이런 사소한 변화를 즐긴들 누가 탓하랴.

사진속일상 2003.12.10

그림자

어제 밤, 퇴근하는 길 가로등 불빛을 받은 나무 그림자가 벽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물체의 그림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길 위에 또는 벽에 드리운 그림자들, 특히 앙상한 나무 가지가 만드는 그림자 무늬에는 자주 발길을 멈추게 된다. 플라톤은 동굴 비유로 그림자 현실과 이데아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우리네 삶이란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더 높은 차원의 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림자가 주는 이미지는 특별하다. 그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는 듯 하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다. 罔兩이 景에게 물었다. "당신이 조금 전에는 걸어가더니 지금은 멈추었고, 조금 전에는 앉았더니 지금은 일어섰으니, 왜 그렇게 줏대가 없소?" 景이 대답했다. "내가 딴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것 ..

사진속일상 2003.12.06

겨울 나무 아래서

겨울 나무 밑에 앉아 있다. 벌거벗은 나신(裸身)이지만 부끄러움은 없다. 편안하다. 고개를 드니 나무가지가 그리는 기하학적인 선의 그림이 아름답다. 세 나무가 공중에서는 서로 뒤엉켜 마치 한 몸인 듯 사이좋게 어울려 있다. 겉치레를 버린 겨울 나무는 솔직하고 단순하다. 무척 가벼울 것 같다. 그러나 속으로는 추운 계절을 견뎌내려는 스스로의 엄격함이 있을 것이다. 통하는 것이 남녀간에 정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과 나무 사이에도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통하는 기운이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 이른 봄에 후배와 축령산으로 야생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이 친구는 돋보기와 청진기를 들고 왔다. 산에 가는데 왠 청진기인가. 정신없이꽃 사진을 찍다가 둘러보니 친구는 나무 하나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

사진속일상 2003.12.04

김칫독을 묻으며

오늘 아침 고향 마을은 늦게까지 안개가 자욱했다. 고향집 뒤 야산의 나무들도 아침 안개에 오랫동안 젖어 있었다. 어제는 어머니, 동생네 식구들과 같이 겨울 김장을 담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터에 들러 집 뒤안에 김칫독을묻었다. .................... 눈 내리는 날, 집 뒤안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발걸음이 아름다운 그런 그리운 집이 될 수 있을려나..... ...............................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사진속일상 2003.11.30

철없는 개나리

한강변 둑방의 개나리가 꽃을 피우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작년 이맘때 쯤에도 그러더니 올해도 마찬가지다. 이러다간 봄 소식만 아니라 겨울을 알리는 꽃으로도 변할지 모르겠다. 잎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았지만 그 속으로는 변함없이 생명의 기운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적절한 조건만 되면 숨어있던 생명은 화산처럼 분출한다. 저 작은 꽃에서 생명의 무한한 힘을 느끼게 된다.

사진속일상 2003.11.26

겨울의 시작

서울은 그래도 한강이 있어 아름답다. 한강변의 넓은 억새밭을 노랗게 물들이며 빌딩들 사이로 해가 진다. 가을도 저물었다. 어제부터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며 겨울의 시작을 알린다. 지금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서야 겨울 준비가 별 다른게 없지만, 옛날에는 김장을 하고 연탄을 들여 놓으며 겨울 준비에 부산했다. 그 당시 할머니, 동생과 셋이 살 때에도 배추를 50포기넘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좁은 부엌에 연탄을 가득 쌓고, 냉기를 막기 위해 방 창문 바깥에는 비닐을 붙였다. 벽으로는 왠 찬 바람이 그렇게 들어 왔는지 한창 추울 때는 이불로 벽에 커튼을 쳐야했다. 가끔씩 연탄 가스가 들어와서 어떤 날 아침은 정신이 몽롱해서 깨어났다. 그래도 밖에 나가 찬 공기를 쐬면 이내 정신이 들었다. 작은방 한 칸에 옹..

사진속일상 2003.11.23

행복한 시간

자전거를 세워 놓고 강변에 앉아 석양을 본다. 퇴근할 때 자주 만나는 저녁 풍경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시간, 한낮의 분주함과 소란함이 서서히 잦아들고 모든 사물이 무채색 속으로 스며드는 안식과 평화의 시간, 비록 하찮은 하루였을지라도 상처 입고, 상처를 주며 아쉽기만 한 하루였을지라도 어쩐지 모든 걸 다 사랑하고 용서할 것 같은 넉넉한 마음이 되는시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비록 도시의 한가운데지만 이런 저녁 무렵이 나는 가장 좋다.

사진속일상 2003.11.14

솔직한 급훈

어느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 걸려 있는 급훈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설명을 듣고는 이해가 되었지만 그러나 뒷 맛이 씁쓸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주위에는 유명 대학들이 여럿 있다. 연대, 이화여대, 서강대, 홍익대, 서울대, 건국대, 한양대 등등..... 여기에 다니는 학생들은 주로 2호선을 타고 등하교를 한다. 결국 `2호선을 타자`란 말은 이런 유명 대학들에 진학하자는 뜻일게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겉으로는 전인 교육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은 입시 학원에 다름없다. 교육 과정이나 활동이 지적 분야의 경쟁에만 편중되어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성실이라든가 노력, 착함 같은 인성적 측면을 강조했는데 이젠 노골적으로 입시 경쟁에 내몰고 있다. 그나마 솔직하다고 인정해주어야 할 것인지..

사진속일상 2003.11.07

쓸쓸해서 아름다운 계절

터에 다녀오는 길에 영릉에 들리다. 쓸쓸해서 도리어 아름다운 계절..... 가을은 쓸쓸함과 아름다움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루는 계절이다. 오늘은 눈물이 날 정도로 햇살이 눈부시다. 낙엽 지는 나무 아래서 어린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푸르다. 옆의 한 아주머니 왈 "불경기라더니 그렇지도 않네." 그만큼 나들이 인파가 경내에 가득하다. 아무리 사는게 폭폭할지라도 이런 여유마저 없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그런데 연못의 잉어는 전혀 딴 세상이다. 관람객들이 한 봉지에 천원씩 사서 던져주는 먹이가 계속 하늘에서 떨어진다. "와, 쟤들은 배 터져서 죽겠다." 그냥 이리저리 지느러미만 움직이면 된다. 먹이를 구하기 수월해서인가, 쉼없이 먹어대기만 한다. 그래서 길이가 3m나 되는 놈도 있다고 한다. 누군가 ..

사진속일상 2003.10.26

따스함이 그립다

날씨가 싸늘해졌다. 따스한 온기가 그리운 때가 왔다. 그러나 물리적 온기보다는 마음의 온기, 인정의 따스함이 더욱 그리운 때이다. 인사동 찻집에서 저 등불을 보았다. 가스등 모양을 한 작은 등이었는데 참 따스하게 느껴졌다. 우리속에도 저런 마음의 등불이 들어 있을까? 때가 낀 유리문도닦고 주위도 깨끗하게 청소한 뒤에 기름도 알맞게 채워서 내 마음의 등불도 저렇게 따스한 불 밝히고 싶다. 우리 모두 욕심과 미움과 다툼을 버리고 마음 속에작은 빛 하나씩 밝히고 산다면 그래서 각자의 불빛이 밖으로 피어나와 서로를 비추어 준다면 이 세상이 훨씬 더 밝아지고 따스해 질 것 같다. ----------------------------------------------------- 다와는 무엇이 즐거운지 계속 콧노래를 ..

사진속일상 2003.10.24

가을엔 편지를 띄우세요

가을비가 내린다. 도시의 아스팔트 길도, 노랗게 물들어가는은행나무 가로수도 비에젖고 있다. 내 마음도 비에 젖는다. 아침부터 분주하던 마음이 가을비에 젖어 차분해진다. 이러다가는 너무 가라앉을까 봐서 걱정이다. 또 우울증이 찾아 오면 어떡하나..... 그러나 적당한 우울과 쓸쓸함은 정신의 보약이 될 수도 있다. 자연과 차단된 여기 사무실 가운데서도 빗소리는 나를 가을의 스산한 늪 속으로 빠지게 한다. [반가운 분이 보내준 갈대 사진 중 하나] 한참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분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 아름다운 가을에... 행복하세요.....` 짧은 내용이었으나 따스했다. 그리고 서정 가득한 가을 풍경 사진 여러 장을 같이 보내 주었다. 나도 오늘은 뜸했던 친구들에게 편지를 띄어야겠다. 오해로 소원해진 여러 사..

사진속일상 2003.10.21

코스모스 씨를 받다

잠실 쪽 한강 둔치에는 긴 코스모스 길이 있다. 두 달 가까이 아름다운 꽃을 피어 주어서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잎도 시들고, 꽃들도 대부분 지고 그 자리에는 까만 씨가 맺혔다. 퇴근하면서 며칠동안 이 씨를 받았다. 날카로운 끝 부분에 찔리기도 하고, 손가락에서는 코스모스 냄새가 배어 버렸다. 내년 봄에는 내 시골 터에다 코스모스 씨를 뿌릴 계획이다. 집과 마당이 코스모스로 둘러싸여 있는 모양을 그려보면 즐겁다. 욕심이라면 동네 길도 코스모스 길을 만들고 싶다. 온 동네가 코스모스 꽃밭인 시골 마을, 이것 역시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친구들은 씨를 맺고 벌써 땅에 떨어져 내년을 약속하고 있는데, 어떤 친구는 이제야 꽃잎을 활짝 피우고 ..

사진속일상 2003.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