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남도여행

샌. 2005. 2. 27. 19:29

아이들이 자라는데 따라 여행 패턴도 변하는 것 같다. 어릴 때는 아이들 중심으로 여행지가 결정되고 주로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이 되지만, 그러나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대개 끝이 나버린다. 이젠 부모를 따라다니지 않으려고 하거니와 부모 쪽에서도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다. 학원에 가야하고 공부를 해야 된다는데 그걸 이길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막내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이제 부부만의 오붓한 여행이 시작된다. 이때쯤 되면 인생의 한 고비가 지나갔음을 저절로 느끼게 되는 나이가 되는 것이다.


바쁜 세상살이에서 아내와 떠나는 여행이라야 1년에 한두 번이 고작이다. 그러나 바쁜 세상살이란 어쩌면 핑계일지 모른다. 여행을 준비하고 떠나는 순간이 되어서야 왜 이런 행복한 시간을 자꾸만 뒤로 미루며 삶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만 했는지 어리석은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이번 여행은 멀리 남해로 정했다. 눈과 바람으로 요동치던 날씨도 아침이 되니 잦아들고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반갑다.



 

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청도 운문사에 도착하다. 운문사는 560년에 창건된 사찰인데 지금은 승가대학이 있어 많은 비구니 학승들이 공부를 하고 있는 곳이다. 인상적인 것은 절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우람한 소나무와 전나무들이다. 면학정진하는 고찰의 분위기를 이 나무들이 살려주는 것 같다. 경내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유명한 처진소나무가 있다. 멀리서 보면 우산을 편 것 같지만 밑에 들어가 봐야 이 나무의 위용과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또 눈에 띄는 것은 여러 가지 모양의 담장이다. 돌이나 흙, 또는 기와를 사용해 만든 담장은 서로 모양도 다르면서 아름답다. 담의 기능적 측면 외에 이런 미적인 효과를 더한 마음이 고맙고 따스하게 느껴진다. 휴식 시간인지 경내에는 산책을 하는 스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분들의 가슴마다 품고 있을 서늘한 얼음 조각을 상상하며 나는 고개를 떨군다.

 

 

다음에 찾아간 곳은 천성산이다. 지율스님으로 인하여 환경 운동 뉴스의 중심지가 된 산이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천성산 내원사에서 지율스님은 산감(山監)으로 계신다. 내원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천성산 아랫자락의 품에 안겨 있는 작고 아담한 비구니 사찰이다. 뜰에 서서 천성산을 바라보며 무엇이 한 스님을 극단적인(?) 환경운동가로 변화시켰는지를 상상해 보지만 어렵기만 하다.

 

지율스님은 미국의 줄리아 힐을 생각나게 한다. 헤드워터 숲속에 있는 2천년생 삼나무가 어느 목재회사에 의해 베어질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녀는 나무 위로 올라간다. 지상 55미터 되는 곳에 한 평가량의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회사 측에서는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끌어내리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나무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위협하며 2년간을 버텼다. 그곳은 개인 사유지기 때문에 사실 나무를 베려는 것을 막을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회사로부터 나무를 베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회사는 그녀에게 6천만 원에 해당하는 돈을 받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 돈은 전국에서 후원자들이 모금해서 지불했으며, 회사 또한 그 돈을 산림연구소에 기부했다고 한다. 스물두 살 된 한 평범한 처녀가 이루어낸 일인 것이다.

 

지율스님에 대해서는 무모하고 극단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에 대해서 하는 행위가 더 극단적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나는 동감한다. 아무 거리낌 없이 산을 자르고, 구멍을 뚫고 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과 저돌적 맹목성이 미운 것이다.


어두워져서 충무 숙소에 도착하다.


둘째 날은 거제도를 일주하기로 하다. 잔뜩 흐린 날씨가 거제도에 들어서니 비로 변하며 바람까지 거세다. 나들이 길에 맑고 따스한 날씨가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인생살이처럼 그건 사람의 기대일 뿐이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런 험한 날씨가 또 다른 바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기회도 되는 것이다.


거제대교를 지나서 섬에 들어섰는데 해금강까지 50km라는 이정표가 보통 크기의 섬이 아님을 말해 준다. 몇 개인가의 산을 넘어서 여차 해변에 발을 내리다. 이곳의 특징은 학동과 함께 해변이 작고 동글동글한 돌들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몽돌이라고 부른다. 무수한 몽돌이 바닷가에 깔려있는 풍경도 신기하지만 더욱 발길을 붙드는 것은 파도가 쓸려나갈 때 몽돌이 구르면서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이다. 차르르르~ 하며 잦아드는 소리는 맑고도 명랑하다. 땅을 연모하여 들고나는 파도의 애무에 땅이 간지럽다는 듯 웃는 소리 같기도 하다. 이 소리가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들어있다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비록 날은 흐리고 궂지만 이 소리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거제도 여행은 멋졌다는 생각이 든다.



 

해변을 따라 나있는 도로는 드라이브 길로도 일품이다. 고개를 지나면 바다가 나오고 고만고만한 사람 사는 어촌 풍경이 평화롭게 이어진다. 굳이 명승지나 기념물들을 찾을 필요가 없다. 차라리 이런 평범한 풍경들에서 더 큰 감동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창선-삼천포대교를 지나 남해도에 들어서며 만난 도로변 모텔에 여장을 풀다. 밤이 되어 건너편 사천시 위로 떠오른 보름달이며, 대교의 야경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셋째 날은 다시 날씨가 맑아지다. 창선에서 상주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바닷가 길은 환상의 드라이브 길이다. 이번 여행에서 거제도, 남해도, 돌산도로 이어지는 긴 길을 달렸지만 기억에 남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면 남해도의 동쪽 창선에서부터 남쪽 상주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변길이다. 길은 따스하고 부드럽다. 맑고 푸른 하늘과 바다, 점점이 떠있는 섬들, 곡선의 해안선과 사람의 마을들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섬의 느낌도 조용하고 정갈하다. 밭을 덮고 있는 파릇파릇한 싹들은 마늘인 듯 하다. 가는 도중에 물건리 방조어부림과 미조항의 상록수림을 보다. 그리고 상주해수욕장의 고운 모래사장과 송림도 잊혀지지 않을 풍광이다.

 


 

금산을 등산하다. 금산(錦山)은 해발 681m로 상주해수욕장에 인접해 있다. 정상 부근은 암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밑에서 보아도 눈길을 끈다. 길은 일정한 경사에 거의 계단으로 되어있어 오르내리는 데는 좀 지루하고 힘들다. 그러나 정상 부근에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거대한 바위들이 연출하는 멋진 경치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보리암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경도 멋지다. 보리암을 처음에는 작은 암자 정도로 예상했다. 그러나 올라가서 보니 그 규모의 거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다시 큰 건물을 하나 신축 중이다. 이 건물이 뒤의 금산을 가리니 영 거북하다. 이런 명산에 자연 풍광을 해치지 않는 수준의 소담한 암자라면 얼마나 잘 어울릴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산 정상에다 거대 불상을 세우고, 수 층짜리 절집을 짓고, 시멘트 진입로를 만드는 것이 과연 부처님의 정신을 펼치는 것인지는 아무래도 의문이다. 지난 지율스님 단식 때도 스님들부터 먼저 반성하라는 반론이 있었다. 꼭 불교만은 아닐 것이다. 현대 종교의 뻔뻔스러움과 오만함에 대한 이 느낌이 제발 나 하나만의 착각이라면 좋겠다.


 

다시 길로 들어서 여수 오동도에 가다. 오동도는 여수 동쪽에 있는 작은 섬인데 700여m의 방파제 길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오동도는 동백꽃으로 유명하다. 나는 초행길이고 아내는 30년 만에 다시 온 것이라 한다. 전주에 살던 아내는 처녀 적에 친구들과 이곳으로 자주 놀러 왔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그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 모양이다. 활짝 핀 동백꽃을 기대했지만 동백은 오늘도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안내 글에는 꽃이 10월에 피기 시작해 다음 해 4월까지 온 섬을 뒤덮는다는데 어쩐 일인지 그 많은 동백나무에서 피어 있는 동백꽃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다만 기대 이상으로 섬 전체에는 동백나무, 소나무, 후박나무 같은 오래된 나무들이 울창하다. 그리고 하나 반가웠던 것은 숲 사이로 난 산책로를 있는 나무를 그대로 살리면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비록 지나가기에는 다소 불편하지만 이렇게 나무와 공존하는 마음 자세를 보여주는 것 같아 고맙다. 오동도는 아내가 무척 오고 싶어 했다. 만족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나에게는 더없이 행복하다.


돌산도로 들어와 향일암에서 숙소를 정하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 아쉬운 탓인지 회를 시키고 소주를 두 병이나 비우다. 바람이 세게 불며 날씨가 추워지다. 캄캄한 바닷가에 나가 보았으나 거센 바람으로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다.


 

여행의 마지막 날, 향일암에서 일출을 보려고 했으나 일어나지 못하다. 바람 핑계를 댔지만 아마도 어제의 소주 탓이리라. 느즈막이 일어나 느릿느릿 향일암에 오르다. 그런 걸음으로도 20분 정도 걸리는 짧은 거리이다. 향일암(向日庵)은 금오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 우리나라 4대 기도도량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그 이름 탓인지 해돋이를 보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실제 향일암에서 보는 남해의 전망은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시원하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향일암은 뒷산과 어울리게 몇 채의 절집이 아기자기하게 잘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향일암 뜰에서 의외로 예쁜 동백꽃을 만났다. 바다를 면한 오래된 동백나무가 예쁜 꽃들을 점점이 달고 있다. 꽃잎이 활짝 벌어진 것보다는 이렇게 종 모양으로 말려있는 것이 훨씬 아름답게 보인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는 머리 속으로만 그리던 만개한 동백꽃과 그리고 수선화, 매화를 보고 싶었다. 비록 모두는 아니지만 이렇게 여행의 마지막 날에 그 중 하나를 선물해 주시니 참 고마운 일이다.


 

돌아올 때는 돌산도의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어촌 풍경이야 어디나 대개 비슷하지만 이쪽은 바닷물 색이 너무나 곱다. 초록빛이라 해야 할지, 쪽빛이라 해야 할지 저 고운 색깔을 묘사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 여행에서 다시 절감한 것은 자연은 역시 위대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경치가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인간이 찾아들고, 그 인간이 하는 행위가 결코 탐탁치는 않지만 그래도 말없이 보듬어주고 품어주는 자연은 위대하고 아름답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누구는 나를 찾아 떠나는 길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대개 본연의 나는 잊어버리고 일상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나를 자신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잘 난 척, 사랑하는 척하며 살아가는 나. 늘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그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악다구니를 쓰며 생존해 가는 모습이 불쌍해 보일 때 우리는 여행을 떠올린다. 그것은 본연의 나가 부르는 소리일지 모른다. 그리고 길을 떠나야 길이 보인다는 말도 옳은 말이다. 노자(老子)에 ‘不出戶 知天下’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 같은 범부는 가끔씩은 이렇게 여행길에 떠날 일이다. 의식하든 못 하든 우리가 낯선 풍경이나 사람들을 통해서 만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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