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많지만 그 중에서도 더 아름다운 길이 있다. 광화문에서 영추문(迎秋門)을 지나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경복궁의 서편 돌담길은 내가 사랑하는 길이면서 출퇴근로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직장까지 이 길을 따라 걸어 다닌다.
키 높은 돌담과 아름드리 버즘나무가 도열한 이 길은 청와대 앞이라 경비가 삼엄해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아 호젓해서 좋다. 대개의 경우 사진처럼 길이 텅 비어 있다.
덕수궁 돌담길이 아기자기하고 여성적이라면, 경복궁 돌담길은 시원시원하게 뻗어있다. 이 길에 들면 시선이 단순해지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고달팠던 하루의 일상도 이 길에 서면 스르르 자취를 감추고 내면의 존재감이 다시 살아난다. 나에게는 사색과 성찰의 고마운 길이다.
이 길은 걷는 것이 즐거운 일임을 가르쳐 준다. 어떤 날은 길이 끝남이 아쉬워 경복궁으로 들어가 한 바뤼 돌고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시의 길은 피곤하다.연신 신호등이 길을 막고,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시끄러운 소음이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이러니 도시의 사람들 표정도 전투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 길을 만들지만, 길도 사람을 만든다. 이젠 도시에도 사람 중심의 아름답고 조용한 길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