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기원 바둑

샌. 2022. 11. 18. 10:49

일주일 전 한탄강 트레킹을 다녀온 후 처음으로 바깥 외출을 했다. 관성은 물리 세계만 아니라 사람의 정신에도 있는 것 같다. 지금 나한테는 움직이기 싫고 사람을 만나기 마땅치 않아하는 관성이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가만히 두면 어디로 계속 굴러갈지 모르겠다.

 

집을 나서니 단풍의 막바지가 반긴다. 눈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양재의 한 기원에서 바둑 친구와 만났다.

 

가끔은 이렇게 바둑돌을 만지면서 돌이 바둑판과 부딪치는 쨍쨍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런 멋이 없는 인터넷 바둑은 영 적응이 안 된다. 바둑은 생각하는 맛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 바둑은 수읽기가 생략되고 감각적이다. 장고파인 나한테는 맞지 않는다. 기원 바둑에서는 아날로그 감성을 만끽한다.

 

기원 풍경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금연이라는 점만 달라졌다. 옛날에 기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실내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늘 하는 첫마디가 "와, 너구리 굴이다!"였다. 물론 나도 공기 오염에 기여를 열심히 했다. 수를 고민할 때, 또는 통쾌한 한 수를 놓을 때 들이키는 담배 맛을 무엇에 비유할까. 그에 비하면 요사이 기원은 맹숭맹숭하다.

 

담배 하면 바둑 기사 중에서는 조훈현이 떠오른다. 그는 바둑 한 판을 둘 때면 장미 담배를 네댓 갑씩 피웠다. 담배 중에서도 특별히 장미를 얼마나 아꼈는지 장미가 단종되려 하자 만 갑을 사서 집에 쌓아두었다는 일화가 있다. 믿거나말거나다.

 

얼마 전에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대회에서 최정 선수가 결승에 올랐다. 비록 신진서한테 져서 준우승을 했지만 여자 기사가 오픈대회에서 결승까지 오른 것은 최정이 최초였다. 남자와 여자가 핸디캡 없이 정면 대결할 수 있는 종목은 바둑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여자 기사가 세계를 제패하는 모습을 볼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서울에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의 밤 풍경은 언제나 쓸쓸하다. 우리는 늘 뭔가를 기다리고 기대하면서 정해진 곳으로 간다. 종착지가 어딘지는 다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 외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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