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100

뒷산 세 시간

당신에게 제일 편안한 장소는 어디입니까? 나한테 묻는다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올 것이다. 뒷산이다. 뒷산길을 걸을 때 나는 제일 행복하다. 높지 않아도 뒷산의 품은 넉넉하고 따스하다. 뒷산은 말로 무엇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마음은 부드러운 위무의 손길을 느낀다. 모난 생각도 산길을 닮아 부드러워진다. 집에서 뒷산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바지런히 걸으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그렇게 바삐 걷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세 시간에서 네 시간까지 걸린다. 숲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 쉬는 시간은 마음의 포만감에 비례한다. 여름 산은 성가시게 달려드는 날벌레와 모기 때문에 짜증을 유발한다. 뒷산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도 뒷산 찾는 횟수가 뜸했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 부는..

사진속일상 2019.08.31

장마 장미

뒷산을 걷고 나서 마을로 내려오는데 여태 장미꽃으로 환한 집이 있다. 처음에는 장미인 줄 몰랐다. 보통 장미라면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가 한철이다. 장미 축제도 대부분 6월 중순이면 끝난다. 우리 동네 덩굴장미는 이미 졌다. 그런데 이 집 장미는 지금이 한창이다. 장미치고는 크기가 작다. 집안에서는 사람 소리가 두런두런 들린다. 무슨 품종인지 물어보려고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려는 기척이 없다.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지 웃음소리도 잦다. 그렇다고 노크를 할 수는 없고, 뒤돌아 나오며 임시로 '장마 장미'로 이름을 붙여 본다. 6월 하순이면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니 생뚱맞은 이름은 아니리라. 산은 계절마다 향기가 다르다. 뒷산은 지금 밤꽃 향기에 덮여 있다. 밤꽃 향기는 구수하면서 약간은 느끼하다...

사진속일상 2019.06.22

뒷산 붓꽃

뒷산에는 초본류의 꽃이 적다. 그 흔한 제비꽃조차 보기 힘들다. 작은 야산이라 계곡이나 물이 없는 건조한 토양 탓인 것 같다. 이른 봄에 괭이눈이 자라는 터가 있었는데, 지금은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 봄이 한창 무르익으면 정상부에서 붓꽃이 핀다. 뒷산에서는 제일 화려한 꽃 풍경이다. 다행히 이 붓꽃 무리는 세를 점점 넓히고 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붓꽃의 꽃말이 '좋은 소식' '사랑의 메시지'란다. 보라색 붓꽃을 보면 기분이 밝아지고 뭔가 좋은 소식이 찾아올 것 같다. 내년에도 이 자리에서 환한 붓꽃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꽃들의향기 2019.06.02

여름 오는 길

6월이면 여름이 시작되는 달이다. 그 첫날에 뒷산길을 걷다. 이맘 때 숲은 하루가 다르게 풍성해진다. 동네 뒷산인데 깊은 산 속에 온 듯하다. 숲에는 온갖 움직이는 생명들이 모여들고, 그들의 수선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제일 선명하게 들리는 것은 역시 검은등뻐꾸기의 지저귐이다. '홀딱벗고' 새라고 해야 더 알아듣기 쉽겠지. 새 소리를 들으며 재미있는 시 한 편을 꺼내 읽어본다. 복효근 시인의 '검은등뻐꾸기의 전언'이라는 시다. 5월 봄밤에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그 놈은 어쩌자고 울음소리가 홀딱벗고, 홀딱벗고 그렇습니다 다투고는 며칠 말도 않고 지내다가 반쯤은 미안하기도 하고 반쯤은 의무감에서 남편의 위상이나 찾겠다고 처지기 시작하는 아내의 가슴께는 건드려보지도 않고 윗도리는 벗지도 않은 채 마악 아내에게..

사진속일상 2019.06.01

봄 물드는 뒷산

산벚꽃 사이로 봄 산은 연초록 새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매년 맞이하지만 봄은 늘 새롭고 경이롭다. 올해의 봄은 작년의 봄과 다르다. 같은 색깔,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우리가 봄을 보는 눈은 같지 않다. 봄과 봄 사이의 인간사 사연들이 투영된 마음의 프리즘으로 우리는 봄을 맞이한다. '절망의 의지'를 너무 들여다보지 말고, 지상이 표상하는 생명의 약동에 한눈팔아도 괜찮은 봄이다. 잘려나간 나무줄기에서도 생명은 돋아난다. 멀리 산골 동네서 개 짖는 소리도 포근하다. 연초록 새잎이 꽃보다 더 예쁘다. 봄 물드는 뒷산을 한 바퀴 돌았다.

사진속일상 2019.04.21

봄 맞는 뒷산

어제는 한 시간 정도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지붕과 산이 하얀 옷을 입었다가 금방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오늘 산길은 촉촉하게 젖어 걷기에 좋았다. 남쪽 지방은 벚꽃이 한창이지만 여기는 이제 봄기운이 도착했다. 진달래가 꽃봉오리를 맺은 채 따스한 햇볕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며칠 뒤면 활짝 필 것이다. 뒷산에는 생강나무꽃이 한창이다. 지금부터 폭죽 터지듯 봄꽃의 향연이 펼쳐지리라. 올해는 개화 시기가 일주일 정도 빠르다. 각 지방의 꽃 축제도 예년보다 앞당겨지는가 보다. 뒷산 꼭대기에 이를 때쯤 조그만 쉼터가 나온다. 대여섯 사람이 앉을 만한 평지다. 남향이어서 햇살 따스하고 뒤로는 산이 둘러싸고 있어 포근하다. 나무를 가로로 걸쳐놓은 의자가 있고, 작은 탁자도 있다. 항상 쉬어가는 곳인데 워낙 사..

사진속일상 2019.03.24

새해 첫 뒷산

2019년 첫걸음으로 뒷산에 오르다. 뒷산은 항상 그 자리에서 어느 때나 나를 포근히 품어준다. 아무도 없는 산길을 사박사박 걸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정신이 상쾌해진다. 몸이 개운해지는 건 물론이다. 우주의 기운을 담뿍 받는 것 같다. 한없이 주기만 하는 고마운 뒷산이다. 겨울 산길은 말한다. 붙잡아두지 말고 훌훌 털어내어라. 애착이 없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알지만 안 되는 걸요. 인생이 산길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놈아, 알면서 행하지 않으니 어리석다 하는 거야. 씩씩거리며 앞으로 나가지만 말고 나무를 오르내리는 저 다람쥐를 잘 보려무나. 2011년에 이곳으로 왔으니 어느덧 8년째에 접어든다. 5년 정도 살아보고 더 시골로 들어갈 요량이었는데, 이젠 거의 붙박이가 되어간다..

사진속일상 2019.01.03

태풍은 지나가고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맞았던 태풍인데 의외로 얌전히 지나갔다. '솔릭'은 8년 만에 한반도를 통과한 태풍이었다. 태풍의 기세가 뜨거운 기단을 밀어내줬으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 것 같다. 오랜만에 배낭을 메고 뒷산에 올랐다. 걷기 목적으로는 두 달 만의 바깥 걸음이다. 습도 높은 숲은 눅눅했으나 바람은 서늘했다. 벤치에 누워 쳐다보는 초록 나무들이 시원했다.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데 세 시간쯤 걸렸다.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간다. 시간이 의미 없이 흘러간다. 가을바람이 불면 의욕이 살아날려나....

사진속일상 2018.08.25

뒷산 조개나물

뒷산이 걷기에는 좋지만 품고 있는 꽃은 빈약하다. 계곡이 발달하지 않고 물이 없는 메마른 산이기 때문이다. 그 점이 약간 아쉽다. 그런데 어제는 뒷산에서 꽃밭을 이루고 있는 조개나물을 만났다. 묘지 주위였다. 조개나물은 유난히 묘지에서 잘 자란다. 할미꽃과 비슷하다. 조개나물은 원래 양지 바르고 메마른 땅을 좋아한다고 한다. 잔디가 깔린 묘지가 적지인 셈이다. 가끔 꿀풀과 헷갈리는데 꿀풀은 줄기 윗부분에 꽃이 있는 반면, 조개나물은 아래에서 위까지 촘촘이 나 있다. 흰색과 붉은색의 꽃도 있다는데 보지는 못했다. 산길에서 그나마 반가운 조개나물이었다. 조개나물꽃과 꼭 닮은 게 금창초(金瘡草)다. '부스럼 창'자를 쓰는데 부스럼 치료에 효과가 있는 풀인 것 같다. 꽃만 보면 조개나물과 금창초를 구별하기 어렵..

꽃들의향기 2018.04.30

뒷산을 돌다

화창한 일요일에 아내와 함께 뒷산을 걸었다. 대개 꼭대기까지 갔다가 같은 길로 내려오지만 오늘은 한 바퀴 도는 길을 택했다. 시간은 한 시간 정도 더 걸려서 네 시간 가까이 걸었다. 날씨 탓이 컸다. 그저께 남과 북의 판문점 선언이 있었는데 이틀 밤이 지나도 뉴스를 보면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 우리 민족의 앞길도 지금의 날씨만큼이나 밝게 열리기를 희망한다. 뒷산 등산로는 지금 공사중이다. 정자가 새로 세워지고 길은 다니기 좋게 정비되고 있다. 울퉁불퉁한 길이 반듯해지니 걷기에는 편해졌다. 앞으로는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 평일에 올라가면 산에 있는 두세 시간 동안 한두 사람 만나는 게 고작이었다. 자연에 지나치게 손을 대는 것은 반대지만 어느 정도의 편의 시설은 필요할 것 같다. 작년에 불이 ..

사진속일상 2018.04.29

두 달만의 뒷산

올겨울은 바깥나들이가 뜸했다. 추웠다는 핑계를 대지만 실은 게을러진 탓이었다. 날씨 불문하고 바지런하게 쏘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이 계절은 겨울잠 자듯 웅크리고 있는 것도 괜찮다. 군불 뜨듯하게 지피고 아랫목에 배 깔고 누워 책 보며 빈둥거리던 지난 겨울이 그리워진다. 이젠 그럴 고향집도 없어졌다. 뒷산에 올랐다. 지난 걸음 이래 두 달이 훌쩍 지났다. 이렇게 오랜만에 찾아도 뒷산은 부담이 없는 산길이다. 오르막에서도 호흡이 성마르지 않다. 뒷산은 늘 푸근하다. 뒷산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이번 명절은 동생이 귀향하고 나서 맞는 첫 번째 설날이었다. 막내와 조카네가 못 내려와서 두 형제만 단출하게 차례를 올렸다. 정말로 뭣이 중헌디, 다른 무엇보다 형제끼리 우애 있게 지내는 게 먼저일 것이었다. ..

사진속일상 2018.02.18

초겨울 뒷산

아침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졌다. 바람이 불지 않고 낮인데도 볼에 닿는 냉기가 시리다. 햇볕을 쬘 겸 뒷산에 올랐다. 잎을 버린 나뭇가지 사이로 햇빛 잘 스며드는 겨울 산길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많은 것 같아도 사실은 가진 게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계절이 겨울이다. 그래서 가슴 한쪽이 허전한지 모른다. 때때로 진실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아픔과 쓸쓸함에서 생명에 대한 연대 의식이 생겨나는가 보다. 가만히 겨울나무를 껴안아 준다. 겨울을 지나면서 나무는 단단해진다. 생존과 번식에 충실한 여름 한때였지만, 고독을 견뎌내는 겨울에야 나무는 내적인 성장을 한다. 사람의 생애도 마찬가지다. 시련의 시절을 살아내는 것이 공부다. 공부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따스해진다. 나무도 그렇다는 듯 가지를 살랑살랑..

사진속일상 2017.12.07

가을 오는 뒷산

어제 저녁 8시에 침대에 들어갔는데 그대로 곯아떨어져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이 며칠째 계속 그랬다. 보통 날도 아홉 시간은 잠을 자니 특별하지는 않다. 별로 활동하지 않는데도 근래 피로감이 깊어졌다. 약간의 감기 기운도 있다. 환절기 탓인가 보다. 가벼운 뒷산 걷기에 나섰다. 연일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봄에는 미세먼지가 괴롭히더니 여름부터는 대기가 깨끗하다. 티끌 하나 없는 파란 하늘도 자주 나타났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다. 숲에는 가을 기운이 배기 시작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도토리가 토도독 떨어진다. 뭔가 달콤하게 익어가는 냄새도 난다. 상쾌한 공기를 한껏 들이켠다. 집에서 몇 발자국만 나가면 이런 뒷산이 있다는 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자꾸 멀리만 바라보았던 일을 뉘우친다...

사진속일상 2017.09.19

뒷산 버섯

강성한 북쪽 기단 세력이 남쪽의 북태평양고기압의 확장을 방해하고 있어 더위가 물러났다. 두 기단 사이에 저기압이 자리잡은 탓에 연일 비가 내린다. 날씨가 작금의 한반도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다. 북쪽에서 핵을 빌미로 큰소리를 치니까 덩치 큰 남쪽 대양세력이 잠시 주춤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 믿지만 걸핏하면 찾아오는 이런 긴장 상태가 저희들끼리의 꼭두각시 놀이 같다. 어제는 잠시 비가 그친 틈에 뒷산에 올랐다. 뒷산은 버섯 세상이 되어 있었다. 산길 주변에 돋아난 버섯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어떤 버섯은 꽃에 못지 않게 예뻤다. 그러나 버섯에는 일자무식이라 이름을 아는 건 별로 없었다. 버섯 도감이라도 사서 공부해야 할 것 같다. 버섯은 색깔이나 생김새가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우..

사진속일상 2017.08.18

뒷산 생강나무꽃

생강나무꽃은 뒷산에서 제일 먼저 피는 꽃이다. 숲은 4월이 되어야 초록색으로 변한다. 3월은 아직 대부분 나무의 꽃이 피기 전이다. 겨울의 황량함 가운데서 생강나무꽃만이 노란색 황일점으로 눈을 즐겁게 해 준다. 뒷산에는 생강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노란 생강나무꽃을 보면서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영문도 모른 채 수장된 어린 영혼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하나하나의 넋이 인양된 세월호와 함께 생강나무꽃으로 피어난 지도 모르겠다. 올 봄에는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생강나무꽃이다.

꽃들의향기 2017.03.26

뒷산 한 바퀴

산에 들면 봄을 본다. 갓 돋아나는 애기 잎을 보면 봄이 가까이 왔음을 실감한다. 내 마음 속에도 새로운 희망의 싹이 움트는 것 같다. 겨울 동안에는 뒷산 출입을 하지 않았다. 몇 달 만에 오른 뒷산을 배낭 메고 한 바퀴 돌았다. 포근했다. 멀리 떠나면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것이 여행의 참 의미인지 모른다. 진달래가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다. 생강나무꽃은 지금이 한창이다. 산길에는 벌써 애기괭이눈도 환하게 피었다. 밀포드에서 신었던 등산화를 버리고 새 신발로 바꾸었다. 이제 내 걷기는 다시 안으로 수렴해야겠다. 여기에 온 지 어느덧 7년째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탈각을 시도해 볼 때가 되었다. 그러나 서두르지는 않으련다. 인연은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음을 안다.

사진속일상 2017.03.26

뒷산에서

뒷산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서 B 아파트로 내려가는 길을 묻는 것이었다. 우선 산에서 아이들을 만난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는 있어도 자기들끼리 산에 놀러 오는 경우는 그동안 한 번도 못 봤다. 요사이 아이들은 학원 다니랴 과외 하랴 어른보다 더 바쁘다. 설령 시간이 난다 해도 산으로 놀러 보낼 부모는 없다. 세상이 그만큼 험해졌다는 뜻이다. 우리가 클 때는 마을 뒷산은 놀이터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보는 던져놓고 어지간히 쏘다녔다.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 들어갈 수가 없지만 그때는 어디라도 뛰어다닐 수 있었다. 산에서는 주로 전쟁놀이를 했다. 오늘 산에서 만난 두 아이도 각각 시커면 장난감 기관총을 들고 있었다. 사내아이들이 그 나이 ..

사진속일상 2016.02.21

대신 뒷산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처음이다. 트레커에서 충주에 있는 계명산 등산을 하기로 했는데 눈을 떠보니 벌써 만나는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 알람을 해 놓지 않은 불찰이었다. 대신 혼자 뒷산에 올랐다. 요사이는 몸이 좋지 않다. 몇 주째 계속 머리가 무겁고 어지럽다. 어렸을 때 연탄가스에 중독되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히말라야에 갔을 때 경험했던 고산증세와도 비슷하다. 산길을 걸으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그나마 기분은 좀 나아진다. 밀폐된 집안에서만 생활해서 생긴 산소 부족증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행이겠다. 무조건 밖에 나가 매일 두세 시간 정도는 산책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일주일 정도 실천해 보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 올해는 유난히 몸이 말썽을 부린..

사진속일상 2015.12.19

뒷산 늦가을

시간이 균일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개인이 체험하는 시간은 그렇지 않다. 어느 때는 느슨하다가 어느 때는 빈틈 하나 없이 빽빽하다. 나이 들어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몰아서 늙어가는 시기가 있다. 일상에서도 양자 현상을 충분히 경험한다. 뒷산은 이미 늦가을이다. 길은 낙엽 뒤로 몸을 숨겼다. 오랜만에 파란 하늘이 열렸고, 숲 속 나뭇등걸에 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쓸쓸하지만 한편 편안하기도 한 조락의 때다.

사진속일상 2015.11.15

뒷산 미국자리공

뒷산 절개지에 제일 먼저 네가 자리 잡았다. 쓸려내리는 흙을 붙드는 네 힘이 대단하다. 한때 유해식물로 분류되어 괄시를 받았지만 이처럼 유용한 역할도 있다. 토종 생태계를 황폐하게 한다는 주장은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억센 몸매에 비해 네가 피우는 꽃은 여리고 곱다. 이젠 우리 땅에 들어왔으니 거친 성격 좀 누그러뜨리고 옆의 친구와 어울려 살아가렴.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사랑받는 우리 풀이 되지 않겠니.

꽃들의향기 2015.10.29

초록 뒷산

새벽에는 천둥 번개와 함께 소나기가 지나갔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에서는 온갖 냄새가 코를 킁킁거리게 한다. 밤꽃이 한창이란 걸 밖에 나와서야 안다. 오랜만에 정상까지 오른 초록의 뒷산길이다. 조무래기 산이지만 지난 3월 초의 시산제 이후 첫 산행이니 석 달이 넘었다. 헬스장에 다니고 근육을 단련하며 몸 상태가 최고조라고 자부할 때 걸려 넘어졌다. 가는 건 한 순간이다. 애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신발 벗고 있을 수는 없다. 다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다른 건 정상인데 머리만 맑아졌으면 싶다. 그래도 이만큼으로 지나간 것도 다행이 아닌가. 뒷산에서부터 다시 시작이다.

사진속일상 2015.06.15

한 달 만에 외출하다

꼭 한 달 만에 바깥에 나섰다. 느린 걸음으로 뒷산 언저리를 한 시간 정도 돌았다. 산길은 이미 녹음 터널이 되었고, 아까시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살랑거렸다. 몸 상태는 여전히 온전치 못하다. 바람을 쐬면 기침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온다. 폐렴은 진정되었다고 하는데, 아직 남아 있는 편도염 때문인지 모른다. 간 수치도 나쁘다고 하니까 내일 병원에 가서 최종 확인을 받아봐야 한다. 몸이 부실하니 마음도 불안정하다. 책 읽기가 제대로 안 되는 걸 보면 안다. 요사이는 팟캐스트를 통해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연속으로 듣고 있다. 이런저런 인생사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찡해진다. 스님의 설법에는 카르마와 과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 유익한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다. 둘..

사진속일상 2015.05.18

뒷산 진달래

뒷산의 진달래가 활짝 폈다. 옛날에 산을 쏘다니며 놀다가 배가 출출해지면 한 움큼씩 따먹던 꽃이다. 그때는 참꽃이라 불렀다. 어느덧 50년 전 일이다. 진달래는 봄이 오면 제일 먼저 산을 붉게 물들인다. 아직 나무의 초록잎이 나오기 전이다. 고운 색감이지만 화려하지는 않다. 오히려 슬픔과 처연한 감상이 묻어 있는 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민족의 성정과 닮았다. 가장 한국적인 꽃을 고르라면 진달래가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오덕 선생이 '진달래'를 쓴 때는 1950년대 중반이었다. 막 전쟁이 끝난 힘들고 고달팠던 시대였다. 헐벗은 강산에 어김없이 피어나는 진달래를 보며 선생은 가날픈 희망이나마 붙잡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진달래가 한창인 산길을 걸었다. 이즈러진 초가집들이 깔려 있는 골짝이면 나뭇군의 ..

꽃들의향기 2015.04.10

겨울 뒷산

눈 내리고 날씨가 싸늘해진 뒤부터는 뒷산을 가지 않았다. 다른 산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헬스장에 나가는 데 재미를 붙였다. 헬스장은 근육을 단련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걷는 건 영 아니었다. 기계 위에서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뭣 하는 짓이지, 라고 자꾸 자문하게 되는 것이었다. 어제는 영상으로 기온이 올라 오랜만에 뒷산에 갔다. 근 두 달만이었다. 음지에는 눈이 얼어 있었지만 걷는 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상큼한 공기가 시원했다. 몸살의 여파인지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산에 든 기분이 좋았다. 천변만화하는 게 세상사지만 산은 늘 여전한 모습이란 게 듬직했다. 통틀어 산만큼 믿음직한 친구도 없다. 자주 찾을 곳은 헬스장이 아니라 산이란 걸 새삼 확인한다. 해가 달라지고 제..

사진속일상 2015.01.06

밤 줍다

올해는 가을 열매가 풍년이다. 산에 들면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비 오듯 후두둑 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주워가도 화수분을 연 듯 금새 새 도토리로 덮인다. 뒷산에서 밤을 주웠다. 길에 떨어진 밤을 줍다가 점점 안으로 이끌려갔다. 사람이 여러 차례 훑고 갔을 텐데 새로 떨어진 밤이 이만 했다. 이른 아침에 가서 작정하고 줍는다면 며칠 새 한 가마니는 채울 것 같다. 어느 해는 빈곤하고 어느 해는 이렇듯 풍요롭다. 고향집 과실나무를 봐도 잘 되는 해가 있고 그렇지 못한 해가 있다. 인간의 계량만으로는 예측이 안 되는 자연의 원리가 숨어 있을 것이다. 집에서 조금씩 구워먹고 있는데 밤알이 잘아서 품이 많이 든다. 시장에서 파는 밤 한 되가 1천 원밖에 안 간다고 한다. 먹는 재미보다는 줍는 재미가 더 낫다.

사진속일상 2014.09.29

봄이 오는 뒷산

창밖으로 보이는 소나무가 아침부터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있어서 센 바람을 맞고 싶어 뒷산에 올랐다. 때가 되면 변해가는 계절은 속일 수 없음인가, 산 능선에서 바람 앞에 섰으나 이미 찬 기운은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명색이 북풍인데 신세가 말이 아니었다. 한껏 잠바를 열어젖히고 가슴이 뻥 뚫리도록 바람을 맞았다. 겨울 동안은 전혀 출입을 하지 않았으니 석 달 만에 찾은 뒷산이었다. 봄이 가까워지면 숲에서는 새들이 먼저 분주해진다.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다니며 바쁘기만 한 박새가 제일 많이 눈에 띄었다. 찌찌 쯔르르르, 새소리가 없다면 숲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 산기슭에는 괭이눈 초록 잎이 돋아났고, 버들강아지도 고운 물을 들이고 있었다. 이제 곧 총천연색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행복이..

사진속일상 2014.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