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100

스쳐가는 나그네

스무날 만에 햇볕이 났다. 작은 배낭을 꺼내 뒷산에 들었다. 장마가 시작되고는 출입을 하지 않았으니 한 달이 넘었다. 숲은 물기를 털어내느라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긴 장마에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벽에서는 물방울이 송송 배어 나올 듯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창문을 활짝 열고 뽀송뽀송한 공기를 맞았다. 그동안 화장실에서는 퀴퀴한 곰팡내가 계속 났다. 아내가 제습기를 사야겠다는 걸 겨우 말렸다. 뭐든지 기계에 의존하는 게 싫었다. 산길에서는 모기와 날벌레들이 뜸해졌다. 한두 마리가 달라붙었지만 초여름의 극성스러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산에서 메뚜기를 보았다. 농약 때문에 산으로 피신 온 것인가, 아니면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워낙 날쌔게 뛰어다녀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틀림없는 메뚜기였다. 다..

사진속일상 2013.07.26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략 난감하지만 별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내 삶의 에너지는 걸을 때 나온다. 길은 호젓한 산길이 좋다. 그리고 동행 없이 홀로여야 한다. 이 세 가지 박자가 맞으면 내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아드레날린이 샘솟듯 분출한다. 혼자면 외롭지 않느냐고? 천만에, 전혀 그렇지 않다. 산길에는 사람 대신 풀과 나무 친구가 있다. 또한 꽃 친구도 나를 반겨준다. 이들과는 말 없어도 말 이상의 교감을 나눈다. 조용한 산책을 위해서는 산은 낮으며 부드럽고, 길은 익숙해야 좋다. 그래서 집 뒷산이야말로 제격이다. 정상까지 갔다 오는데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적당한 길이다. 그동안에 한두 사람을..

참살이의꿈 2013.05.10

가을물 드는 뒷산

뒷산도 가을물이 들고 있다. 유명한 산처럼 가을이 화려하게 찾아오진 않지만 수수해서 오히려 좋다. 명절날 때때옷을 마련하진 못했어도 입던 옷 곱게 빨아서 차려 입었다. 드러나지 않으면서 항상 곁에 있는 푸근함이 뒷산의 매력이다. 단풍 구경 하느라 사람들은 멀리멀리 떠나가도 뒷산은 그 자리에서 묵묵하다. 집 뒤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사진속일상 2012.10.22

뒷산 연리목

뒷산 산책을 하다 보면 재미있게 생긴 나무를 만난다. 두 줄기가 붙은 연리목 형태를 한 나무들이다. 자주 다니다 보니 많이 눈에 띄어서 그런지 뒷산에는 유난히 이런 나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연리목이귀한 거라 생각했는데 뒷산의 경우를 보면 나무들의 일반적인 현상인 것 같다. 참 재미있으면서 신기하다. 오늘은 뒷산 산책을 하며 이런 나무들만 찍어 보았다. 연리목 A 연리목 B 연리목 C 연리목 D 연리목 E 연리목 F 연리목 G 연리목 H 이놈들은 마찰에 의해 줄기가 움푹 패였다. 그런데 서로 붙지는 못하고 있다. 연리목 I - 제일 희한한 모양이다. 아예 다른 줄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구렁이가 잡아 먹은 것 같다. 속에 들어간 작은 줄기는 결국 고사했다.

사진속일상 2012.03.29

빈 둥지

뒷산을 산책하다가 새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다. 여리지만 목청껏 울어대는 소리였다. 가만히 귀 기울이니 등산로 옆에 있는 나무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무 줄기에는 애기 주먹 크기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딱따구리 집인 것 같은데 하필 길 옆에다 만들어 놓았다. 이제 막 부화한 새끼가 어미를 부르는 소리였다. 가는 생명의 소리가 맑고 명랑했다. 단조로운 산책길에서 새끼 새들과 만나는 것이 내 즐거움이었다. 그 나무가 가까워지면 새들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내 가슴도 두근거렸다. 나무를 톡톡 치면 새끼 새들은 울부짖듯 지저귄다. 아마 어미가 먹이를 갖고 온 줄 아는가 보다. 나는 괜히 애만 태우게 하는 것 같아 빨리 자리를 피해준다. 그런데 좀 불안했다. 등산로 옆에서 새끼 새들이 철 모르고 지저..

사진속일상 2011.07.11

뒷산을 답사하다

처음으로 뒷산에 올랐다. 여기에집을 장만했을 때 가장좋았던 점이 뒤에 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집을 나서면 바로 산과 연결되고 산줄기를 타고 분당과 남한산성까지도 갈 수 있다. 아름다운 산길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이곳이 서울과 다른 점은 우선 공기가 맑다. 도시의 매캐한 내음이 없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흠뻑 심호흡을 하고 싶을 정도로 공기가 상쾌하다. 그리고 조용하다. 아파트의 층간 소음만 없다면 절집 속에 있는 것 같다. 나한테 딱 맞는 곳이다. 아파트에서 계단을 타고 오르면 바로 산길이 시작된다. 부드러운 흙길로 걷기가 편하다. 길은 완만하게 곡선을 그으며 이어진다. 진달래가 많이 피어 있다. 나무가 많아 여름에는 그늘로 덮일 것이다. 기대 이상으로 분위기 있는 길이다. 오늘 걸은 ..

사진속일상 2011.04.21

뒷산을 산책하다

지난 가을부터 거의 운동을 하지 않고 지냈다. 테니스를 몇 번 해 본 것이 고작이고, 좋아하던 걷기도 못했다. 그만큼 게을러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몸은 최고의 체중을 기록하며 둔중해지고 있다. 오랜만에 뒷산을 산책했다. 이러니 좁은 계단을 오르는 데도 힘이 들었다. 처음 이사왔을 때는 자주 찾아와 건강을 지키리라 다짐했었지만 역시 뜻대로 되지 않는다. 집 뒤가 바로 산인데 가까이 있으니 도리어 멀어지는 진리를 여기서도 확인하고 있다. 도시 한 가운데 있는 자그마한 산이라 걷기에 그리 좋은 길은 못되지만 그나마 가까이에 이런 산길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내일부터는 매일 산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오랜만에 흙을 밟으며 걸으니 몸이 가뿐해졌다. 산길은 동작동 국립묘지와 접해 있는데 보기..

사진속일상 2008.01.04

국립묘지가 정원이 되다

집 뒤의 산에 아내와 같이 처음으로 올랐다.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예전에는 꽤 높아보였을 산이었을 텐데 지금은 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꼭대기가 아파트 높이와 나란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도 많이 다녀 산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이런 현상은 서울 시내에 있는 산들이 겪는 공통된 고통일 것이다. 더구나 바로 뒤편이 국립묘지라 흉물스런 시멘트담이 산 능선을 따라 세워져 있어 기대와 달리 산길 걷기가 그리 마음 편하지는 않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유지되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봄이 찾아와 군데군데 노란 개나리와 나무의 초록 잎들이 눈을 환하게 하고, 깊섶에는 제비꽃과 양지꽃도 보였다. 길게 이어진 시멘트 장벽에 국립묘지와 연결되는 출입문이 하나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

사진속일상 2007.04.08

맑음과 흐림

어제는 다시 맑은 하늘과 땅이 열렸다. 그저께 내린 비가 이런 기적 같은 풍경을 만들었다. 도시락을 싸서 아내와 같이 뒷산에 올랐다. 산자락에 앉아 바라보는 전망은 세상 끝까지라도 보일 듯 투명했다. 눈 앞으로는 한강과 서울의 강동 지역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의외의 풍경, 비세상적인 풍경은 우리를 당황하게한다. 내일이면 다시 사라져 버릴 것을 알기에 이 멋진 풍경 앞에서도 괜히 슬퍼진다. 우리가 필사적으로 좇는 것은 어쩌면 저 풍경처럼 순간적으로 반짝 빛나는것일지 모른다.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불현듯 몰려오는 환한 빛, 그러나 그 빛은 잠시 빛나는 섬광일 뿐이다. 그 뒤는 다시 짙은 어둠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에게 허용된 것은 긴 소망과 순간의 만남이다. 모든 깨달음과 현실이 그렇다. 고개를 드니..

사진속일상 2006.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