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빈 둥지

샌. 2011. 7. 11. 11:04


뒷산을 산책하다가 새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다. 여리지만 목청껏 울어대는 소리였다. 가만히 귀 기울이니 등산로 옆에 있는 나무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무 줄기에는 애기 주먹 크기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딱따구리 집인 것 같은데 하필 길 옆에다 만들어 놓았다. 이제 막 부화한 새끼가 어미를 부르는 소리였다.

 

가는 생명의 소리가 맑고 명랑했다. 단조로운 산책길에서 새끼 새들과 만나는 것이 내 즐거움이었다. 그 나무가 가까워지면 새들의 소리가 점점 커지고 내 가슴도 두근거렸다. 나무를 톡톡 치면 새끼 새들은 울부짖듯 지저귄다. 아마 어미가 먹이를 갖고 온 줄 아는가 보다. 나는 괜히 애만 태우게 하는 것 같아 빨리 자리를 피해준다.

 

그런데 좀 불안했다. 등산로 옆에서 새끼 새들이 철 모르고 지저귀니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알게 된다. 더구나 둥지는 어깨 높이밖에 안 된다. 손만 넣으면 모든 게 끝이다. 저 연약한 생명들이 짖궂은 사람이나 짐승의 손을 타지 않고 무사히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기도했다. 일주일 정도는 무사히 지났다.

 

어느 날, 새소리가 멎었다. 무사히 하늘로 날아갔을까? 그런데 나무 구멍 주위에 신발자국이 보이고 안으로 흙을 넣은 흔적도 보였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저 정도라면 고이 놓아두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혹 모르지, 새들이 떠나고 난 뒤의 일일 수도 있잖아. 며칠째 뒷산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꼭 장마 때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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