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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지난 9일 미국에서 열린 토니상 시상식에서 우리나라의 창작 뮤지컬인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작품상을 비롯해 6관왕을 차지했다. 이번에 수상한 부문은 뮤지컬 작품상, 남우주연상, 극본상, 작사작곡상, 무대디자인상, 연출상이었다. 토니상은 연극과 뮤지컬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이번 토니상은 한국 문화계가 세운 대단한 업적이라 할 만하다. 이 시상으로 우리나라는 미국의 4대 대중문화 시상식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2020년 아카데미 4관왕이 된 '기생충'2022년 에미상을 받은 '오징어 게임'2025년 토니상 6관왕의 '어쩌면 해피엔딩'그래미는 오래전에 소프라노 조수미가 '베스트 오페라 레코딩상'을 받은 적이 있다. 가까운 시일에 우리나라 K팝 가수가 ..

길위의단상 2025.06.11

사기[45-1]

편작은 제자 자양에게 쇠침과 돌침을 갈게 한 뒤 그것으로 몸 살갗에 있는 삼양(三陽)과 오회(五會)를 찔렀다. 한참 뒤 태자가 깨어났다. 그러자 제자 자표에게 10분지 5의 고약과 10분지 8의 약제를 섞어 달여 양쪽 겨드랑이 아래에 번갈아 붙이도록 하니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음과 양의 기운을 조절해 가며 탕약을 스무 날 동안 먹게 하니 태자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일로 하여 세상 사람들은 모두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려 낼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편작이 말했다."나 진월인은 죽은 사람을 살려 내지는 못한다. 이는 내가 스스로 살 수 있는 사람을 일어날 수 있게 한 것뿐이다." - 사기(史記) 45-1,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편작은 춘추시대 때의 명의로 이름은 진월인(秦越人)이..

삶의나침반 2025.06.10

춘분 / 정양

출근하면서 연구실 문을 잠근다누가 문을 두드려도 시늉도 하지 않으리라마침 강의도 없다 밖에 안 나가려고쉬야도 세면대에 하고 점심 저녁 쫄쫄 굶고앉았다 일어났다 눈 감았다 떴다 어둡도록불도 안 켜고 무슨 쭘뼝인지 나도 모르겠다나를 위해서든 누굴 위해서든아무 짓도 하지 말아야 세월이 옹골질 것 같다봄날이 오든 가버리든 밤낮이 길든 짧든내버려둬라 내비둬라 냅둬라 낯익은 말투로시간이 나를 포기할 때까지 나도세월을 포기하면서 뒨전거렸다퇴근은 해야지 싶어 하루 종일아무도 두드린 일 없는 문을 멋쩍게 열고 밖에 나선다갈 데가 집뿐인가 집뿐인가 주억거리는 주차장 불빛에산수유꽃 몇 그루 빈 주차장보다 더 적막하게 피어 있다 - 춘분 / 정양 지난주에 정양 시인이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인은 우석대..

시읽는기쁨 2025.06.09

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작가의 산문집이다. 제목처럼 작가가 그간 살아왔던 집을 소재로 해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책은 3부로 되어 있는데, 1부 '나의 집과 시간들'은 작가가 성장기를 보낸 고향의 시골집에 대한 이야기다. '내 미운 부로꾸집' '아궁이에 물을 푸며 책을 읽다' 같은 제목처럼 가난하게 보낸 어린 시절이 애틋하고 안스럽다. 작가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내가 과연 행복했던가를 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몸을 가눌 길 없이 행복에 겨워서 행복한 게 아니라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행복했다.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다." 2부 '집을 찾아서'에서는 성인이 되어 내 집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현재 작가는 전남 담양에 집을 지어 살고 있다. 집에 살면서도 내 집인 적이 없었던 집, 집이란 무엇인가를..

읽고본느낌 2025.06.08

개장구채

전주천에서 본 개장구채다. 말뱅이나물이라고도 한다. 석죽과의 개장구채는 유럽 원산의 귀화식물이다. 귀화식물치고는 소박하고 가녀린 모습을 하고 있다. 색깔은 흰색과 분홍색 두 종류다. 전주천에는 개장구채가 수레국화, 끈끈이대나물과 어우러져 꽃밭을 만들고 있었다. 세 색깔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이 좋았다. ▽ 끈끈이대나물 ▽ 개장구채와 수레국화

꽃들의향기 2025.06.07

전주와 영주

어머니와 장모님의 생일이 같다. 몸을 둘로 나눌 수 없으니 미리 날짜 조정을 하고 모여야 한다. 올해는 장모님 생일을 앞당겨서 처가 쪽 형제들이 모였다. 전주에 내려가는 길에 익산 미륵사지에 들렀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다. 오래 전에 왔을 때는 보수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했는데 이제는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미륵사는 원래 다른 절과는 다르게 세 개의 탑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가운데에 목탑을 두고, 좌우에 석탑을 배치했다. 현재는 유일하게 국보 11호인 서탑이 파손된 채 남아 있다. 서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석탑이다. 오른쪽 동탑은 새롭게 복원했다. 마침 월요일이라 박물관은 휴관중이었다. 저녁 산책을 나갔더니 시내에서는 막바지 대통령 선거 유세가 한창이었다. 투표일 전날이었다..

사진속일상 2025.06.07

용인 탄천 2차 걷기

이번에는 용인 탄천을 하류 방향으로 걸었다. 이 구간은 산책로의 상당 부분이 경부고속도로와 나란히 나 있었다.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왔는데 왕복 6km 되는 거리였다. 시간상으로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더 걷고 싶었으나 구름 한 점 없는 따가운 날씨여서 더 이상의 활동은 무리였다. 아무 준비 없이 맨몸으로 나갔더니 이내 갈증이 찾아왔다. 여름이 불시에 쳐들어온 것 같았다. 길에는 금계국이 많이 피어 있었다. 수온이 높아선지 물에는 전에 비해 청태가 많이 끼었다. 청태는 녹조와 달리 하천 수질에는 영향이 없다고 한다. 보기에는 지저분하지만. 점심은 넷이서 파스타로 했다. 손주는 중학교에 들어가더니 이제야 어린이 티를 벗는 것 같다.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해 나가는 고통이 보여져서 안스럽기도 하고 대견..

사진속일상 2025.06.02

이끼와 함께

부제가 '작지만 우아한 식물, 이끼가 전하는 지혜'이다. 미국의 식물생태학자인 키머러(R. W. Kimmerer) 박사가 썼다. 저자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으로 식물학을 공부한 뒤 이끼의 생태를 연구하면서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이끼가 자신에게 주는 깨달음을 중심으로 성찰해 나간다. 도 그런 관점에서 쓰인 책이다. 이끼는 눈여겨 보지 않는 식물이다. 주로 예쁜 꽃이나 경치의 배경으로 존재한다. 하찮아 보이는 존재를 이렇게 따스한 시선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이 책을 읽으며 실감했다. 이끼 생태계는 또 다른 소우주라 할 수 있다. 숲에서 채취한 이끼 덩어리 1그램을 조사했더니 그 안에 원생동물 13만 마리, 완보동물 13만 2천 마리, 톡토기 3천 마리, 담륜충 ..

읽고본느낌 2025.06.01

사전투표를 하다

21대 대통령 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본 투표일에는 집을 떠나 있어야 해서 어제 아내와 사전투표를 했다. 이번 대선은 윤석열의 얼토당토않은 비상계엄으로 갑자기 치러지는 선거다. 잘못을 응징하려는 다수의 결의가 크기 때문에 진즉에 승패는 결정되어 있었다. 다른 때처럼 누가 이길까,라고 조마조마하지 않으며 투표할 수 있었다. 10여 일 전에 전에 휴대폰의 '네트워크 연결'을 초기화 했더니 '삼성 헬스' 앱이 활성화되었다. 다시 죽이기도 뭣해서 그냥 쓰고 있는데 걸음수가 체크되니 내 활동량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기록을 보니 두 주 동안에 외출이 여섯 번이었고, 총걸음수는 5만 보였다. 하루 평균 3천 보 가량 걸은 셈이었다. 동년배와 비교해도 많이 뒤처지는 걸음이다. 이 앱으로 자극을 받아야..

사진속일상 2025.05.31

관상은 과학이다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을 들을 때는 공감한다. 관상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까지 여기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의 살아온 내력이나 생각이 얼굴에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링컨이 그랬던가,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매스컴을 통해 많은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된다. 선입견이 있어선지 모르지만 범죄자나 사기꾼의 얼굴은 느낌이 좋지 못하다. 반면에 선한 행동으로 칭송을 받는 사람의 얼굴 표정은 온화하고 따스한 기운이 전해온다.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얼굴에 스민 뭔가가 있는 것이다. 외모가 아름답다거나 잘 생겼다는 것이 아닌 얼굴에서 퍼져나오는 느낌을 말함이다. 아무리 곱게 꾸며도 감추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다반사로 하는 사람은..

참살이의꿈 2025.05.30

1408f(6)

은총이 눈에 보인다면이런 걸까 평화와 고요의품에 안기던어느 저녁 (140829) 수만 년을 흐르며갈고 닦았다 비단결처럼부드러워졌다 (140830) 잊지말아 줘 나이렇게 떨며기다리고 있잖아 (140831) 둑 쌓으면 가뭄 들고 우물 파면 홍수 나고 집 팔면 부동산 폭등 돈 찾으니 손 벌려 자식 결혼시키니 손주 봐줘야 해 외로우니 부르는 놈 없고 책 보려니 눈 아프고 산에 가려니 허리가 고장나 젊었을 때는 시간이 모자라 안달 퇴직하니 모든 게 시들, 인생이 이런 건가 (140832) 예끼!아무 데나 들이대지 마 거시기스러운 놈 같으니라고 (140833)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사랑하기.자신의 삶이 그것들에 의지하고 있음을 깨닫..

포토앤포엠 2025.05.29

청계천에 쉬리가 산다

며칠 전에 반가운 뉴스가 떴다. 청계천에 쉬리가 산다는 소식이다. 서울시설공단이 국립중앙과학관과 협력해 청계천의 어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쉬리가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보도다. 쉬리는 2급수 이상에서 사는 우리의 고유종으로 청계천 수질이 그만큼 깨끗하다는 반증이다. 쉬리 외에도 다양한 물고기가 확인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상류 - 피라미, 참갈겨니, 돌고기, 밀어, 잉어, 붕어, 버들치, 참붕어중류 - 쉬리, 돌고기, 줄몰개, 모래무지, 가물치, 향어하류 - 향어, 참마자, 얼룩동사리, 갈문망둑 등 청계천이 복원된지 20년이 되었다. 인공수로이긴 하지만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으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생태적으로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먹이를 찾아온 백로나 왜가리도 심..

길위의단상 2025.05.28

죽음이 찾아오면 / 메리 올리버

죽음이가을의 허기진 곰처럼 찾아오면,죽음이 찾아와 그의 지갑에 든 반짝이는 동전을 모두 꺼내 나를 사고, 지갑을 닫아버리면,죽음이호환마마처럼 찾아오면, 죽음이양 어깨뼈 사이의 빙산처럼 찾아오면, 나는 호기심 가득 안고 그 문으로 들어서고 싶어,저 어둠의 오두막은 어떤 곳일까? 하면서. 그리하여 나 모든 것들을형제자매로 바라보지,시간을 한낱 관념으로만 보고,영원을 또 다른 가능성으로 여기지, 그리고 각각의 삶은 한 송이 꽃, 들판의데이지처럼 흔하면서도 유일한, 그리고 각각의 이름은 입안의 편안한 음악,모든 음악이 그러하듯, 침묵으로 이어지는, 그리고 각각의 몸은 용감한 사자, 그리고땅에게 소중한 것. 삶이 끝날 때 나는 말하고 싶어, 평생나는 경이와 결혼한 신부였노라고.세상을 품에 안은 신랑이었노라고. 삶..

시읽는기쁨 2025.05.27

사기[44]

노나라 왕이 사냥을 좋아하였으므로 재상 전숙은 언제나 왕을 모시고 사냥터로 들어갔다. 그때마다 전숙에게 관사에서 쉬라고 했지만 전숙은 사냥터로 나와 항상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앉아 왕을 기다렸다. 왕은 자주 사람을 보내 그를 쉬게 했으나 끝까지 쉬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우리 왕이 사냥터에서 몸을 드러내 놓고 있는데, 내 어찌 혼자 관사에 가서 쉬겠소?"노나라 왕은 이 일로 하여 밖으로 나가 노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몇 년 뒤에 전숙이 임기 중에 세상을 떠나자 노나라 왕은 황금 100근을 주어 제사를 지내게 하려고 했으나, 작은아들 전인은 받지 않고 말했다."황금 100근 때문에 선친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없습니다." - 사기(史記) 44, 전숙열전(田叔列傳) 전숙(田叔)은 조나라 신하였는데 ..

삶의나침반 2025.05.26

유신 사무라이 박정희

'낭만과 폭력의 한일 유신사'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유신을 키워드로 하여 한국과 일본의 근현대사를 설명하는 책이다. 역사를 보는 작가의 관점이 흥미롭다. 한국인이 누구인지를 탐구하는 홍대선 작가가 썼다. 이 책의 장점은 정통사관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는 신선함이다. 작가는 "나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다고 본류에서 벗어나지는 않고 살짝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는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새로움을 느낀다. 예를 들면, 근대 일본을 탄생시킨 정신적 지도자인 요시다 쇼인에 대해 작가는 만들어진 영웅이라고 낮게 본다. 책에는 처음 접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간결하고 깔끔한 설명도 좋다. 작가는 유신을 하나의 사건을 넘어 인격체로 다룬다. 유신은 상상력이며 정념이다. 그 정신이 1868년의 ..

읽고본느낌 2025.05.25

층간소음에서 벗어나다

이곳에 산 지 15년째다. 그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줄곧 층간소음에 시달렸다. 이사 올 때 윗집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남매가 둘 있었다. 윗집은 생활 패턴이 특이했다. 밤 11시부터 다음날 2시까지가 제일 움직임이 많았다. 뛰어다니고 떠드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 등으로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사정을 하고 관리사무소를 통해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 온갖 방법을 다 썼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한 가족의 생활 패턴이 쉬이 변할 수 없었다. 다시 집을 옮길 생각도 여러 차례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나도 소음과민증후군이 아닌가 싶어졌다. 그런 식으로 버티며 지낸 게 어느덧 15년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부터 뭔가 달라졌다. 한밤중 소음이 잦아든 것이다. 문을 쾅 닫는 소리에 깜짝..

길위의단상 2025.05.24

단순한 열정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이렇게 시작하는 은 프랑스 작가인 아니 에르노(Annie Ernaux)가 쓴 소설이다. 소설이지만 40대의 작가가 연하의 유부남과의 사랑을 적나라하게 그린 기록이다. 남자에 탐닉하는 여자의 심리가 냉철하면서도 절절하게 서술되어 있다. 작가의 사랑이 너무 열정적이고 뜨거워서 읽는 내내 부담스러웠고 당혹스러웠다. 20대의 젊음도 아닌 중년의 여인이 이 정도로 폭풍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지 의아하기까지 했다. 작가는 한 남자에게 몸과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그를 떠나서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든다. 광기에 가까운 너무나 지독하고 무서운 사랑이다. 다행..

읽고본느낌 2025.05.23

1408e(5)

이 몸누일 데는 있어도 이 마음쉴 데는 없어 (140824)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려.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도산서원 마당에서조르바를 생각하다 (140825) 가끔뒤집어서 바라봐 전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야 (140826) 속울음을 삼키다 (140827) 너와 내가 만나서함께 가는 길 또는 맞잡은 두 손을 놓고 안녕, 하는 길 (140828)

포토앤포엠 2025.05.22

우리는 건강한가

지난주에 유니세프에서 OECD와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 어린이들의 웰빙지수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36개국 가운데 27위로 하위에 머물렀다. 전에도 늘 하위권에 속해 있었으니 특별한 소식이 아니었으나 씁쓸하긴 여전했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어린이의 정신 건강에서는 34위로 최하위권이었다는 사실이다. 육체 건강 역시 28위로 하위권이었지만 학업 능력이 4위를 기록한 덕분에 그나마 종합 순위 27위가 될 수 있었다. 이웃 나라 일본은 14위로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얼마 전에는 어린이를 포함한 청소년의 20% 정도가 불안, 우울 등의 정신 질환에 시달린다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강남 지역에서는 최근 5년 사이에 정신과를 찾은 어린이 환자가 세 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물질적으로는..

참살이의꿈 2025.05.21

승부

조훈현과 이창호의 사제 대결을 소재로 한 바둑 영화다. 1990년부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본 바 있기 때문에 옛날을 생각하며 흥미롭게 영화를 봤다. 조훈현은 이창호를 내제자로 받아들여 키우지만 몇 년이 되지 않아 제자의 도전을 받고 타이틀을 하나씩 빼앗긴다. 사제간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을 영화는 잘 보여준다. 기록을 보면 둘은 300번이 넘는 사제 대결을 펼쳤다. 이창호의 승률이 60%를 넘었고 중요한 타이틀전에서는 70%대의 승률을 기록했다. 영화에서는 이창호가 처음으로 스승으로부터 타이틀을 뺏는 대국이 비중있게 나온다. 1990년의 최고위전으로 이창호가 3:2로 이기면서 우승했다. 그 뒤 조훈현은 이창호를 독립시켜 내보내고 제자를 이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바둑 한 판 둘 때마다 서너 갑씩 ..

읽고본느낌 2025.05.20

마북동 느티나무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느티나무다. 이 나무 외에 몇 그루의 오래된 느티나무가 함께 모여 있다. 석불입상도 있는 걸로 보아 옛날에는 절이 있던 곳이 아닌가 싶다. 안내문에는 이 느티나무의 수령이 450년, 나무 높이가 10m, 줄기 둘레가 4m로 적혀 있다. 느티나무 가까이 있는 마북리 석불입상이다. 조성 연대는 조선 시대 후기라고 한다. 얼굴은 미륵불 느낌이 나면서 장승을 닮아 보인다. 여러 사념이 혼합된 민간 신앙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천년의나무 2025.05.19

용인 탄천을 걷다

손주를 보러갔다가 낮 시간을 이용해 용인을 관통해 흐르는 탄천을 걸었다. 상류 쪽 탄천은 처음이었다. 탄천(炭川, 숯내)은 용인시 청덕동 법화산에서 발원하여 용인, 성남을 지나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드는 길이 36km의 하천이다. 오늘 걸음은 용인 구성역에서부터 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상류로 올라갈수록 폭이 점점 좁아지면서 작은 개울로 변했다. 흰뺨검둥오리 가족과 쇠백로가 유유히 노니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한 시간 정도 걸어 자전거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왔다. 옆에 청덕성당이 있다. 지도에 보니 여기서 600m를 더 가면 탄천 발원지가 있다고 한다. 시간 여유가 없어서 발원지를 찾아보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탄천을 중심으로 세 시간 정도 걸었다. ..

사진속일상 2025.05.19

절정 /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서릿발 칼날질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 - 절정(絶頂) / 이육사 60년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이육사의 대표시로 '청포도'가 실렸다. 이 시는 그때 이육사를 배우면서 함께 외웠을 것이다. 이름의 '육사'가 시인이 감옥살이를 할 때 수인번호 '64'에서 따왔다는 설명을 듣고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강철로 된 무지개'라는 표현도 색다르게 느꼈다. 국어선생님이 이 표현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이 시를 지을 때의 시대 상황과 시인의 조국 독립에 대한 열망을 생각해 본다면 어떤 의미로 사용했을지 짐작은..

시읽는기쁨 2025.05.18

사기[43]

직불의(直不疑)는 남양 사람으로 낭관이 되어 문제를 섬겼다. 그와 같은 숙소를 쓰던 낭관 중에 휴가를 얻어 집으로 돌아간 자가 있었는데 실수로 같은 방을 쓰던 다른 낭관의 황금을 가지고 갔다. 얼마 후에 황금 주인은 황금이 없어진 것을 알고 함부로 직불의를 의심하였다. 직불의는 자기가 가져갔다며 용서를 빌고 황금을 사서 돌려주었다. 그 뒤 휴가를 얻어 집으로 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황금을 돌려주자 황금을 잃어버렸던 낭관은 매우 부끄러워했다. 이 일로 직불의는 장자(長者)라는 칭송을 받았다. 문제를 그를 뽑아 썼고, 직불의는 점점 승진하여 태중대부에 이르렀다. - 사기(史記) 43, 만석장숙열전(萬石張叔列傳) 이 열전에는 만석(萬石), 위관(衛綰), 직불의(直不疑), 주인(周仁), 장숙(張叔)이 나온다. ..

삶의나침반 2025.05.17

폭싹 속았수다

한 달 전쯤 넥플릭스에서 몰아보기로 본 16부작 드라마다. 워낙 입소문을 탄 드라마라 어떤 내용인지는 알고 있었다. 이런 류의 눈물에 호소하는 영상을 애호하는 편이 아니지만 아이유가 나온다고 해서 모니터 앞에 앉게 되었다. 아이유의 연기는 역시 눈을 사로잡았다. '나의 아저씨' 만큼은 못하지만. 너무 칭찬이 자자했던 드라마라 딴지를 걸자면 '폭싹 속았수다'는 21세기 신파극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가족애를 앞세워서 눈물샘을 자극하는 전형적인 형식이다.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드라마 전체에 넘쳐난다.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야 할지, 애착/집착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마다 품안의 사랑에 너울거린다." 누구의 말인지는 잊었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이 대사가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본다. "내가 너..

읽고본느낌 2025.05.16

1408d(6)

날아가는 것은꼬리가 있다 새도혜성도비행기도 해님도 다르지 않아 내 꼬리를 보는 건아마 처음일 걸 (140818) 내 웃음 뒤슬픔을 보렴 내 고움 뒤그늘을 보렴 내 화려함 뒤간절함을 보렴 그래야 나를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니 (140819) 마음 안에 무슨 꽃 피었길래이리 온화하게 웃으실까 그 꽃우리에게도 피어나기를 합장하며 빙그레~ (140820) 타박타박산들바람이 부는 속도로 타박타박개울물이 흐르는 속도로 타박타박봄이 오는 속도로 타박타박유유히 (140821) "너무 슬퍼하지 마라.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미안해하지 마라.누구도 원망하지 마라.운명이다." 그날시청 앞 그분이 생각난다 (140822) 하늘과 땅을 잇는평화의 심벌이 누구에게는찌르는 칼이 되었..

포토앤포엠 2025.05.15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84세의 모리스 씨가 생의 마지막 날에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호텔 바에서 흑맥주와 위스키를 마시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소중했던 사람들을 추억하고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독백 형식의 소설이다. 청자는 미국에 사는 아들 케빈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아일랜드 출신의 앤 그리핀(Anne Griffin)이다. 여성 작가가 80대 남성의 심리를 이토록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오히려 여성의 감성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소설은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장과 끝 장을 뺀 중간 장에 다섯 명의 인물이 나오면서 건배를 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첫번째 건배: 토니를 위하여(흑맥주)두번째 건배: 몰리를 위하여(부시밀스 21년 숙성 몰트위스키)세번째 건배: 노린을 위하여(흑맥주)네번째 건..

읽고본느낌 2025.05.14

고향에 다녀오다(5/9~12)

지난달에 이어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와 함께 지내다 왔다. "요사이는 자주 내려오네"라며 옆집 친구가 반겼다. 내려가는 날은 출발할 때부터 비가 내리더니 고향이 가까워지니 거센 비바람으로 변했다. 고속도로를 버리고 일부러 죽령 옛길을 탔는데 도로 위는 떨어진 나뭇잎과 잔가지로 어수선했다. 한 곳에서는 나무가 넘어져 도로를 가로막아 갓길로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다. 수십 년간 다닌 길이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바람을 동반한 비는 이틀 내내 내렸다. 고사리를 뜯으러 뒷밭에 갔다가 졸지에 잡초 제거 작업을 하게 되었다. 손을 안 본 밭은 망초가 무성했는데 비가 오고 난 뒤라 손쉽게 뽑히는 것이었다. 그 재미에 둘이서 한 마지기 밭을 정리했다. 세 시간 정도 걸렸는데 안 하던 노동이어선지 온몸이 뻐근..

사진속일상 2025.05.13

기차는 좀더 느리게 달려야 한다 / 곽재구

어릴 적에강 건너 산비탈 마을기차가 지나갈 때손 흔들었지창밖으로 모자를 흔들던 이가바람에 모자를 놓쳤을 때보기 좋았지 어른이 되어 기차를 타면창밖으로 모자를 흔들고 싶었지강 건너 앵두꽃 핀 마을아이들이 손을 흔들면창밖으로 하얀 모자를 흔들다명주바람에 놓아주고 싶었지 모자를 열 개쯤 준비해강마을의 아이가 손을 흔들 때하나씩 바람에 날리는 거야 KTX는 시속 삼백 킬로미터로 달리지손을 흔드는 아이도 없지 기차는 좀 느리게 달려야 해사람은 좀 느리게 살아야 해사람이 기차고기차가 사람이야미친 듯 허겁지겁 사는 거 부끄러워 시속 삼십 킬로미터면 강마을아이들과 손 흔들 수 있어시속 이십 킬로미터 구간에선초록의 꽃들과 인사 나눌 수 있지시속 십 킬로미터면 초원의 소들에게안녕, 무슨 풀을 좋아해? 물을 수 있어 목포에..

시읽는기쁨 2025.05.09

아차산 둘레길을 걷다

용두회에서 아차산 둘레길을 걸었다. 여섯 명이 함께 했다. 3년 전만 해도 아차산 정상을 지나는 코스를 잡았을 텐데 이제는 힘들게 걷지 말자는 분위기다. 세월이 더 흐르면 이런 길마저 벅차게 다가올 거다. 산길을 걷는 친구들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다가왔다. 데크와 흙길로 된 둘레길은 우리 같은 나잇대가 걷기에 딱 적당했다. 조망이 열리는 곳에서는 서울 시내가 펼쳐져 보였다. 활짝 핀 이팝나무 꽃이 눈부셨다. 아까시 향기가 솔솔 풍겨오는 산길이었다. 걸은 시간은 1시간 30분 가량이었다. 긴고랑골에서 걷기를 마치고 마을버스를 타고 군자역으로 나와 해물탕으로 점심을 했다. 안주가 좋아서 소주가 빠질 수 없었다. 루틴대로 당구 한 게임을 하고 일정을 마쳤다. 요사이 당구는 연승 중이다. 스트로크에 신경..

사진속일상 2025.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