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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시작

서울은 그래도 한강이 있어 아름답다. 한강변의 넓은 억새밭을 노랗게 물들이며 빌딩들 사이로 해가 진다. 가을도 저물었다. 어제부터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며 겨울의 시작을 알린다. 지금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서야 겨울 준비가 별 다른게 없지만, 옛날에는 김장을 하고 연탄을 들여 놓으며 겨울 준비에 부산했다. 그 당시 할머니, 동생과 셋이 살 때에도 배추를 50포기넘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좁은 부엌에 연탄을 가득 쌓고, 냉기를 막기 위해 방 창문 바깥에는 비닐을 붙였다. 벽으로는 왠 찬 바람이 그렇게 들어 왔는지 한창 추울 때는 이불로 벽에 커튼을 쳐야했다. 가끔씩 연탄 가스가 들어와서 어떤 날 아침은 정신이 몽롱해서 깨어났다. 그래도 밖에 나가 찬 공기를 쐬면 이내 정신이 들었다. 작은방 한 칸에 옹..

사진속일상 2003.11.23

절망하는 농심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다. 그저께는 농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급기야 도심에서의 폭력으로까지 이어졌다. 작년의 농민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현장의 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그 때 접한 농민들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한이 가득차 있었다. 대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한 젊은 농민은 울고 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다. TV로 보는 전경과의 충돌은 농민들의 속마음이나 울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우리 사회가 가는 길이 어디인지 심각하게 자문해 볼 때가 아닌가 한다. 그것은 농민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 그리고 이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쪽의 공통된 정서는 박탈감이다. 빛 좋은 개살구식 경제 성장의 이면에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길위의단상 2003.11.21

새벽 전화벨 소리

새벽에 전화벨 소리가 잠을 깨운다. 방안은 온통 깜깜한데 가슴이 철렁한다. 수화기를 드니 고향에 계신 어머님이시다. 이젠 심장이 방망이질친다. ".....무슨 일이세요?" "응, 별 일 없나... 다음 주말에 전부 모여서 김장 하기로 했으니까 그 때 내려 온나..." 아이구..... 그렇다고 이 꼭두새벽에 전화를 하시다니..... 새벽 전화벨 소리는 너무 무섭다. 고향에는 96세 되신 외할머니가 계신다. 몇 년 전부터는 치매 증상이 나타나서 함께 계시는 어머니가 무척 고생하신다. 금방 한 말도 잊어버려서 외할머니 옆에 있으면 똑 같은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 우습기도 하지만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이제 그만 돌아가셨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임종 소식이 올까 봐 늘 불안하다. 외할머..

길위의단상 2003.11.20

낙엽 / 구르몽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떨어져 땅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낙엽, 구르몽(R. Gurmon) 아침에 흐린 하늘이 낮이 되면서 개이더니 지금은 가을 햇살이 눈부시다. 이런 날은 하던 일..

시읽는기쁨 2003.11.19

노루귀

가을의 끝에서 봄의 시작을 본다. 3월..... 대기에 봄 기운이 스며들 때, 그러나 아직 산 속은 겨울이다. 그늘진 곳에는 잔설이 남아 있고 새 생명의 싹은 보이지 않는다. 이 때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봄 소식을 전하는 첫 생명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노루귀로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생화이다. 나의 봄은 이 노루귀와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주로 만나는 장소는 천마산과 소백산이다. 꽃의 크기라야 1-2cm 정도나 될까, 저렇게 여린 생명이 눈 속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은 경이롭기만 하다. 꽃색은 흰색, 연보라색, 연분홍색 등이 있다. 색깔이 너무 곱다. 그리고 줄기에는 가는 솜털이 빽빽히 나 있는데 역광으로 보면 무척 아름답다. 이 가을의 끝에서 내년 봄을 그려보는 것이 행복하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꽃들의향기 2003.11.18

쓸쓸한 그곳

터에 다녀오다. 늦가을이어선지 더욱 쓸쓸했다. 월동 준비를 한답시고 펌프에도 헌 옷가지를 둘러씌우고 바깥 수도꼭지도 물을 뺀 다음 폐쇄시켰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도 찾아갈 사람도 없었다. 다만 담안 사람들과 잠시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다. 도시의 소외가 싫었는데 지금까지는 시골 마을에서도 아직 이방인이다. 적응하기가 무척 힘이 든다. 지난 사건의 여파가 나에게는 아직 크다. 첫 눈에 정이 들기는 쉽다. 그러나 한 번 소원해진 뒤에 다시 정을 붙이기는 어렵다. 이건 사람이나 물건이나 땅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깊은 정이란 것은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상대의 결점이나 단점을 발견하고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 그러고도 느끼는 동질감이야말로 세월이 쌓인 깊은 정이라고..

참살이의꿈 2003.11.17

행복한 시간

자전거를 세워 놓고 강변에 앉아 석양을 본다. 퇴근할 때 자주 만나는 저녁 풍경이다. 하루 일을 마치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시간, 한낮의 분주함과 소란함이 서서히 잦아들고 모든 사물이 무채색 속으로 스며드는 안식과 평화의 시간, 비록 하찮은 하루였을지라도 상처 입고, 상처를 주며 아쉽기만 한 하루였을지라도 어쩐지 모든 걸 다 사랑하고 용서할 것 같은 넉넉한 마음이 되는시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비록 도시의 한가운데지만 이런 저녁 무렵이 나는 가장 좋다.

사진속일상 2003.11.14

산이 아프면 우리도 아프다

새벽첫차를타고내려오신어머님께서 그만가자. 이젠그만가자 다그만두고 이제,그만가자하신다. 단식서른여덟날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을 반대하는 지율 스님 단식이 오늘로 41일째입니다. 천성산은 경남 양산에 있는 산세는 크지 않으나 수려한 경관으로 경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산입니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설화도 있는 이 산에는 고산 습지와 함께 희귀식물과 동물들의 보고라고 합니다. 지금 정부는 이 산을 관통하는 고속철도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오직 개발과 편리와 경제성의 논리만이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미미한 꽃과 동물일지라도 함께 공존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습니다. 산이 아프면 우리가 아프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그 고통을 짊어집니다. 출세간의 자식을 찾아온 어머니의 모습..

길위의단상 2003.11.13

My heart leaps up / Wordsworth

하늘의 무지개 바라보면 내 가슴 뛰노라. 내 삶이 시작될 때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니 늙어서도 그러하리라. 아니라면 죽음만도 못하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컨대 내 생애의 하루하루가 자연에 대한 경애로 이어지기를.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 My heart le..

시읽는기쁨 2003.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