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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버스야 / 정현종

내가 타고 다니는 버스에 꽃다발을 든 사람이 무려 두 사람이나 있다! 하나는 장미 - 여자 하나는 국화 - 남자 버스야 아무데로나 가거라. 꽃다발을 든 사람이 둘이나 된다. 그러니 아무데로나 가거라. 옳지 이륙을 하는구나! 날아라 버스야, 이륙을 하여 고도를 높여 가는 차체의 이 가벼움을 보아라. 날아라 버스야! 오래 전 일이지만 시내 버스가 노선을 벗어나 엉뚱한 길로 달려서 신문의 가십거리가 된 적이 있다. 그 때 운전 기사의 말이 재미있었다. "매일 똑 같은 길로만 다니려니 답답해서 아무데로나 자유롭게 막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시인의 상상력은 버스를 하늘로 날리고 있다. 버스 안에 꽃다발은 든 사람이 둘이나 있다는 것도 유쾌한데, 그 버스는 땅에서 떠올라 하늘을 난..

시읽는기쁨 2004.05.14

신록

신록의 계절이다. 이양하의 '신록예찬'에서 신록을 유년과 장년과 노년으로 나누었는데 아마 지금의 신록은 유년과 장년의 사이쯤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른 봄, 이제 막 나무에서 새 잎이 나온 직후의 연한 연둣빛 색깔을 좋아하지만 지금처럼 아직 녹음에 이르기 전, 연초록의 빛깔이 나무를 감싸고 그래서 온산이 초록 물감으로 뒤덮인 이 때도 좋다. 사람으로 치면 파릇파릇한 십대의 모습일 것이다. 확실히 신록에는 사람에게 기쁨과 위로를 주는 묘한 힘이 있는 듯하다. 지난 주말에 고향을 다녀오며 대둔산에 들렀다. 나이가 들어서 찾는 고향은 이미 예전의 고향이 아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많은 것들이 낡고 허물어지고, 어릴 적 동무들은 그 자리에 없고, 연로하신 부모님은 병과 세월의 무게 앞에서 힘들어 하신다. ..

사진속일상 2004.05.13

웰빙 유감

점심 식사 자리에서 마시는 물이 화제가 되었다. "서울 부자들은 새벽에 뜬 한라산 약수를 비행기로 공수해 와서 아침 식사를 하며 마신다고 해." "몸에 좋다고 바다의 심해수를 사다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러니까 웰빙을 실천하자면 돈이 많아야 한다니까." 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웰빙 바람이 식을 줄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듣고 보게되는 웰빙이란 무엇인가? 웰빙의 시초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웰빙 바람은 변질되어 뭔가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리라지만, 웰빙도 몸과 건강에 대한 환상을 키우며 상품 판매와 소비에 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덩달아 매스컴이 부추기는 얼짱, 몸짱 신드롬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바닥에는 우리 ..

참살이의꿈 2004.05.12

사람들은 모두 불쌍해

한미르 커뮤니티에 김정란 님의 '현대시 읽기'라는 칼럼이 있다. 몇 번 게재되다가 지금은 글이 올라오지 않아 아쉬운데, 옛 글 중에서 공감이 가는 내용이 있어 옮겨 본다. 김정란 님은 언젠가 TV 프로에서 본 적이 있는데, 시인이 정치 토론 프로에 나온게 특이해서 유심히 지켜 보았다. 보수쪽 공격에 대해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현실에 비판적이면서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따스한 연민의 눈이 느껴졌는데 이 글에서도 비슷한 것을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불쌍해! 나도 불쌍하고, 너도 불쌍하고, 우리 부모님도 불쌍하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불쌍하다.' 나에게도 그런 느낌이 가끔식 찾아와 가슴이 아려지는 요즈음이다. 누구든 자기 한 몸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지요. 조금씩 그 고통을 가볍게 만들기..

길위의단상 2004.05.11

자운영

자운영(紫雲英)..... 자운영은 상상 속의 꽃이었다. 책을 통해서 처음 접한 꽃의 이름이 고와서일까, 봄이면 남도의 논에 지천으로 피어난다는 자운영은 내 마음속에서도 곱게 자라고 있었다. 자운영은 고우면서도 왠지 슬픈 이미지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름을 불러보면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뭔가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듯한 소녀의 모습이 연상되는데, 몇 해전에 읽었던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라는 책의 제목도 그런 느낌을 더해 주었다. 며칠 전에 전북 봉동을 지나다가 논에 피어있는 자운영 꽃밭을 만났다. 옆에 앉아있던 아내가 "와, 자운영이다!"하고 감탄하는 소리에 차를 세우고 논에 내려섰다. 이곳 저곳 논 가득히 마치 가꾼 듯 자운영이 피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자운영을 한꺼번에 본 것도 처음이었다..

꽃들의향기 2004.05.10

그리스도의 수난

어제 밤에 본당에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을 상영했다. 많은논란과 화제가 된영화라서 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되었다. 조금은 소란스러운 분위기, 작고 선명하지 못한 화면 등이 흠이었지만 꼭 옛날의 시골 극장같은 분위기여서 색다른 맛이 있었다. 영화는 그리스도의 체포로부터 죽음까지 하루도 못 되는 마지막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성서에 충실하게 당시 상황을 재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사람들의 말이 당시에 사용되었다는 아람어와 라틴어로만 되어 있어 더욱 실감이 났다. 미국에서논란이 되었다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유대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대체로 성서에서 묘사한 것과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성서의 기술을 그대로 따라 영화를..

읽고본느낌 2004.05.07

갈대 / 마종기

바람 센 도로변이나 먼 강변에 사는 생각 없는 갈대들은 왜 키가 같을까. 몇 개만 키가 크면 바람에 머리 잘려나가고 몇 개만 작으면 햇살이 없어 말라버리고 죽는 것 쉽게 전염되는 것까지 알고 있는지, 서로 머리 맞대고 같이 자라는 갈대. 긴 갈대는 겸손하게 머리 자주 숙이고 부자도 가난뱅이도 같은 박자로 춤을 춘다. 항간의 나쁜 소문이야 허리 속에 감추고 동서남북 친구들과 같은 키로 키들거리며 서로 잡아주면서 같이 자는 갈대밭, 아, 갈대밭, 같이 늙고 싶은 상쾌한 잔치판. 산등성이의 나무들도그러하다. 고르게 키를 맞추며 자라는 모습이 꼭 전지를 해 놓은 것 같아 신기하게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들은 함께 살아나가는 지혜를 절로 터득하고 있는 셈이다. 그네들 세계에도 경쟁..

시읽는기쁨 2004.05.06

둥굴레

아침 일찍 산에 오른다. 숲은 한 밤의 정적이 아직 남아있어 신비감이 든다. 가끔씩 부지런한 새의 울음소리도 들린다. 나무 줄기 사이로 사선으로 비쳐드는 햇빛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져 숲을 뚫고 들어온다. 아직 사람의 발자국이 묻지 않은 산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 올라간다. 길 옆의 야생화도 잠에서 깨어나 이슬로 세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꽃들은 아직 이부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모른다. 이른 아침의 꽃들은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훨씬 더 순수하고 청순해 보인다. 신발과 바지 밑자락은 축축해질지라도 꽃들과 첫 인사를 나누는 기쁨이 더 크다. 둥굴레가 이슬에 함빡 젖은 채 수줍은듯 잎사이에 숨어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잘 볼 수 없는 꽃이다. 그러나 몸을 낮추고 ..

꽃들의향기 2004.05.05

서울 광장

서울에 살지만 도심에 나가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 지하철로 이동하기 때문에 지상의 풍경을 보기란 무척 드물다. 그래서 가끔씩 마주치는 서울의 모습이 낯설 때가 많다. 뭐가 그리 쉽게 자주 변하는지 서울 시민이지만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은 며칠 전에 개장했다는 서울 광장을 보고 싶어서 작심하고 시청 앞으로 나가 보았다. 초록 잔디가 시원하게 깔려 있어서 우선 시각적으로 밝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전체 모양은 타원형이라지만 잔디 위에 있으면 너무 넓어서인지 그 윤곽이 들어오지 않는다. 잔디 위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한가로운 평일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유와 평화가 느껴진다. 그리고 온통 빌딩으로 둘러싸인 사방과 대조되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나 벤치같은 ..

사진속일상 2004.05.04

제비가 오지 않는 땅

제비꽃은 피었는데 제비는 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제비를 못 본지가 몇 년이 된 것 같다. 옛날이었으면 아마 지금쯤 강남에서 찾아온 제비들이 논밭 위를 날렵하게 날아다니고 마당의 빨래줄 위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지배배 지저귀는 소리가 시작될 때이다. 시골에서 자란 중년의 연배라면 제비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사실 제비는 참새나 까치보다도 더 우리와 친근한 새였다. 그것은 사람과 동거하는 습성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면 흥부전을 통해서 은혜 갚는 새로 우리 머리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제비는 시골 초가집의 서까래와 벽 사이에 집을 지었다. 대부분의 새들이 사람을 두려워하건만 제비는 사람 집에 일부러 찾아들어 온다. 그런데 하필 집 짓는 곳이 사람들이 들고나는 문 위일 경우..

길위의단상 2004.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