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웰빙 유감

샌. 2004. 5. 12. 16:07

점심 식사 자리에서 마시는 물이 화제가 되었다.

"서울 부자들은 새벽에 뜬 한라산 약수를 비행기로 공수해 와서 아침 식사를 하며 마신다고 해."
"몸에 좋다고 바다의 심해수를 사다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그러니까 웰빙을 실천하자면 돈이 많아야 한다니까."

작년부터 불기 시작한 웰빙 바람이 식을 줄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듣고 보게되는 웰빙이란 무엇인가?

웰빙의 시초가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웰빙 바람은 변질되어 뭔가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리라지만, 웰빙도 몸과 건강에 대한 환상을 키우며 상품 판매와 소비에 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덩달아 매스컴이 부추기는 얼짱, 몸짱 신드롬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바닥에는 우리 사회의 여러 병리적 요인들이 들어있다.

웰빙(Well Being)은 말 그대로 '잘 존재하기'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존재하는 것'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어떤 형태의 삶이든 '함께'의 정신이 들어있지 않다면 웰빙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고 본다. '함께'는 우리 존재의 기본 특징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가 없고 이웃이나 다른 생명들과 얽혀서 살아간다. 그 그물망은 우리가 느끼는 이상으로 치밀하고 조직적이다. 세상은 어찌되든 나나 내 가족의 둘레에 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서 호의호식하리라 생각하는 것이 어찌 가능할 것인가?

사람들은 맑은 공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는 자동차 운전대에 앉는 것에 거침이 없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울지만, 현실로 돌아와서 생명을 대하는 냉혹함을 볼 때 그것이 악어의 눈물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우리들 옆에는 한 끼 음식이 없어서 배고파하는 이웃이 많은데, 비싸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넘치게 마련하면서 웰빙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고 비판적인 견해를 적었지만 그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있다. 영화에서 본 잔혹한 폭력은 골고다의 예수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크고 작게 자행되고 있다. 불의는 늘 의의 가면을 쓰고 세상을 지배한다. 그리스도에게 가해진 폭력에 분노할 뿐만 아니라, 일상에 숨어있어서 쉽게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가 저지르는 불의와 폭력에도 눈을 돌리고 통회할 줄 알아야겠다.

우리들 대부분은 불의와 탐욕의 시대를 사는 같은 공범자들이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것을 외치며 돌진하고 있는 공격성이 그런 공범의 증거이다. 광포한 질주에 의해 밟히고 꺾이는 여린 생명들이 공범의 증거이다. 정의와 양심이 짓밟혀도 분노할 줄 모르는 우리의 마음이 공범의 증거이다.


'오늘날, 아동학대가 끊이지 않고 가족 동반 자살과 눈물이 끊이지 않는데 그 눈물과 고통의 강가에 주상복합 빌딩을 지어놓고 웰빙이라고?
사기꾼과 인신매매, 투기꾼들이 어슬렁거리는 세상, 청소년은 부초처럼 자라고, 독거노인과 무의탁자들이 죽을 기력도 없이 사는 세상 귀퉁이, 북녘에서는 압록강을 건너다 죽는 소리, 풀뿌리 붙드는 신음소리 들리는데, 더더욱 지구 곳곳 하루에도 수 만명씩 항생제 한 알이 없어 시들어가는데, 우리는 웰빙이라고?
얼짱, 몸짱, 뱃살이 걱정이라고?
한 사내의 등짝에 무관심과 편견의 채찍을 갈기고도 태연하게 웰빙이라고?'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화싹이 나오다  (5) 2004.05.24
반가운 손님  (4) 2004.05.16
마가리의 선물  (0) 2004.05.02
새 식구  (1) 2004.04.20
나무를 심다  (6) 2004.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