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제비가 오지 않는 땅

샌. 2004. 5. 3. 15:47

제비꽃은 피었는데 제비는 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제비를 못 본지가 몇 년이 된 것 같다.
옛날이었으면 아마 지금쯤 강남에서 찾아온 제비들이 논밭 위를 날렵하게 날아다니고 마당의 빨래줄 위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지배배 지저귀는 소리가 시작될 때이다.


시골에서 자란 중년의 연배라면 제비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사실 제비는 참새나 까치보다도 더 우리와 친근한 새였다. 그것은 사람과 동거하는 습성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면 흥부전을 통해서 은혜 갚는 새로 우리 머리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제비는 시골 초가집의 서까래와 벽 사이에 집을 지었다. 대부분의 새들이 사람을 두려워하건만 제비는 사람 집에 일부러 찾아들어 온다.
그런데 하필 집 짓는 곳이 사람들이 들고나는 문 위일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처음 집을 지을 때는 작대기로 뜯어내 보기도 하지만 제비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뜯어낸 자리에 연신 진흙과 짚을 물고 와서 집짓기를 계속한다.
나중에는 사람이 두 손을 들고 만다. 결국 밑에 판대기를 대서 오물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놓고 서로가 타협을 한다. 그래도 그런 제비가 밉지가 않았다.


제비는 무척 부지런한 새다. 집을 짓고 나면 새끼를 낳아 기른다.
새끼에게 먹일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루 종일 들락거리는 제비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새끼들은 먹이를 물고 오는 어미를 기다리다가 어미가 나타나면 둥지 안에서 고개만 내밀고 입을 한껏 벌려 아우성치는 모습은 너무나 귀여웠다.
마루에 누워 그 모습만 구경하고 있어도 하루가 지루하지 않았다.


사실인지 모르지만 제비는 자기가 태어난 집을 다시 찾아온다고 했다.
어느 해인가는 식구들이 밥 먹는 자리 바로 위에다 제비가 집을 지었다. 어두컴컴한 저녁에 밥을 먹는데 위에서 뭔가가 툭하고 떨어졌다. 아직 털도 나지 않은 작은 제비 새끼였다. 놀라기도 했지만 제비가 다치지 않았을까 모두들 제일 걱정이었다.
아버지가 고이 두 손에 받쳐들고 다시 둥지 위에 올려 주었다. 다행히도 며칠 뒤에 온전한 새끼 숫자를 확인했을 때 너무나 기뻐했던 기억도 새롭다.


제비의 모습은 날렵하고 수려하다. 목 아래 부분에는 갈색으로 단장했고, 배 부분의 흰색은 검은 날개와 대조되어 선명하게 드러났다.
특히 뒤쪽으로 쭉 뻗은 날개는 앉아있을 때 보면 사진에서나 보던 서양 신사의 옷과 비슷했다.

제비는 일류 비행사였다. 빠른 속도로 지면을 스치듯 날면서 급상승이나 급강하를 하는 곡예 비행은 어떤 날짐승도 흉내내지 못할 것이다.


또 제비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았다. 다른 생물이 그렇게 늘상 집에서 소리를 낸다면 질릴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짧게 끊어지는 제비의 명랑한 지저귐에 시끄럽다고 짜증을 낸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만큼 자연을 닮은 소리였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제비는 한 가족과 같았다.
한 여름이 지나서 새끼를 다 기르고 가을이 되면 제비들은 마을 가득 모여들어 헤어질 의식을 치렀다. 어디서들 그렇게 많이 모였는지 줄 위에 새까맣게 앉아있는 모습은 먼 곳으로 떠나기 직전 집합 점검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제비는 사라졌다. 제비가 떠나간 마을은 한 순간 허전해졌다. 텅 빈 제비집을 바라보며 마치 가족 중의 하나가 없어진 것처럼 아쉽고 서운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이젠 그 가깝고 흔했던 제비를 볼 수가 없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그들은 우리 땅을 찾아오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어디 한둘이겠느냐마는 제비를 상실한 것만큼 가슴 아픈 일도 없다.


비록 초가집에서 가난했지만 마음은 넉넉했었는데, 그 후로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우린 너무 급히 달려온 것은 아닐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다시 제비가 찾아오는 땅으로 바뀌어질 수 있을까?
그 많던 제비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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