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아빠는 꽃처럼 살자고 했죠

샌. 2004. 5. 18. 15:26

나이가 들수록 동요의 노랫말이 가슴에 저며온다.

어릴 때부터 '파란마음 하얀마음'의 노랫말을 좋아했는데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정이 가는 건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 동요가 주는 분위기에 젖어들게 되고 옛 동무를 만난 듯 반갑기만 하다.

가끔씩듣게 되는 다른 동요의 노랫말들도 어쩌면 그리 이쁜지 모르겠다.

옛날 노래 가사에는 인간의 순수한 그리움이나 정이 자연과 잘 조화되어 표현되고 있다.

며칠 전에 '파란마음 하얀 마음'의 노랫말을 지으신 어효선 선생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옛날에 부르던 동요들이 다시금 생각난다.

그 분이 지은신 노래 중에서 널리 알려진 세 곡의 노랫말을 다시금 흥얼거려 본다.


< 파란마음 하얀마음 >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며 자라니까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예요

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 과꽃 >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 보면

꽃 속에 누나 얼굴 떠오릅니다

시집간지 언 삼 년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 꽃밭에서 >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 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애들하고 재미있게 뛰어 놀다가

아빠 생각나서 꽃을 땁니다

아빠는 꽃처럼 살자고 했죠

날보고 꽃같이 살라고 했죠

 

얼마 전에는 어린 시절 친구가 이승을 떠나 갔다.

워낙 험한 일들이 많이 생기다 보니 사람의 목숨조차 그런가 보다하고 무덤덤해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친구의 죽음은 가슴에 구멍 하나를 뻥 뚫어 놓는다.

2년 전에 상처를 하고 무척 상심하던 친구였다. 오래 다니던 회사를 타의로 퇴직하고 경제적으로도 무척 힘들어했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다가 별안간 세상을 떴다. 갑작스런 소식에 동기들도 할 말을 잃었다.

부모를 모두 보내고 남은 남매가 빈소에서 울고 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촌놈같지 않게 희고 곱상한 얼굴로 아주 인기가 많던 친구였다.

나와는 마음을 터 놓고 지낼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동안 학창 시절을 같이 보냈다.

사람 목숨이 모질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허무하게 너무도 쉽게 끊어지기도 한다.

그것은 사는데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하늘이 보내는 메시지일지 모른다. 어느 순간 우리 곁을 떠나가는 지인들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무언의 유언일지 모른다.

친구의 죽음 앞에서 다만 슬퍼하는 것만으로 그친다면, 그리고 아직 나에게 순서가 돌아오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우리는 계속 방관자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 '꽃밭에서'의 노랫말에도 먼저 떠나간 아빠를그리워하는 아이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아이는 노는 데서 떨어져 나와 꽃을 따며 아빠를 생각한다. 아이의 슬픈 손짓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다.

그러나 현실의 아빠는 없지만 아이의 마음 속에서 아빠는 꽃의 이미지로 영원히 살아있다. 아마도 아이는 살아가면서 마음 속의 아빠로부터 힘과 지혜를 얻을 것이다.

친구의 명복을 빌며, 남은 아이들이 험한 세상에서 용기를 잃지 말고 잘 살아나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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