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길 떠난 사람들

샌. 2004. 4. 23. 13:31
우리는 모두 길 위의 사람들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이젠 잊어버린 고향 집을 떠나 와서 어딘가로 가고 있는 나그네들이고 순례자들이다.

내가 가는 길은 어떤 길인가?
길 위에 올라섰으니 무작정 걷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무언가의 꿈을 쫓아 아니면 신기루에 희망을 걸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어느 길 모퉁이에서 남은 여정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헤어진 신발에 다리를 절뚝이며 자꾸만 뒤쳐지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런데 여기,
생명평화를 위한 탁발순례의 길에 나선 분들이 있다.
지난 3월에 지리산을 출발하여 3년 계획으로 전국을 순례하며 생명평화의 기운을 일으키려는 도법과 수경, 두 분의 스님이시다. 그리고 이분들 뜻에 동참하는 여러 사람들도 동행하고 있다.

깊은 산 속에서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도 있지만, 이렇게 바람과 맞서서 새 길을 내려는 수행자들도 있다.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
부디 생명평화의 기운이 인적 드문 산 속에서부터 저자 거리까지 가득해 지는 날을 희망해 본다.

`희망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 아래 사진과 글은 생명평화 탁발순례 사이트 < www. lifepeace.org >에올라있는 내용을 인용한 것입니다. )



집도 절도 없는 순례자가 되어 걷고 또 걸었다.
끝없는 첫걸음, 한 걸음으로 순간순간을 걸었다.
3월 1일 노고단에서 내딛은 첫걸음으로 지리산 지역 1천 5백 여리의 길을 걸었다.

사람들은 무엇 하려고 순례 길에 나섰느냐고 묻는다.
사람들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굳이 말하자면 자신과의 만남, 사람과의 만남, 자연과의 만남 정도이다. 몸과 마음의 시선을 거두어 정직하게 자기소리를 듣고 자기를 알고 온전한 자기됨으로써 스스로 생명평화의 존재가 되어 살아가고자 함이다.

가슴을 열고 서로 만나고 대화하고 사귐으로써 너와 나의 삶이 생명평화의 삶이 되게 하고자 함이다. 생명의 소리에 따라 자연과 만나고 교감하고 조화를 이룸으로써 인간과 자연이 함께 건강한 생명평화의 세상이 펼쳐지게 하고자 함이다. 처음 마음은 아름다웠고 처음 열정은 뜨거웠다.

지리산 지역 순례를 끝낸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걸음걸음이 생명평화의 존재로 태어나는 탁발순례가 되었는가?
무수한 만남들이 생명평화의 삶을 싹트게 하는 만남의 탁발순례가 되었는가? 온 몸과 마음으로 만나는 자연과의 관계들이 생명평화의 관계로 뿌리 내리게 하는 탁발 순례가 되었는가? 지속적으로 함께 생명평화의 문화를 가꾸어갈 일꾼들을 조직적으로 연대하는 탁발순례가 되었는가?

곳곳에서 좋은 분, 고마운 분들을 만났다. 날마다 좋은 일, 고마운 일들이 있었다. 매일 따뜻한 잠자리, 맛있는 식사대접을 받았다. 인상적인 일, 감동적인 일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신문 방송에서 세상 말세가 되었다고 야단들이지만 걸으면서 만나고 경험한 내용은 정 반대였다.

순례 길에서 만나고 경험한 것만을 놓고 보면 세상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순례자를 맞이하고 대접해 준 것들을 놓고 보면 우리 사회의 인정이 너무 넉넉하고 따뜻했다. 현상적으로 보면 좋은 일 잘 되는 일이 무수히 진행되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생각하면 매우 감동적이고 희망적인 경우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었다.하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문제는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너무 절망적이다.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순례자의 불안과 회의는 더욱 깊어진다. 실상을 알면 알수록 답답함은 나날이 더해간다. 어찌할 수 없는 좌절감과 속 쓰린 아픔은 감내하기 어려운 짐이 되어 무겁게 압박해온다.

답답한 한숨만 토해낼 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농부들의 심성도, 삶도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져 있었다.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사리사욕의 중병에 걸려 있었다. 나라의 근간인 지역 사회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국민의 목숨 밭인 농촌사회가 뿌리 채 뽑혀지고 있었다.

지도자도 서민도 모두 눈멀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있었다.어느 곳 누구를 만나도 구태의연하게 돈타령만 하고 있었다. 참담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생명평화의 길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매우 절망적인 현실이다. 그렇지만 생명평화의 삶을 향한 꿈을 접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을 마을에서 만난 좋은 인연들이 있었다. 지역 지역에서 손잡은 뜻 깊은 만남들이 있었다. 좋은 만남, 뜻있는 손잡음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우리의 희망을 일구어낼 원동력은 곳곳에서 이루어질 좋은 만남에 있다. 뭇 생명의 염원을 실현할 터전은 뜻있는 손잡음임을 의심치 않는다.

이 고을 저 고을에서 드러나지 않게 활동하는 좋은 벗들이 있다. 그들이 나서서 뭇 생명들에게 희망이 될 생명평화의 등불을 높이 들어올리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구석구석에서 소리 없이 일하고 있는 그리운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나서서 우리 시대의 희망을 위해 생명평화의 등불을 환하게 밝히리라 믿는다.

지역 지역에서 순례자의 꿈과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좋은 만남을 준비해 주었으면 좋겠다. 고을 고을에서 순례자의 기대와 믿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뜻있는 손잡음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

생명평화의 꿈을 함께 꿀 좋은 벗들과 함께 할 수 있길 기도한다.

<道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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