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산다는게 뭔지

샌. 2004. 4. 1. 13:03
"산다는게 뭔지....."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나갔을 때 이 말을 늘 입에 달고 사는 분이 계셨다.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언제나 넋두리 비슷한 독백으로 말하곤 했다. 그 어투가 특이하고 재미있어서 모두들 그 말을 들으면 빙긋이 웃었다. 그래서 그 분의 별명이 곧 `산다는게 뭔지`였다.

똑 같은 말을 계속 들으면 식상하기도 하련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듣는 소리인데도 그 분의 독백에는 어떤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경박하지 않은 진지한 그 분의 태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말을 할 때 그 분의 주름진 얼굴에는쓸쓸함이랄까 우울함이랄까 뭔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번져 나왔다.
그말에 누구도 결코 농담으로 대꾸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의 독백이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철학적 질문같기도 했다.

그래서`산다는게 뭔지`가 의미하는 어떤 공통된공감대를 말은 안했지만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의 하나일 수도 있어서 그랬는지 모른다.각자가 처한 입장에서누구에게나 해당되는말이었다.

요즈음은 내 입에서도`산다는게 뭔지`란 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 나온다.
그리고 그 때마다 옛날 그 분이 생각난다. 아마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삶의 비밀이 있었을 것이다.어떤 면에서는 타인들과의 단절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분만이 경험했을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이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산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한 손에 온 세계를 다 휘어잡을 듯하던 기개도 사라지고, 찬란했던 꿈이 실은 초라한 환상이었음을 확인하게 될 때 인생은 사막같이 무미건조해진다. 또 다른 오아시스를 발견할 때까지 그의 걸음은 힘들고 비틀거린다.
어느 누구에게나 스산하고 고단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사는게 다 그런거라며 자위하기도 하지만 그것이갈증을 채워 주지는 못한다. 발버둥을 칠수록 삶은 더욱 깊은 함정으로 몰고가는 심술꾸러기 같다.

그런 객관적 사실보다는 외풍에 무턱대고 흔들리고 있는 내 자신이 더 밉다.
바깥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나는 내 길을 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많은 것이 착각이었고 어느 것도 실체는 없었다.
인생의길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앞이 보이지 않는다. 새로 만나게 될 오아시스마저 감로가 되지 못할 것 같은 절망감이 두렵다. 내 자신에게는 물론 세상에서 또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이라는단어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오늘 황사로 덮인 하늘은 흐리고 바람은 나뭇가지를 무자비하게 흔들고 있다.

자꾸 우울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오후 시간, `산다는게 뭔지`를 뇌이던 옛날 그 분의 쓸쓸한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 정말 산다는게 뭘까?
나는 도대체 그 의미의 한 자락이나마 깨닫고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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