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한글은 싫다

샌. 2004. 5. 21. 13:11

5월초에 서울시에서 주관한 축제가 있었다.

시청 앞에 잔디 광장을 꾸미고 그곳을 중심으로 10여일간 시민 축제를 열었다.

그런데 그 축제의 이름이 'Hi Seoul Festival'이어서 지나치게 영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있었다.

사실 그 때의 포스터를 보면 온통 영어로 뒤범벅되어서 과하다 싶은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었다. 축제의 주제를 'RED'로 정하고 R은 Refreshing하는 식으로 행사의 의미를 설명해 놓아 외국인을 위한 행사같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Hi Seoul' 대신에 '안녕 서울' 한다고 해서 시대에 뒤져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외국인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리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 서울시가 이번에는 시내 버스 노선을 개편하면서 버스를 4종류로 나누고 색깔로 구분하면서 버스 옆에 대문짝만하게 영어 알파벳을 써놓았다. 버스 정류장에도 이 영어 알파벳으로 버스의 종류를 알아보게 할 셈인 모양이다.

버스는 어떤 면에서거리의 얼굴이다. 우리 서울 거리에 큼지막하게 영어 알파벳을 써붙인 버스가 늘 왕래한다고 생각하니 사실 기분이 별로다.

영어 말고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예쁜 도형이나 우리 글은 없었을까?

한국적인 맛이 물씬 풍기는 그런 아름다운 상징이 찾아보면 분명 있을 것이다. 국제화 시대라고 영어를 많이 써야 하는 것은 아닐텐데 그런 점이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얼마 전에는 삼성카드의 신문 광고에서도 그런 점을 느꼈는데 그 문구는 다음과 같다.


그녀를 만난다.......

삼성플라자에서 100일 선물 사고

미스터 피자에서 점심을 먹고

빈폴에서 커플티도 사볼까?

아, 크라운베이커리! 케이크도 준비하자

메가박스에서 영화 본 뒤엔

마르쉐에서 저녁을 먹고

에쓰-오일 들렀다 드라이브나 할까?

계산은 삼성카드 보너스 점수로 한다


도대체 우리 글은 조사 역할로만 전락하여 초라하기까지 하다. 쉼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내용도 마음에 안 들지만 내 눈에는 아무래도 영어 단어가 지나치게 많다.

삼성이라면 우리나라 일류 기업으로 사회와 문화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데 그 회사가 내보내는 여러 광고 내용에는 개인적으로 문제점을 많이 느끼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내고 또 사용하는 개인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시내에 나가보면 순수한 우리말로 된 예쁜 간판들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젊은 부부들은 아이의 이름을 한자보다는 순한글로 지을려고 한다.

그에 반하여 대기업이나 행정 기관에서는 도리어 앞장서서 영어 사용을 남발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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