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본당에서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을 상영했다.
많은논란과 화제가 된영화라서 보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되었다. 조금은 소란스러운 분위기, 작고 선명하지 못한 화면 등이 흠이었지만 꼭 옛날의 시골 극장같은 분위기여서 색다른 맛이 있었다.
영화는 그리스도의 체포로부터 죽음까지 하루도 못 되는 마지막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성서에 충실하게 당시 상황을 재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사람들의 말이 당시에 사용되었다는 아람어와 라틴어로만 되어 있어 더욱 실감이 났다.
미국에서논란이 되었다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유대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별다른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대체로 성서에서 묘사한 것과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성서의 기술을 그대로 따라 영화를 제작한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어떤 면에서는 단점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영화의 특징은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폭력과 잔인한 장면들에 있는 것 같다.
꼭 긴 시간동안 그 정도로까지 수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일 수도 있고, 실제로는 더 심했을 수도 있다.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서 감동을 느끼면서 받게 되는 메시지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몸과 피는 있지만, 예수의 영혼의 깊이와 고뇌는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인다. 그것은 십자가에 매달린 이후의 장면들이 뭔가 허전해 보이는 것과 연결될 수 있다. 지금 돌아보면 오직 손과 발에 쇠못이 박히는 끔찍한 장면만이 떠오를 뿐이다.
내 과민반응인지 모르지만 피로 범벅된 화면을 보면서 고대의 인신공양픙습이 연상되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쳐 그 피로 신을 기쁘게 하고 자신들의 죄를 대속받는 야만적 종교 풍습이 재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 감독의 의도는 인간을 구원하고 죄를 대속하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하는 많은 관객들의 심정 또한 동일할지 모른다.
마리아가 하얀 손수건으로 바닥에 남은 예수의 피를 경건하게 닦는 장면이라든가, 화면 사이사이에 삽입되는 성서 구절들이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또 자주 나타나는 마리아와 요한의 얼굴표정에서 감독이 의도하는 바를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바로 마리아와 요한의 태도이다. 그런 극한적이고 잔혹한 상황에서 바로 옆에서 예수를 지켜보는 마리아와 요한의 모습은 너무나 냉정하고 침착해서 영화의 흐름과는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마리아가 눈물을 흘리기는 하지만 가슴을 후비는 그런 슬픔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특히 제자 요한은 거의 무표정한 얼굴로 예수를 제 3자처럼 바라보고 있다.
감독의 생각은 예수 수난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 사람이 마리아와 요한이었음을 나타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예수 수난과 피의 의미를 전하려는 것이 영화의 주제일 것이다.
영화를 보고난 뒤의 느낌은 근본주의적 시각에서 이 영화가 제작되었다는말이 맞을 것 같고, 잔인한 수난 과정을 통해서 열성 신자들의 눈물과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조금은 비판적으로 이 영화를 보았지만 믿음이란 무엇이고, 구원이란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었다.
종교인이 과반수가 되는 현실에서 세상은 자꾸만 삭막해지고 힘들어진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은 넘쳐나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본받고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백 마디의 설교나 눈물이 아니라 예수의 뒤를 따라 걸어가려는 의지이며, 삶의 태도에 대한 근본적 전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