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로 ‘아홉살 인생’을 보았다.
6, 70년대쯤 되는 경상도 어느 중소도시의 작은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 이야기인데, 서울에서 우림이라는 예쁘고 똑똑한 여자아이가 전학을 오고 그동안 아이들의 대장 노릇을 해 온 여민이 우림을 좋아하게 되면서부터 벌어지는 아이들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40대 이상의 어른들이라면 대부분 옛 추억에 잠기게 하는 내용으로 각자의 아홉살 시절을 되새겨 보게 한다. 다만 이 영화에서도 어른같은 아이들과 철없는 어른들의 대립 구도가 신경을 좀 거슬리게하는데 아이들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는 꼭 모자라는 어른들이 아이들과 대비되어 그려지는지 모르겠다.
나는 60년대에 경상도 산골 지방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한 학년에 두 학급씩 있었는데 유교적 전통이 강해서 그랬는지 항상 남자반과 여자반으로 구분되어서 학교 생활을 했다. 그래서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여자아이들과의 사귐은 거의 없었다.
지금 옛날을 돌이켜 보아도 오직 같은 남자 또래끼리의 생활밖에 기억이 안 난다. 등하교길에도 서로들 먼 거리를 두고 따로따로 다녔으니 여자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사귀거나 대화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 영화에서처럼 남자와 여자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골목길에서 같이 놀고 심지어골목 싸움판에도 같이 동행하고 하는 광경은 내 유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왠 바람이 불었는지 4학년이 되면서 남녀 혼성반으로 편성했다. 초등학교 6년간 유일하게 여자아이들과 한 반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보수적인 양반 고을에서는 지나치게 파격적이었던지 다음 해부터는 다시 원래대로 남녀가 분리되었다.
그때에 같은 반에 H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내가 최초로 첫사랑의 감정을 느낀 이성의 친구였다. 어쩌면 일방적인 짝사랑이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갑자기 가까이 등장한 이성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다. 이제는 희미해져버린 기억 속에서 그 아이에 대한 몇 개의 단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H의 모습만은 아직 선명히 뇌리에 남아있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동그란 얼굴이었는데 공부도 잘 했고 조용하고 차분했다.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좋아해서 가슴으로만 애를 태웠던 기억이 난다. 말을 나눈다거나 좋아한다는 표현을 하지도 못했다. 다만 주변의 아이들이 둘이 서로 좋아한다면서 자주 놀렸다. 그래서 더욱 움츠려들었을 것이다. 그런 소문이 난다는 것은 무척 창피한 일이라고 느꼈다.
몇 해전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더니 한 친구가 H의 얘기를 꺼냈다. 그때 서로 좋아하더니 지금도 알고 지내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는 H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를 통해서 H의 근황을 대략 들을 수 있었다.
H와는 같은 분단에 속해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숙제 검사를 선생님 대신 분단장이 했는데 앞에서부터 지나가며 숙제 안 해온 아이를 골라내야 했다. 나는 남자 분단장이었고 H는 여자 분단장이었는데 서로 교대로 분단의 노트 검사를 했다. 내 차례가 되어 H의 옆에 서 있을 때면 늘 가슴이 설렜다. 글씨도 예뻤고 항상 숙제 내용도 완벽했다. 그런데 한번은 H가 숙제를 반 정도밖에 해 오지 않았다. 다른 아이 같았으면 일으켜 세웠을 텐데 그냥 모른 척 지나가 버렸다. 내 행동에 대해서 H가 어떻게 생각했을지 그 뒤로 무척 고민했던 기억도 있다.
또 분단별로 청소를 했는데 남자아이들은 교실 바닥을 걸레로 닦고 여자아이들은 밖에서 걸레를 빨아주었다. 교실 안에서 창을 통해 걸레를 내밀면 밖에 있던 여자아이들이 받아서 물에 빨아 돌려주었다. 지금쯤 가면 H가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청소보다도 H와 마주치는 것만을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막상 걸레는 H가 앞에 있어도 다른 아이에게 줄 때가 많았다. 소심하고 부끄럼 많은 성격 탓이었을 것이다.
왜 그때 좋아한다는 표현을 해보지 못했는지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에서 보는 아이들은 서로 편지도 보내고 좋아한다는 감정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으니 말이다. 속으로 애태우기만 하던 내 모습과 비교하면 부럽기만 하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민이 우림의 뺨에 뽀뽀를 하고 뛰어가는 장면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러다가 2학기 때 가까운 읍으로 전학을 가면서 H와의 일방적 관계도 끝이 났다. 속으로만 혼자서 좋아하던 관계로 밖으로는 끝까지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뒤로 H는 내 마음에서 점점 멀어졌고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마음 속에 담겨져 있었다. 1년 뒤에 다시 원 학교로 되돌아 왔지만 이미 다른 반이 되었고 그리고 모두들 중학교 입시 준비에 바빴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서울에서 우연히 H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면목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웃에 H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H는 오빠집에서 지내며 회사에 다니고 있었던 걸로 기억난다. 언젠가는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때 짝사랑했던 여자아이가 이젠 어엿한 숙녀가 되어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서 이렇게 다시 만나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그때의 상황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몇 차례 만났을 것이고, 그리고 여러 얘기도 나누었을 터인데 이상하게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 H의 입장이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열살 때의 열정이 상대방으로부터 재확인받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뒤 얼마되지 않아 H는 이사를 갔고, 다시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둘이서 어느 초여름의 휴일에 구파발로 딸기를 먹으러 갔던 기억은 난다. 당시의 구파발은 서울 외곽의 농촌 지역이었다. 버스를 내리니 길 양편으로 딸기밭이 펼쳐져 있었다. 맑고 따스했던 날이었다.
H는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했다. 둘이서 방에 있을 때 미닫이 방문을반쯤 열어놓고 얘기를 나누던 조신스러움을 보여주던 기억 등이 나지만 둘이서 어떤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하나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서울에서의 만남은 열살 때의 마음에 비하면 너무나 무미건조했다. 초등학교 동기 이상의 사랑의 감정을 양쪽 다 가져보지 못한 채 헤어진 것이다. 초등학교 때 어린가슴을 설레게 했던 마음에 비하면 너무나 허무한 결과였다. 그것이 너무 아쉽다.
그 뒤로 헤어진지 벌써 30여년이 흘렀다. H는 내 철모르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내 좋아했던 마음을 얘기해 주고 싶고 그것 때문에 내 유년 시절이 풍요로웠다고 감사하고 싶다.
몇 년전에 한 친구로부터 H의 연락처를 받았지만 먼저 연락할 용기가 없었다. 그런 우유부단함은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또 다시 우연에 기대서 만남을 기다려야 할까? 그러나돌이켜 생각하면 H를 내 마음 속의 이상으로 놓아두고 달콤한 상상의 과실을 따먹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실재는 언제나 상상의 세계보다 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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