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갈대 / 마종기

샌. 2004. 5. 6. 08:48

바람 센 도로변이나 먼 강변에 사는
생각 없는 갈대들은 왜 키가 같을까.
몇 개만 키가 크면 바람에 머리 잘려나가고
몇 개만 작으면 햇살이 없어 말라버리고
죽는 것 쉽게 전염되는 것까지 알고 있는지,
서로 머리 맞대고 같이 자라는 갈대.

긴 갈대는 겸손하게 머리 자주 숙이고
부자도 가난뱅이도 같은 박자로 춤을 춘다.
항간의 나쁜 소문이야 허리 속에 감추고
동서남북 친구들과 같은 키로 키들거리며
서로 잡아주면서 같이 자는 갈대밭,
아, 갈대밭, 같이 늙고 싶은 상쾌한 잔치판.

 

< 갈대 / 마종기 >

 

산등성이의 나무들도그러하다.

고르게 키를 맞추며 자라는 모습이 꼭 전지를 해 놓은 것 같아 신기하게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들은 함께 살아나가는 지혜를 절로 터득하고 있는 셈이다.

그네들 세계에도 경쟁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 잘 살기 위한 경쟁과 탐욕은 모두를 죽인다는 사실을 생각없는 식물들이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사자가 백수의 왕이지만 그렇다고 아프리카 전체가 사자 천지가 되지는 않는다.

인간 세상을 돌아보면 비추어 반성해야 할 점이 많다. 지금은 상생(相生)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자연과 다른 생명들에 대한 인간의 오만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동과 서, 남과 북이 마음으로 한데 어울리고, 인간과 자연이조화롭게 함께 어우러지는 '상쾌한 잔치판'은 언제쯤 찾아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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