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후손들에게 / 브레히트

샌. 2004. 5. 1. 10:03

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 없는 언어는 어리석게 여겨진다.
주름살 하나 없는 이마는
그가 무감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웃는 사람은
단지 그가 끔찍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줄뿐이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 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
저기 한적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을
곤경에 빠진 그의 친구들은
아마 만날 수도 없겠지?


내가 아직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믿어 다오.
그것은 우연일 따름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나에게 배불리 먹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우연히 나는 해를 입지 않았을 뿐이다.
(나의 행운이다 하면, 나도 끝장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먹고 마시라고.
네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고!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고,
내가 마시는 물이 목마른 자에게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내가 먹고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먹고 마신다.
나도 현명해지고 싶다.
옛날 책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쓰여져 있다.
세상의 싸움에 끼어 들지 말고 짧은 한평생
두려움 없이 보내고
또한 폭력 없이 지내고
악을 선으로 갚고
자기의 소망을 충족시키려 하지 말고 망각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을 나는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

 

< '후손들에게' 중에서 / 베르톨트 브레히트 >



브레히트의 詩는 새파랗게 날선 칼이다.
관성적으로 살아가는 우리 삶에 지진을 일으키는 힘이다.

현실에 눈을 감고 자꾸만자신의 고치 안으로 숨으려는 내 의식에 살아있는 바람을 불어 넣어주는 생기다.
그리고 뻔뻔하고 이기적이며 도덕적 불감증에 빠진 우리 사회에 던지는 불꽃이다.

나는 세상이 주는 달콤한 혜택을 당연하다는 듯이 누린다.
그러나 주위에 못 가진 사람과 못 먹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상황에서 내가 쌓은 부(富)나 내가 누리는 안락(安樂)이 무슨 의미를 가질 것인가?

 

내가 먹는 것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고
내가 마시는 물이 목마른 자에게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내가 먹고 마실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세상이란, 여기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란......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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