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 이해인

샌. 2004. 4. 21. 11:23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 이해인 >


작년에 대학로에서 이해인 수녀님을 만난 적이 있다.
친구의 소개로 잠깐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지만아직 소녀같은 얼굴과 편안하게 느껴지던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마음 비우기......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채우기보다는 비우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런 원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일이다.

虛室生白...... 텅 빈 방에 밝은 빛이 환하다.
행복은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는가에 달려있지 않다. 소유에 대한 추구는 또 다른 갈증을 낳을 뿐이다.
행복은 마음을 열고 비울 때 찾아오는환한 빛이다.

수녀님을 보면서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돈이나 권력이 귀해 보이지만진정으로 소중한 것은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생각, 욕심없는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방향의 누적된 삶은 그 사람의 얼굴과 행동거지로 반드시 나타난다. 그것이 사람의 향기이다.

`아, 저 사람은참 아름답게 사는구나!그의 얼굴은 따스하고 맑다!`

이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일 것이다.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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