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소리 아직은 노래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 귀뚜라미 / 나희덕 >
이 시는 작년에 어느 분이 코멘트에 올려준 것이다.
이 시를 가사로 한 안치환의 노래도 있다고 하는데 귀뚜라미의 애절하고 외로운 울음이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아 누구에게나 공감이 갈 듯하다.
내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행동과 말과 생각이 과연 이웃에 얼마만큼 진실한 관계 속에서 의미를 맺고 있는지 자문해 본다.
자신이 없다.
많은 부분이 그냥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와서 내 서늘한 가슴을 때린다.
요란한 매미떼의 울부짖음에 묻혀 내 노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다.
돌아올 계절, 가을을 기약할까? 그 때가 되면 매미 소리 잦아들고 이웃들이 내 노래에 귀를 기울여줄까?
때가 되어 바람이 불어 준다면 내 향기, 내 노래를 멀리 멀리 실어다 줄까?
그러나 내 노래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들, 바람 없어 내 향기 아무도 맡아주지 않은들 어떠리.
인적 끊긴 산골짝에 외로이 핀 작은 꽃처럼, 깊은 산 속 숲에서 호올로 노래하는 새 한 마리처럼 그렇게 살아간들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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