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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동으로 / 신동문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그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이 야위고 흰 손가락은 다 무엇인가 제 맛도 모르면서 밤 새워 마시는 이 술버릇은 다 무엇인가 그리고 친구여 모두가 모두 창백한 얼굴로 명동에 모이는 친구여 당신들을 만나는 쓸쓸한 이 습성은 다 무엇인가 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다 못 깨친 이 답답한 목숨의 미련 미련을 되씹는 이 어리석음은 다 무엇인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인데 최근에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고`라는 책을 읽었다. 전희..

시읽는기쁨 2004.02.16

바람꽃

봄의 광덕산은 야생화들의 꽃밭이 된다. 봄이 오면두 시간 이상씩 북쪽으로 자동차를 달려 이 산을 찾곤 했다. 광덕고개 정상에 차를 세우고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환상적인 야생화의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특히 바람꽃 종류가 많았다. 쌍둥이바람꽃, 홀아비바람꽃,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너도바람꽃, 회리바람꽃...... 꽃 속에 파묻혀 도감과 비교하며 이름을 익히고 사진을 찍고했던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그 자리에는또 꽃들이 피어날 것이다. 올 봄에는그 옛 자리로꼭 다시 찾아가 보고 싶다.

꽃들의향기 2004.02.15

미친 세상

시장을 지나가는데 두 사람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검은 돈 안 먹은 놈이 어디 있냐?" "나는 안 먹었다. 왜?" "넌 임마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야." 요사이는 9시 뉴스를 보기가 겁이 난다. 그런데 안 봐야지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TV 앞에 앉게 된다. 하긴 언제 편하게 뉴스를 볼 때가 없었지. 무슨 대규모 스포츠 행사나 하면서 국민들 넋을 뻬놓고 열광시키기 전에는.... 어제는 일부러 MBC 뉴스를 보면서 보도 제목들을 적어 보았다. 삼성이 한나라에 준 불법 자금 170억 추가 확인 -- 불법 대선자금 청문회 -- 인간 배아 줄기세포 배양 성공 -- 땅 투기자 7만명 적발 -- 한국인 해외서 잇단 실종 -- 손자를 버린 비정한 할머니 -- 외출이 불안하다 -- 돈 뺏으러 살인 ..

길위의단상 2004.02.13

뮤지컬 `넌센스`를 보다

어제는 연강홀에서 뮤지컬 `넌센스 잼보리`를 보았다. `넌센스 잼보리`는 91년부터 시작된 `넌센스` 시리즈의 세 번째 버전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싫어하는 터라 극장이나 공연장은 거의 가지 않는데, 어제는 어쩔 수없이 아내와 동행하게 되었다. 그러니 뮤지컬을 직접 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사실 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내용은 재미있고 즐거웠다. 역동적인 무대의 열기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도 인상적이었고, 특히 출연진들의 끼와 재능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방면에는 문외한인지라 잘 모르긴 하지만 춤, 노래, 연기 실력을 어쩌면 그렇게 고루 갖추고 있는지 부럽기만 했다. 로버트 앤 수녀역을 한 노현희는 SBS의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서 볼 때와 달리 그녀의 다재다능한새로운 ..

읽고본느낌 2004.02.12

그 느티나무 아래로 가자 / 최옥

그랬지... 그곳엔 세월 가도 바래지 않을 풀빛 추억이 지금도 뛰어다니고 있는 걸 가위바위보에 터지던 웃음 소리 공기놀이에 지지 않던 해가 아직도 비추고 있는 걸 그랬지... 그 나무 아래서 먼 훗날 우리의 날들이 나무 그늘 밖의 저 햇살이길 소원하거나 꿈꾸지는 않았지만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두고 왔는 걸 한 방울 눈물없이 아름다웠던 내 여덟 살이 거기 있는 걸 다래끼집 몰래 지어두고 지켜볼 때 내 작은 몸을 온전히 숨겨주던 내 전부를 기대고 섰던 나무 한 그루 거기 있는 걸 밤 하늘에 토끼풀같던 별들이 만발해지면 그 때 그 아이들 하얀 풀꽃 따다 만든 꽃다발 오늘 밤도 내 목에 걸어주는 걸 유난히 날 좋아했던 첫 사랑 그 아이의 커다란 눈이 아직도 날 바라보고 있는 걸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의..

시읽는기쁨 2004.02.11

좋은 친구

어제 저녁 인사동에 친구를 만나러 나간 길에 선(選)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 전시회에 들렀다. ※ 매그넘 Magnum; 50여명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고의 보도사진 작가 그룹. 한 장의 사진으로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사실을 인류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전쟁 고발, 문명 비판이 주조를 이루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도 밝은 면보다는 억압받고 고난에 찬 내용으로 많이 그려지고 있었다. 주제가 묵직해서 여러 가지로 깊은 생각에 젖게 되었고, 서구 문명의 팽창이나 경제 성장의 이면에 숨어 있는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좋은 전시회였다. 그런데 어제 만난 친구는 나에게는 특별하면서 참 좋은친구이다. 만난지는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얘기를 나누면 많은 부분에서 서로 공감을 하게 되고 또한..

읽고본느낌 2004.02.10

무릉도원은 어디에

`소백산의 어느 계곡에서 봄꽃을 구경하다가 길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안개까지 끼기 시작해 동서남북의 방향도 헷갈리면서 헤매게 되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향기가 진동하는 곳에 절벽이 나타났고 겨우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동굴이있었다. 그 동굴을 지나가니 시야가 훤하게 트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에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기름진 논밭이며 아름다운 호수, 뽕나무나 대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다. 개와 닭소리도 한가로이 들리고 사람들은 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평화롭고 이국적이었다. 장식은 없었지만 깨끗하고 소박한 흰 옷을 입은사람들은 한결같이 즐겁고 만족스런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더니 크게 놀라 어디서 왔느냐며 물었다.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했더..

참살이의꿈 2004.02.09

애기똥풀

어느 해 봄 나들이를 나갔을 때였다. 길 옆에 핀 이 꽃을 보고 아내가 무척 반가와했다. "와, 애기똥풀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식욕이 없을 때면 어머니가 이 풀을 삶아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 운동장 둘레에많이 피어있던 이 풀을 꺾어서 집으로 가져가곤 했다며 옛날 이야기를 했다. 나도 그 때 이 풀 이름을 처음 알았다. 잎이나 꽃은아름답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요사이 유행하는 얼짱이나 몸짱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별 주목을 받지도 못한다. 그러나 바라보면 볼수록 정겹기만 하다. 줄기를 자르면 나오는 액의 색깔이 마치 애기똥색과 비슷하다고 해서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꽃만 보면 안도현님의 다음 시가 떠오른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

꽃들의향기 2004.02.08

도시락의 추억

지난 설날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홍천의 작은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에게서 산골 학교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 학교라 그런지아이들과 선생님이 가족같이 지내는 모습이 무척 정겹게 느껴졌다. 여러가지아기자기한풍경 중에서 겨울이면 교실 난로에 도시락을 데워 먹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아직 이런 분위기의 학교가 있다는게 신기했고,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몇 년 전부터는 학교 급식이 시작되었으니 이젠 도시락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도시락 세대라고 할 정도로 도시락은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중년의 세대에게 도시락은 단순한 밥 그릇이 아니라 가족의 정이 담긴 따스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누구에게나 남아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난과 배고픔으로도 연결될 것이다. 나의 경우도 ..

길위의단상 2004.02.07

산야초차 선물

몇 달 전에 `지리산에서 보낸 산야초 이야기`라는 책을 샀다. 책을 구매한 사람중에서 추첨을 해서 저자가 직접 덖은 산야초차를 선물한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냥 잊고 지냈다. 그런데 한참 뒤에 당첨되었다는 연락이 왔고, 작은 산야초차 한 봉지가 배달되어 왔다. 뚜껑을 여니 연잎차라고 적혀 있는데, 달여 마시거나 녹차처럼 여러번 우려 마시라고 되어있다. 작은 선물이지만 무척 감사하고 기뻤다. 지리산 어딘가에서 자라던 연잎이 누군가의 정성에 의해 이렇게 만들어져서 내 앞에 놓여있다. 내가 이 차를 마시는 것은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과 동시에 지리산의 정기를 내 속에 모시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전문희님은 특이한 분이다. 서울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지내다가 어머니의 암 치료를 위해서고향으로 ..

사진속일상 2004.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