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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매미

오랜만에 서울에 돌아오니 매미 소리가 제일 반긴다. 오늘 아침에는 아파트의 방충망에도 한 마리가 찾아왔다. 왠일인지 소리는 내지 않고 가만히 붙어있다. 손으로 건드려도 아무 반응이 없다. 나무 대신에 철망에 매달린 모습이 기괴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서울의 매미 소리는 무척 극성스럽다. 무리가함께 울어댈 때는 마치 한꺼번에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를 듣는 것처럼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특히 도로변이 심해서 자동차 소음과 경쟁이나 하려는지 너무 시끄러워서 이건 또 하나의 소음 공해라는 생각도 든다. 옛날 느티나무 아래서 땀을 식힐 때 '매앰- 매앰-'하고 울며 여름의 정취를 더하던 그 소리는 이미 아니다. 세상이 각박해지니 번성하는 매미 종류도, 매미 소리도 변해가는가 보다. 서울의 매미 소리는 차가운 금속성의..

사진속일상 2004.08.04

마가리의 밤

산속의 밤은 깊어간다. 드문드문 보이던 농가의 불빛도 밤이 깊어가면서 대부분 꺼지고 인공적인 소리와 빛은 거의 다 사라진다. 다만 띄엄띄엄 있는 동네 보안등만이 여기가 사람 사는 마을임을 지켜내려는 듯 외롭게 빛을 뿜고 있다. 이 시간이 되면 완전한 어둠과 침묵이 동네를 감싼다. 도시의 밤에 익숙한 사람에게 이런 밤의 모습은 일견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침묵의 밤은 다정한 친구처럼 다가온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다정했던 친구의 모습으로 말이다. 이런 때는 촛불이 어울린다. 정교한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굳이 전등이 필요하지 않다. 여름밤에 촛불 아래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가족의 모습, 창문에 어린 흐릿한 그림자는 너무나 정겹다. 창문을 열고 누워 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잔잔한 풀벌레..

참살이의꿈 2004.08.03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짙은 먹구름..

시읽는기쁨 2004.07.27

목백일홍

온통 초록 세상에서 환한 분홍빛 꽃을 피우는 나무가 목백일홍이다. 남중국이 원산지인데 정식 이름은 배롱나무이고 백일홍, 또는 나무 백일홍으로도 부른다.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니 이 나무가 더 많이 눈에 띈다. 한여름과 가을에 걸쳐 피어나는 꽃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불 붙은듯 뜨겁다. 목백일홍은 꽃도 눈에 확 뜨이지만나무 줄기도 특이하다. 매끈한 줄기는 손을 대보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이다. 겨울에 잎이 떨어지고 나무 줄기만 남았을 때 보이는 조형미가 좋아서 마당에 이 나무를 심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월동 준비를 단단히 해 주라는 당부를 들었다. 사진은 덕진공원에서 만난 목백일홍이다.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

꽃들의향기 2004.07.26

지구촌 전염병, 우울증

이번 달 초 뉴스위크 한국판에 우울증에 대한 특집이 실렸다. 표지에는 지구가 우울증으로 찡그린 얼굴을 한 그림과 함께 '지구촌 전염병, 우울증'이란 제목이 달렸다. 선진국 국민의 10%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제 우울증은 선, 후진국 가리지 않고 확산되어 모든 나라에서 심각하게 나타나는 전 지구적 질병이 되었다는 것이다. 공동체 분화, 도덕적 확신의 붕괴, 국제 미디어에 대한 노출 증가 등의 사회적 변화로 오지의 빈곤층까지 우울증이 퍼져서 세계 전체로 볼 때 인간의 활동 능력을 앗아가는 제일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현대 문명이 인간에 가하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인다. 국민 소득은 높아지고 잘 살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간의 욕망은 커지..

길위의단상 2004.07.26

덕진 연꽃

전주에 간 길에 덕진공원에 들리다. 공원 안에 있는 넓은 호수에는 마침 연꽃이 만개해서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올해는 긴 장마에 흐린 날이 계속되어 연꽃의 개체수가 적다고 하지만 그래도 외지인의 눈에는 여전히 장관으로 보인다. 하나가 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이렇게 수 많은 무리들이 어울려 만드는 아름다움도 있다. 연꽃이 주는 이미지는 역시 종교적이다. 꼭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어서가 아니라 탁한 물과 짙은 색깔의 연잎을 배경으로 솟아올라 환하게 피어난 연꽃을 보노라면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연꽃에서는 침범할 수 없는 경건함과 고귀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연꽃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표정들도 아름답고 선한 기운으로 가득한 것 같다.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수녀님과 비구니 스님..

꽃들의향기 2004.07.25

잔디 깎기

지난 여름과 올 봄 두 번에 걸쳐 잔디를 심었다. 대부분의 작업은 혼자의 힘으로 하지만 잔디를 심을 때는 가족이 도와 주어서 같이 땀을 흘리며 일을 했다. 내가 삽으로 잔디를자르면 아이들이 나르고, 아내가 심고하는 식으로 일을 분담하며 한 것이다. 그 여파로 다리가 약한 아내가 잔디를 심은 뒤에 너무 힘주어 밟은 관계로 몇 달간 고생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도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너무 힘이 들었다고 지금도 불평을 한다. 작년에 그렇게 공들여 심은 잔디였는데 그 뒤로는 전혀 돌보지 않아서 크는둥 마는둥 하더니 금년에 들어서는 비료도 주고 물도 주기적으로 뿌려 주었더니 쑥쑥 잘 자라 주었다. 길이가 20cm도 넘게 자란 것이다. 그러니 이미 깎아주어야 할 시기가 훨씬 지나 버렸는데 이제야 시간이 나서 며칠 ..

참살이의꿈 2004.07.24

장마의 끝

장마가 끝났다는데 아직 하늘은 흐리다. 가끔 햇살이 보이다가도 이내 구름으로 덮이고 짧게 비가 뿌리기도 한다. 그래도 장마가 끝났음을 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이번 장마는 막바지에 폭우를 쏟아붓더니 여러 곳에 비 피해를 주고 물러났다. 이곳에 오는 날은 얼마나 비가 세차게 내리던지 운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로는 흙탕물로 흘러넘치고 숨가쁘게 움직이는 브러쉬로도 차창의 빗물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퍼붓더니 언제 그랬냐느듯 순간에 잦아들었다. 다행히 터에 피해는 없었다. 아마 작년같았으면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또 한번 고생했을 것이다. 그동안 땅이 다져지고 풀이 덮혀서 흙쓸림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러고 보면 그간에 땅도 몸살을 몹시 한 것 같다. 중장비가 들어와 끊고 파헤치고 했으니 땅..

참살이의꿈 2004.07.19

배롱나무에 꽃이 피다

교정에 있는 베롱나무에 꽃이 피었다. 흐린 날씨가 계속되고 쉼없이 이어지는 장맛비 속에서 꽃봉오리가 맺힌지는 한참되었으나 드디어 몇 몇 줄기에서 연한 붉은 색의 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꽃이 피기를 기다린지는 오래되었다. 지난 달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나무를 쳐다보며 빨리 꽃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다. 왜냐하면 이 꽃이 피면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꽃을 '방학꽃'이라고 부른다. 앞의 동료가 푸념 섞어 하는 얘기를 들었다. 교사에게 방학이 없으면 모두들 미쳐버릴 것이라고, 그나마 방학이 있어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충전하게 되고, 그래서 다시 새 학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얘기였는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몇 달 동안 아이들과 또 행정과의 씨..

꽃들의향기 2004.07.15

제초제는 싫어요

여름이 되니 풀이 엄청나게 빨리 자란다. 보통 잡초라고 부르는 것인데 터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그다지 많은 종류는 아니고 대략 예닐곱 종류쯤 되는 것 같다. 그 중에서 이름을 아는 것은 질경이와 비름, 두 종류뿐이다. 아마도 예쁜 꽃을 피우는 화초였다면 어떻게든 그 이름을 알아보았을 것인데 아무 쓸모없다고 여기는 잡초 신세라서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으니 그 풀들에게는 미안한 생각도 든다. 그래서 여름이 되면서부터는 터에 내려가서 하는 주된 일이 풀을 뽑는 것이다. 그것도 집 주변의 풀을 뽑기만도 벅차다. 좀 떨어진 빈터에는 온갖 풀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신나게 자라고 있다. 키가 큰 것은 가끔씩 뽑아주지만 바닥에 기면서 자라는 것들은 손을 댈 엄두도 못 낸다. 저 놈들이 게으른 주인을 만나 이만큼이나 생..

참살이의꿈 200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