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지구촌 전염병, 우울증

샌. 2004. 7. 26. 14:34

이번 달 초 뉴스위크 한국판에 우울증에 대한 특집이 실렸다.

표지에는 지구가 우울증으로 찡그린 얼굴을 한 그림과 함께 '지구촌 전염병, 우울증'이란 제목이 달렸다.

선진국 국민의 10%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제 우울증은 선, 후진국 가리지 않고 확산되어 모든 나라에서 심각하게 나타나는 전 지구적 질병이 되었다는 것이다.

공동체 분화, 도덕적 확신의 붕괴, 국제 미디어에 대한 노출 증가 등의 사회적 변화로 오지의 빈곤층까지 우울증이 퍼져서 세계 전체로 볼 때 인간의 활동 능력을 앗아가는 제일 큰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현대 문명이 인간에 가하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인다. 국민 소득은 높아지고 잘 살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인간의 욕망은 커지고, 미디어는 끊임없이 그 욕망을 다시 부채질하고 상대적 빈곤감 속에서 현대인은 허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 너무나 급변하는 사회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한 인간을 흔들리게 하고 있다. 가치관의 혼돈 또한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일부 우울증은 유전적 원인에서 비롯되지만 대부분은 이런 외부 인자들에 의해 나타난다고 한다. 물론 사회적 원인뿐만이 아니라 개인적 경험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가난, 소외, 실직, 고된 생활환경 등과 같은 것들도 포함될 것이다.

사실 우울증이란 정신적이고 심리적 현상이라서 그 증상에 대한 보편적 정의가 어려울 것 같다. 개인마다 다양하게 나타나겠지만 대체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우울하고, 슬프고, 희망이 없고, 실망스럽거나 의기소침한 심리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그리고 육체적으로는 피로하거나 힘이 떨어졌다는 증상을 호소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우울증에 대해 조사한 결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심각하다. 그건 우리 사회의 변화와 문제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국 남녀의 25%가 경증 이상의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성인의 9%, 청소년의 14%는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심각한 우울증 단계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의 우울증이 높은 이유는 각박한 입시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도대체 이런 정신병적 상황이 되는데도 청소년을 달달 볶아서 만들어지는 미래 사회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의심스럽다. 남을 밟고 죽이고 올라서야 되는 사회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우울증은 여성에게 더욱 심해서 우리나라 전체 주부의 45%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가벼운 우울증은 27%, 중증 우울증은 13%, 극심한 우울증은 5%였다는데 조사자의 12%는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도 나왔다.

여성에게 우울증이 더 많은 이유를 신체 특성에 따른 호르몬 변화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 탓도 큰 원인일 것이다. 예전에는 이것을 화병이나 울화병이라고 불렀다.

하여튼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 우울증과 여성 우울증은 심각하게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하는 자료가 된다고 본다.

아마 최근에는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남성의 우울증 또한 증가하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가끔씩 우울증이라고 부를 만한 심리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기분 저하, 즐거움에 대한 관심이나 느낌 상실, 자존감 저하, 활기 저하 같은 증상이 별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한 달 이상 계속된다. 삶에 대한 절망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스스로는 이것을 경증의 우울증쯤으로 여기고 있다. 남자에게도 갱년기가 있다는데 지금이 그 시기를 통과하는 중일지 모른다고 해석해 보기도 한다.

며칠 전에 '한낮의 우울'이라고 하는 꽤 두꺼운 책을 샀다. 우울증에 대해서 잘 정리해 놓은 책이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이왕이면 상대방을 알아야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떨쳐버리지 못할 우울증이라면 적당한 거리를 두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적당한 스트레스가 삶의 활력이 되듯, 적당한 우울증도 생에 자극을 주고 인생을 바라보는 바른 시각을 주리라고 믿는다. 그것이 철없는 낙관주의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울릴 수 있는 가벼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노년  (1) 2004.08.20
징기스칸  (2) 2004.08.14
Blue days  (3) 2004.07.08
소음인  (4) 2004.06.28
낙관과 비관  (4) 2004.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