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Blue days

샌. 2004. 7. 8. 21:15

장마와 함께 찾아온 손님이 떠날 줄을 모른다.

떠나기는커녕 이젠 안방까지 차지하고서는 주인 노릇을 한다.

이 손님이 주는 선물은 무기력과 권태와 절망이다.

가을만 되면 이 손님이 찾아와서 마음은 열병을 앓았다.

그런데 올해는 장맛비 소리에 이 손님의 잠이 일찍 깨었나보다.

우울증이라고 불러야 하나?

세상은 잿빛으로 변하고, 모든 것이 돌아앉았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세상살이는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서걱거린다.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고, 낮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귀찮기만 하다.

깃털 같은 것의 무게가 천근 만근 무겁게 느껴진다.

어쩌다 사람을 만나도 대화는 겉돌기만 한다.

이럴 때는......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저 몸을 낮추고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임을 안다.

이 손님과 싸워보려는 어떤 시도도 이제껏 성공하지 못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이지만 그래도 손님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고 화해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래서 친구가 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손님....

오늘은 제가 방도 깨끗하게 치워놓고 주안상도 마련했답니다.

이따가 제 노크 소리가 들리거들랑 문을 열어 주세요.

손님의 속 깊은 인생살이 얘기도 듣고 싶구요, 그리고 한 잔 술에 취한다면 제 슬픈 하소연이 터져 나올지도 모르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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