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소음인

샌. 2004. 6. 28. 13:19

지난 주에 한의사로부터 진맥과 문진을 통해 체질 감별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오랫동안 상담하던데 내 차례가 되어서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아 소음인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이제마와 사상의학, 그리고 사람을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이라는 4가지 체질로 나누어 병의 예방과 치료에 이용한다는 사실은 가끔 들었지만 크게 관심은 두지 않았다.

개인의 육체적이나 정신적 특징은 양 극단으로부터 연속적으로 분포하고 있으리라고 믿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 사이에 어떤 경계를 두어 그룹으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분명 그룹 사이에 존재하는 모호한 성질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가 설명하며 건네준 유인물에 적힌 소음인의 특성을 보고는 내 자신과 일치하는 부분이 의외로 많아서 놀랐다.

특히 성격을 설명한 내용은 누군가가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부분이 일치했다.

소음인의 성격 특징은 이렇게 나와있다.


매사 계획적이며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수줍음이 많고 사색적이며 자기 생각을 쉽게 표현하지 않습니다. 예의에 벗어나는 일을 하지 않는 원칙론적인 체질로, 밖에서 활동하기 보다는 사무실이나 집에 들어앉아 일하기를 좋아하고, 여성적인 면이 많고, 온순하고 다정다감합니다.

반면에 편안하고 안일한 것을 좋아하고, 남성적인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면이 적으며, 매사를 너무 정확하게 하려다보니 마음이 편할 날이 없으며, 한번 상처를 받거나 기분 나쁜 것이 잊혀지지 않아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개인주의나 이기주의가 강하고, 남의 간섭을 싫어하고 이해타산에 얽매이며, 질투심이나 시기심이 많습니다.


내가 나를 설명한대도 이만큼 정확하게 서술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중에서 마음이 편할 날이 없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있다는 설명에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사회 생활을 하면서 편하기만 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이란 없겠지만, 그래도 같은 상황에 처해도 유난히 힘들어하고 저 자신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은 타고난 성격 차이 탓이 아닌가 싶다. 그걸 사상의학에서는 체질에 따른 차이로 설명하는가 보다.

그러고 보니 세상사를 힘들게 느끼는 것은 세상사 자체가 힘들어서라기 보다는 내 마음이 그걸 힘들게 느끼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 같다.

옆의 동료는 소양인으로 진단받고 희희낙낙이다. 세상 살기에 자기 같은 소양인 체질이 제일 적당하다면서 좋게도 해석한다.

적당히 살찐 몸과 사람 좋게 생긴 얼굴에 서글서글한 성격이 늘 부러웠는데, 같은 의사 앞에서의 진단 결과를 놓고도 이렇게 서로 받아들이는게 다르다.

一切唯心造.

바깥 일에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모두가 내 마음이 지어낸 것인데 그 무엇을, 또는 그 누구를 원망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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