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 중에서 신과 가장 가까운 단계에 있는 사람은 노인들이다. 나이가 든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늙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어두운 계곡으로 내려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세계로 차츰 접근해 가는 것, 즉 지복(至福)의 산(山) 정상으로 올라가는 완만한 길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느 보험 회사의 광고였던가, 노부부가 건강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는 광고 사진을 보면서 저렇게 늙어갈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또한 그것이 젊은 시절에 상상했던 내 노년의 모습이기도 했다. 생활은 안정되고,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며 자유롭고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는데 혼돈의 젊은 시절 뒤에는 그런 평화스런 노년이 찾아오리라 기대를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지금은 많이 변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육체는 쇠약해져서 병마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망상과 고집과 걱정으로 가득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걸 가까운 주위에서 너무나 자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똑 같은 사람인 이상 특별나지 않을진대 내 노년에 대해서도 별로 자신이 없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것은 무로 소멸되어 버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몸과 정신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곧 닥칠지 모른다는 사실이 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육체적 질병이나 치매가 사람을 가려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만 생활할 수 있는 지경에 떨어질 수도 있다. 또는 그런 상황이 서서히 찾아올 수도 있다.
육체가 무너지면 대부분 정신도 허물어지고 전에는 생기와 자신에 넘치던 사람이 질병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보이는 약한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특히 그 사람이 가까운 가족이라면 그걸 바라보는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아둥바둥 몸부림치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게 인간의 실상이고 자연스런 모습이라지만 그걸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라고 자위하며 넘기기도 어렵다. 그건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죽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죽을 복을 잘 타고난 사람이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옛 말을 요즈음 자주 실감한다.
어떤 분들은 극한적 상황에서도 고결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그것이 종교적 믿음이든 철학적 신념이나 다른 어떤 것이든 보통 사람이 다다를 수 없는 높은 정신 세계에는 존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곳은 범인들이 쉽게 오를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믿지 않지만 과연 '아름다운 노년'이 얼마나 가능할 것일까?
건강한 몸, 인생을 즐길만한 적당한 재물, 이해와 관용과 넉넉함으로 넘쳐나는 마음, 신(神)의 빛으로 환한 영혼 - 이 모든 것이 다 필요한 것일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인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젊었을 때의 꿈과 환상이 하나씩 깨어져 가는 과정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에게는 '아름다운 노년'이라는 이미지도 그 중의 하나이다.
오늘 신문에 보니 앞으로 곧 닥쳐올 노령 사회에 대한 대비를 주문하고 있다. 20년 뒤에는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가 된다는 예상이다. 평균 수명의 증가로 개인의 전체 인생의 ⅓이 노년 시기에 해당될 것이다.
손쉽게 얻을 것 같은 환상은 걷히고 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노년'에 대한 꿈을 버릴 수는 없다.
그것이 이루어질지 않을지 자신은 없지만 만약 하늘이 허락한다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만은 잃지 않고 노년을 보내다가 이 세상을 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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