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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부채

범부채는 화려한 색깔에 어울리게 여름에 피는 꽃이다. 범부채라는 이름은 꽃의 무늬가 호랑이와 비슷하다고 해서 '범'이라 하고, 잎은 부채살 모양으로 퍼져 있어서 '부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니 꽃과 잎의 특징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꽃이름만은 누구나 잘기억한다. 나의 경우도 다른 꽃들은 이름을 익히는데 여러 번 반복 학습이 필요했지만 범부채는 단번에 기억하게 되었다. 범부채는 극동 지방에서 자라는 꽃이라는데 아직 야생 상태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강이나 도로변에 인공적으로 조성해 놓은 화단에서 몇 번인가 보았을 뿐이다. 꽃색깔이나 잎 모양이 일반적인 우리꽃들과는 다르게보여서 처음에는 우리나라 자생화가 아니라고 지레 판단했었다. 사진은 잠실의 한강변에서 본 범부채이다. 꽃이 시원시..

꽃들의향기 2004.09.02

막내가 어학연수를 떠나다

막내가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있는데 직접 중국에서 어학 공부를 하기 위해 학교를 1년 휴학하고 출국한 것이다. 지난 겨울에 배낭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준비도 하고 수속도 다 마쳤다. 그래도 장기간의 해외 생활에 대한 부담이나 두려움은 어찌할 수 없는지 평상시와는 다른 낌새가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주에는 몸살도 진하게 앓았다. 나는 집안에서 아이들과 대화가 부족하다. 부족한 것이 아니라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은 많건만 서로 마음을 나누는 대화는 부녀지간이건만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해 아내와 아이들은 아주 가까이 잘 지낸다. 모녀지간이 아니라 마치 친구 사이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질투..

사진속일상 2004.09.01

山中問答 / 조지훈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에 호미 씻고 돌아오는 그 맛을 자네 아능가' '마당 가 멍석자리 쌉살개도 같이 앉아 저녁을 먹네 아무데나 누워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 심심하면 퉁소나 한가락 부는 그런 멋을 자네가 아능가' '구름 속에 들어가 아내랑 밭을 매면 늙은 아내도 이뻐 뵈네 비온 뒤 앞개울 고기 아이들 데리고 낚는 맛을 자네 太古적 살림이라꼬 웃을라능가' '큰일 한다고 고장 버리고 떠나간 사람 잘 되어 오는 놈 하나 없네 소원이 뭐가 있능고 해마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라고 비는 것 뿐이제'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나라일이나 잘하라꼬 하게 내사 다른 소원 아무것도 없네 자네 이 마음을 아능가' 老人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따뤄 주신다. '예 이 ..

시읽는기쁨 2004.08.31

극단 '여의도'

70년대 후반에 있었던 일이다.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선배 한 분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전날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귀가했는데 집에 들어오지를 않은 것이다. 인품이 워낙 중후하고 동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신 분이라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염려했다. 주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엉뚱한 일을 저지를 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찰에 가출 신고를 하고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 도대체 행적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지나갔을 때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유가 궁금했지만 이상하게도 모두들 입을 닫으며 말하기를 조심스러워했다. 선배님 집에서도 찾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상한 분위기가 며칠 지나고 나서야 대체적인 진상을 알..

길위의단상 2004.08.30

놀이터의 아이들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명랑하다. 늘 텅 비어있기만 한 아파트 단지의 작은 놀이터인데 오늘은 왠일인지 아이들로 북적댄다. 기구에 매달려 깔깔거리는 아이도 있고, 이러저리 쫒고 쫒기며 달음질치는 아이들도 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깔깔거리는 소리와 고함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들려오는 그 소리가 병아리들의 지저귐 같다. 오랜만에 만나는 풍경이 정겨워서 절로 미소가 인다. 그러나 당연한 풍경이 이젠귀하게 느껴지는 세태가 된 것 같아 씁쓰름하기도 하다. 방과 후의 학교 운동장에도 뛰어노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쯤 되면 한낮인데도 운동장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예전 우리 때만해도 자리를 잡지 못해 안달이었는데 요즘은 시분을 다투는 학생들 스케줄이 어른들보다 더 바쁘다. ..

사진속일상 2004.08.29

흔들리니까 사람이다

울지 마라 흔들리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아프게 흔들리는 일이다 영원히 빛나는 별을 꿈꾸지 마라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들판의 꽃들도 흔들리면서 피어나고 나침반의 바늘도 흔들리면서 제 자리를 찾아간다 별이 반짝이는 것도 흔들리기 때문이며 네가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아프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종소리도 자신을 때리며 온 마을로 퍼져 나간다 나무도 흔들리면서 자라난다

참살이의꿈 2004.08.27

꽃며느리밥풀

산길을 걷다 며느리밥풀꽃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애틋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 꽃에 따르는 전설이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꽃에 '며느리' 자가 붙은 것은 다 그런 것 같다. 며느리밑씻개라는 꽃도 그렇고, 지금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며느리○○라는 꽃도그렇다. 모두다 며느리의 슬픈 신세를 꽃에 이입시킨 것이 아닌가 싶다. 옛날 여자들 대부분은혹독한 시집살이를 경험했던 것 같다. 지금 시대에야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이혼하고 뛰쳐나가 버리겠지만 말이다. 그것은 여자의 경제적 능력이나사회적 인식이 그만큼 향상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역사는 확실히 진보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당연시되던 노예제가 폐지되었듯이 미래의 언젠가는 전쟁도 불법으로 규정되고 사라질 날이 오기를 기대해 ..

꽃들의향기 2004.08.26

용서받는 까닭 / 유안진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 있고 들리지 않아도 소리내는 것이 있다 땅바닥을 기는 쇠비름나물 매미를 꿈꾸는 땅 속 굼벵이 작은 웅뎅이도 우주로 알고 사는 물벼룩 장구벌레 소금쟁이 같은 그것들이 떠받치는 이 지구 이 세상을 하늘은 오늘도 용서하신다 사람 아닌 그들이 살고 있어서 - 용서받는 까닭 / 유안진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인간이 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고만장해진 인간족 말고 이 말에 동의할 생물은 없을 것 같다. 땅도 하늘도 침묵하고 있지만 가만히 눈 감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잘 살아 보자는 명분 아래 환경을 파괴하고 다른 생명을 멸종시키며 그러고도 당당하게 큰 소리만 치고 있다. 스스로의 묘혈을 파면서도 그걸 지혜로 착각하고 있다. 천성산의 도룡뇽이..

시읽는기쁨 2004.08.24

[펌] 행복의 차이

# 1 아논드는 꿈 많은 여덟살. 가난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방글라데시의 소년. 아논드는 방글라데시어로 '희망'이란 뜻이란다. 가진 것은 없어도 두 눈에 가득 찬 푸른 하늘에 티 없는 마음을 싣고 훨훨 날 줄 아는 녀석이다. 공책과 연필도 없는 거적때기 위 수업시간 '단어'로 문장을 만들라는 선생님 말씀에 "단어야, 너는 발도 없는데 어쩜 그렇게 많은 사람 만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니." 읊조리는 녀석이다. # 2 서울의 K는 벌써 대입 고민에 빠진 여덟살. '팰리스'에 살지만 세상에서 제일 고달프다는 대한민국의 소년. K는 부모님이 "부자 돼라"며 어느 재벌 이름 따 지어주신 것이란다. PDA와 전자사전이 갖춰진 에어컨 빵빵한 학원에서 "사슴이ООО 봅니다"에 알맞은 단어를 채워 넣으라는 선생..

길위의단상 2004.08.23

후회하면 안 돼!

서울을 떠나 시골로 거처를 옮긴 후배와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배는 탈서울한지 벌써 5년이 되니 이젠 안정 단계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집에 가 보아도 모든 것이 틀이 잡혀 있어 부러울 때가 많다. 나무들도 언제 그렇게 컸는지 처음 심었을 때는 보잘 것이 없었는데 이젠 집을 가릴 정도의 탐스런 나무로 자라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고 멋진 전원 주택이지만 그만큼 가꾸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들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후배가 자리잡은 곳은 마석에 있는 전원 주택 단지이다. 20필지 정도의 규모로 업자가 개발해 놓은 것인데 땅을 구입해서 집을 지어 입주했다. 대부분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단지에 들어가는 것이 원주민들의 텃세나 생소한 환경..

참살이의꿈 2004.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