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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달

'꿈의 달'을 보러 일산 호수공원에 갔다. 작품에도 호기심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꿈'과 '달'이라는 말이 주는 울림이 컸기 때문이다. 그 말들에서는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슬픈 느낌이 들고 그곳에 가서 다른 사람의 꿈들이나마 확인하고픈 마음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의 규모는 거대하지만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지름 15m의 대형 풍선에 세계 140여개 국가의 어린이들이 '나의 꿈'이라는 주제로 그린 작은 그림 13만장을 붙여서 호수에 띄워 놓았다. 밤이 되면 밖에서 여러 색깔의 조명을 비추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지구촌 어린이의 수많은 꿈이 모여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강익중 님의 작품이다. 실제 달처럼 하늘에 띄워놓는다면 더욱 멋있을 것 같은데 지구..

사진속일상 2004.09.15

기도 / 야마오 산세이

당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바다여 우리의 병든 몸과 마음을 고쳐 주셔요 그 깊고 푸른 호흡으로 우리를 고쳐 주셔요 당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산이여 우리의 병든 욕망을 치유해 주셔요 그 깊고 푸른 호흡으로 우리를 치유해 주셔요 당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강이여 우리의 병든 잠을 고쳐 주셔요 그 푸른 시냇물 소리로 편안한 잠자리를 되찾게 해 주셔요 당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 내면에 있는 여래여 우리의 병든 과학을 고쳐 주셔요 모든 생명에 봉사하는 과학의 길을 찾아 주셔요 당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나무여 우리의 침울해 하고 슬퍼하는 마음을 축복해 주셔요 그 곧게 선 푸른 모습에서 우리들도 또한 조용하고 깊게 곧게 설 수 있는 길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셔요 당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바람이여 우리들의 ..

시읽는기쁨 2004.09.14

블로그 1년

블로그를 시작한지 꼭 1년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가 나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세상일은 연속해서 꼬여가기만 하고 앞길에도 희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나를 지탱해 주던 믿음이나 신념마저 밑바닥에서부터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만난 일종의 도피처가 블로그였다. 원래는 홈페이지를 하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보고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으며 홈페이지를 만드는 준비를 했는데 진도가 나갈수록 내 능력에는 벅차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어쩌다 블로그에 들어가 보고 그 간편성에 끌리게 되었고 역시 우연하게 접하게 된 한미르 블로그의 조용한 분위기와 단순한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 가입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독백의 공간이었다. 블로그는 나에게 있어..

길위의단상 2004.09.13

200분의 1

올 봄에 목화씨를 우연히 얻게 되었다. 한 웅큼 정도 되었는데 까만 씨에는 하얀 솜털이 붙어있었다. 그 보드라운 촉감이 옛날 고향집 뒤의 목화밭을 떠올리게 했다. 다시 목화를 만날 수 있겠구나 하며 꿈과 기대를 모아 밭에다 씨를 뿌렸다. 이웃 분들도 목화씨를 심었다고 하니까 무척 반가워했다. 나뿐만 아니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목화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는 것을 그때 확인했다. 길이가 20m 정도 되는 고랑 세 개에다가 한 구멍에 두세 개씩 심었으니까 땅으로 들어간 씨앗만도 200개는 넘을 것 같다. 그러나 땅이 척박해서였는지 근 한 달이 지나서야 잎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얼굴을 내미는 것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싹이 나온 목화는 캐내어서 좀더 거름진 땅으로 옮..

참살이의꿈 2004.09.12

거미 /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 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시읽는기쁨 2004.09.11

물봉선

이름 그대로 물봉선은 습기를 좋아하는 듯 하다. 터 뒤안의 물기 많은 곳에도 물봉선 군락이 만들어졌다. 손톱에 물을 들이는 봉선화의 야생종이라 할 수 있는데산야에서 자생하는 탓인지거친 환경에도 거리낌없이 잘 자란다. 꽃의 생김새는 도리어 훨씬 더 이쁘다. 뒤쪽으로 가면서 돌돌 말린 모양이 고깔같기도 하고 무척 앙징스럽다. 특히 노랑물봉선과 흰물봉선은 색깔이 아주 곱다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잘 나오는 꽃이 물봉선이다. 그래서 앨범에 보면이 꽃 사진이 많다. 서양에서는 봉선화 꽃말이 'Touch me not(나를 건드리지 말아요)'이라고 한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이 물봉선은 봉선화보다 더 민감하여 씨앗이 익으면 사람이 손을 갖다댈려고만 해도 터져버린다고 한다. 옛날부터 봉선화는 ..

꽃들의향기 2004.09.10

태풍이 지나간 하늘

태풍 '송다'가 지나간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 커튼을 열듯 태풍이 지나가면서 칙칙한 하늘의 장막을 걷어 갔다. 가려져 있던 하늘의 본래 면목이 눈 앞에 펼쳐지고 사람들의 시선은 자꾸 하늘을 바란다. 작은 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람들 마음도 가을 하늘을 닮아 파랗게 물들어가는 것 같다. 저녁이 되니 서쪽 하늘에 걸린 노을이 또한 곱다. 오늘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부자가 되다.

사진속일상 2004.09.08

한 장의 사진(1)

앨범을 보는데 재미있는 사진 한 장이 눈에 띈다. 바로 이 사진인데 40년 전에 찍은 우리 가족사진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막내의 돌 기념으로 사진관에 가서 찍은 것이다. 오른쪽에 잔뜩 심술궂은 얼굴로 내가 서 있고, 옆에 어머니가 막내를 안고 있다. 이때 어머니가 30대 중반쯤 되었으니 우리 어머니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가 싶게 젊은 모습이다. 그 옆에 계신 분은 외할머니이신데 이제 백수를 바라보시며 생존해 계신다. 앞에는 어린 동생들이 머리 모양으로 봐서는 잔뜩 멋을 내고 서 있다. 왼쪽의 까까머리는 둘째 동생이다. 이 사진이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사진에 찍힌 부끄러운 내 모습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만은 눈을 밑으로 내리깔고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

길위의단상 2004.09.07

자작나무의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 / 안도현

저 도시를 활보하는 인간들을 뽑아내고 거기에다 자작나무를 걸어가게 한다면 자작나무의 눈을 닮고 자작나무의 귀를 닮은 아이를 낳으리 봄이 오면 이마 위로 새 순 새록새록 돋고 가을이면 겨드랑이 아래로 가랑잎 우수수 지리 그런데 만약에 저 숲을 이룬 자작나무를 베어내고 거기에다 인간을 한 그루씩 옮겨 심는다면 지구가, 푸른 지구가 온통 공동묘지 되고 말겠지 - 자작나무의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 / 안도현 저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중에서 자작나무를 닮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도시는 푸른 숲의 향기로 가득할 거야. 칙칙한 매연 대신에 신선한 산소가 거리를 감싸고 사람들은 이제 심호흡을 크게 할 거야. 잿빛 도시에 꽃이 피어나고, 예쁜 새들이 찾아와 노래할 거야. 사람들의 마음도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고,새들 따라서 ..

시읽는기쁨 2004.09.06

배추를 심다

텃밭에 배추를 심었다. 이미 시들해진 오이와 토마토를 캐내고 거름을 약간 더 넣은 다음에 모종을 심었다. 읍내에서 배추 모종 한 판을 샀는데 120여 포기가 들어있고, 또 옆집에서 주는 모종까지 더해졌으니 약 150포기는 되는 것 같다. 우리 한 집 먹을거리로는 너무 많다는 생각도 들지만 잘 되면 도시의 주변 사람들과도 나누어 먹을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껏 작물을 가꾼 경험으로 볼 때 맛있는 배추로 자라줄 것으로는기대를 하지 않는다. 우선 시간적으로 정성이 모자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가서 물 주고 보살피는 것으로는 식물도 사랑 결핍증에 걸리는 것 같아 보인다. 일을 하는데 불현듯 작년의 일이 떠오른다. 작년에는 비가 오는 속에서 낙담한 가운데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배추를 심었다. 아마도 그날 찾..

참살이의꿈 200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