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거미 / 이면우

샌. 2004. 9. 11. 09:59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 갔다, 되짚어 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 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 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 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 거미 / 이면우

 

여운이 짙은 시다.

편견을 넘어선 생명 자체에 대한 통찰이 엿보인다.

보통 나 아닌 다른 생명은 무시하거나 또는 거미보다는 잠자리에 끌리면서 한 쪽 편에 기울기 쉽다.

단순한 진리가 하나 있다 -'생명은 생명으로 산다.'

생명에 높낮이는 없다. 균형과 조화가 있을 뿐이다. 그건 잠자리나 거미나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생명은 신비이다. 고통이다.우주의 명령이다. 제대로 살아간다는 건 각자에게 주어진 미해결의 숙제이다.

밤을 지새운 거미의 필사의 그물짜기를 내 안에서도 본다.

또 내 안에는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도 있다.

뭔가 반짝하고 환해지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