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당나귀가 나는 좋아 / 프란시스 잠

샌. 2004. 9. 20. 14:38

물푸레나무 긴 울타리를 끼고 걸어가는

순한 당나귀가 나는 좋다.

 

당나귀는 꿀벌에 마음이 끌려

두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태워 주기도 하고

호밀이 가득 든 부대를 나르기도 한다.

 

당나귀는 수챗가에 가까이 이르면

버거정거리며 주춤 걸음으로 걸어간다.

 

내 사랑은 당나귀를 바보로 안다.

어쨌든 당나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언제나 생각에 젖어 있고

그 두 눈은 보드라운 비로드 빛이다.

 

마음씨 보드라운 나의 소녀야,

너는 당나귀만큼 보드랍지 못하다.

 

당나귀는 하느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 닮아서 당나귀는 보드랍다.

 

당나귀는 피곤하여 가벼운 모양으로

외양간에 남아서 쉬고 있다.

 

그 가련한 작은 발은

피곤에 지쳐 있다.

 

당나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가 할 일을 모두 다했다.

 

그런데, 내 소녀냐, 너는 뭘 했지?

그렇군, 너는 참 바느질을 했지.

 

하지만 당나귀는 다쳤단다.

파리란 놈한테 찔렸단다.

 

측은한 생각이 들만큼

당나귀는 너무나 일을 많이 한다.

 

내 소녀야, 너는 무얼 먹었지?

너는 앵두를 먹었지?

 

당나귀는 호밀조차 먹지 못했다.

주인이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고삐를 빨아 먹다가

그늘에 가 누워 잠이 들었다.

 

네 마음의 고삐에는

그만한 보드라움이 없단다.

 

그는 물푸레나무 울타리를 끼고 가는

아주 순한 당나귀란다.

 

내 마음은 괴롭다.

이런 말을 너는 좋아할 테지.

 

그러니 말해 다오, 사랑하는 소녀야

나는 울고 있는 걸까, 웃고 있는 걸까?

 

가서 늙은 당나귀보고

이렇게 전해 다오, 나의 마음을.

 

내 마음도 당나귀와 마찬가지로

아침이면 신작로를 걸어간다고.

 

당나귀한테 물어라, 나의 소녀야.

내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를.

 

당나귀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당나귀는 어두운 그늘 속을

 

착한 마음 한 아름 가득 안고서

꽃 핀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 당나귀가 나는 좋아 / 프란시스 잠

 

언젠가 때가 된다면 작은 외양간을 짓고 당나귀 한 마리를 길러보고 싶다.

당나귀는 소처럼 힘이 세지도 못하고, 개처럼 애교를 부릴 줄도 모르고, 말처럼 늘씬하지도 않다. 다리가 짧아서 걷는 걸음마저 우스꽝스럽다.

그래도 당나귀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당나귀는 푸른 하늘을 닮은 시인이다. 당나귀의 순한 눈망울이 인간의 하찮은 시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기 때문이다.

시인의 등에다 아이들도 태워주고, 들에 나가 내 작은 밭일도 같이 할 수 있을 게다. 저녁이 되면 석양 길을 따라 짐을 나눠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럴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같이 지내고 싶은동물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당나귀와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