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특급열차를 타고 가다가 / 신경림

샌. 2004. 9. 30. 16:10

이렇게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언가
환한 봄 햇살 꽃그늘 속의 설렘도 보지 못하고
날아가듯 달려가 내가 할 일이 무언가
예순에 더 몇해를 보아온 같은 풍경과 말들
종착역에서도 그것들이 기다리겠지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산역에서 차를 버리자
그리고 걷자 발이 부르틀 때까지
복사꽃숲 나오면 들어가 낮잠도 자고
소매 잡는 이 있으면 하룻밤쯤 술로 지새면서

 

이르지 못한들 어떠랴 이르고자 한 곳에
풀씨들 날아가다 떨어져 몸을 묻은
산은 파랗고 강물은 저리 반짝이는데

 

- 특급열차를 타고 가다가 / 신경림


도로는 넓어지고 자동차는 더 커지고 많아지고, 지금은 특급열차가 아니라 초고속열차가 산하를 직선으로 가로지르며 날아간다.

세상은 겉으로 보이는 그만큼 잘 살게 되었을까?

추석에 찾아가 본 농촌은 황폐한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도시나 농촌이나 마찬가지다.

국민 소득 1만 달러가 넘으면 모두들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이제는 2만 달러, 3만 달러가 되어야 한다고, 그래서 또 다른 환상을 향해 달려가자고 닥달하고 있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금수나 강산 어여쁜 나라
한마음으로 가꾸어 가면
알뜰한 살림 재미도 절로
부귀 영화도 우리 것이다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그래도 이런 노래를 불렀을 때가 좋았다고 한다.

그런데 잘 살기 위해서 우리가 걸어온 길에 금수강산은 짓밟히고 사람들 마음은 수만 가지로 찢겨져 버렸다.

잘 산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젠 심각하게 반성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자연도 망가뜨리고 이웃과도 등을 돌리고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환한 햇살과 꽃을 놓치고, 한가함도 친구도 잊어버리고서 정말 이렇게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