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샌. 2004. 10. 6. 13:49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그곳에서 A를 만난 것은 의외였다.

대학 시절, 연단에 서서 사자후를 토하는 A 때문에 우리는 돌맹이를 들고 거리로 뛰쳐 나갔다.

A는 우리들의 영웅이었고 세상의 변혁을 꿈꾸던 정력적인 활동가였다.

그런 A가 정부종합청사 뒤편 길가에서 메가폰을 들고 수 십명의 보수 단체 회원들과 같이 현 정권을 비난하는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은 그의 정력적이고 저돌적인 모습만이었다.

간간이 직장에서의 그의 행태를 전해 듣고 설마 그러랴 하고 있던 터였다. 그의 논리와 해박함 앞에서는 아무도 도전할 수가 없다고 했다.

차라리 머리 속에는 돈과 건강으로 가득차 세상과 적당히 타협해가는 왜소한 소시민이 되었던들 이렇게 실망감이 크진 않았을 것이다.

단지 열심히 산다는 것 만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른 손을 허공에 내젓는 A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무척 서글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