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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터에 가는 길에 두물머리에 잠시 들리다.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경기도 남양주시 양서면 양수리에 해당되는 곳이다. 그동안 차로 지나다니기만 했지 내려서 강변에 나가보기는 처음이다. 사람이없는 곳을 찾아서 강가에 서니 갈대를 비롯한 수생식물들이 강을 가득 덮고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강에도, 산에도 가을이 잔뜩 익었다. 바로 머리 위를 지나가는 고가도로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음만 아니라면 몇 시간이고 이 고즈넉한 풍경과 같이 있고 싶어진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지만 도시인의 탁한 눈이 맑게 씻어짐을 느끼며 자리를 뜬다. 인근에 세미원(洗美苑)이라는 수련 전시장이 있다. 이미 철 지난 연못에는 한 생을 마친 연잎이 마른 몸을 물 위에뉘고 편히 쉬고 있다. 오후의 가을 햇빛이 눈부시다. 실..

사진속일상 2004.11.07

단순하게 느리게 고요히 / 장석주

땅거미 내릴 무렵 광대한 저수지 건너편 외딴 함석 지붕 집 굴뚝에서 빠져나온 연기가 흩어진다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 오, 저것이야! 아직 내가 살아 보지 못한 느림! - 단순하게 느리게 고요히 / 장석주 빨리 빨리가 미덕이 되었고, 분주함은 일상이 되었다. 어떤 때는 나 자신이 현대 문명의 속도전에 이유도 모른채 내몰린 힘없는 병사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쁜 일상의 틈 사이로 언뜻 비치는 그런 느낌...... 저녁 어스름, 고향의 초가 지붕 위로 느릿느릿 피어오르던 연기를 떠올리면 나는 슬프다. 바삐 달려오기만 한 내 이 자리는 어디인가? 정말 그렇게 살고 싶다. 단순하게, 느리게, 고요히........

시읽는기쁨 2004.11.06

작은 전시회

저녁부터 가을비가 내리다. 그림을 그리는 동료의 작품 전시회에 가다. 찻집의 한쪽 벽면을 이용한 작은 전시회이다. 전시된 작품은 다섯 점인데 모두 생소한 기법으로 제작되어 있다. 액자의 유리 표면에도 물감을 칠해서 효과를 낸 것이 인상적이다. 소재는 전원 풍경과 현대 도시의 구조물들이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것은 간소하고 작은 전시회인 것이다. 보통 생각하는 미술 전시회라면 입구에 화환이 늘어서 있고, 부담을 주는 큰 방명록도 펼쳐져 있고, 그리고 관람객의 기를 죽이는 넓은 홀과 환한 조명이 연상된다. 그런 곳에서 나 같은 사람은 괜히 의기소침해진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는 작은 찻집의 벽면을 이용했다. 작품 밑에서 차를 마시며 부담 없이 얘기를 나눈다.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른다. 작가가 아닌 보통 사..

사진속일상 2004.11.05

라마크리슈나 어록

갈등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분열과 투쟁을 일으키는 파괴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다. 지금 시대는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갈등이 표출되면서 몹시 불안정하다. 이때는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기보다는 같음을 찾아서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향으로 상호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데올로기나 이념이 생명보다 더 소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대 입장에 서있는 상대방은 나를 비쳐보는 거울이 될 수 있다. 특히 종교의 세계에서 그럴 필요를 더욱 느낀다. 보편적 종교의 지혜는 시간, 장소, 교리의 차이를 떠나 인간 영혼에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손을 맞잡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나만의 진리 독점주의는 우리 모두를 파멸시킨다. ..

읽고본느낌 2004.11.04

교정의 가을

가을비가 지나가니 가을 색이 더 깊어졌다. 가을 교정은 빨강, 노랑, 초록의 빛깔로 가득하다. 나무는 물론 땅도 사람 얼굴도 온통 단풍물이 들었다. 가을의 아름다움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11월 초순의 짧은 한 때, 스쳐가듯 우리 마음을 흔들며 가을의 정령이 지나가고 있다. 느티나무 아래에 떨어진 낙엽이 곱고도 포근하다. 복자기나무에도 빨간 물이 들었다. 건물 벽에 매달린 담쟁이 덩굴도 대부분 떨어지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밑에서 올려다 본 층층나무 잎도 은은하게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사진속일상 2004.11.03

대한민국은 공사중

대한민국은 공사중이다. 도시나 농촌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땅을 파고 산을 뚫고 시멘트 구조물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이젠 깊은 산 속 골짜기까지도 굴삭기가 들어가 길을 내고 터를 닦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조금이라도 경치가 좋은 곳이면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는다. 어떤 경우는 공사가 목적이 아니라 마치 건설 장비를 놀리지 않기 위하여 일을 꾸미고 있는 느낌마저 있다. 최근에 읽은 신문에서는 나라의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건설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제일 효과가 있다면서 대규모 공사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설 공사라는 것이 자연을 망치고 아름다움을 깨뜨리게 되니 문제가 있다. 애꿎은 산허리가 잘려나가고 들판이 시멘트로 덮혀진다. 조용하고 평화롭던 시골 마을이 자동..

참살이의꿈 2004.11.02

산국

이젠 산과 들에서 야생화를 보기 힘든 계절이 되었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것이 노란 산국이 아닌가 싶다. 산국(山菊)과 감국(甘菊)은 구별하기가 무척 힘들다. 둘의 차이점을 설명 듣기는 했으나 막상 실전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둘은 너무 비슷해서 정확히 구별하는 것은 포기하고, 산에서 자주 눈에 띄는 노란 꽃은 그냥 산국이라고 부른다. 감국은 흔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화주나 국화차로 이용하는 것은 감국이라고 한다. 산국은 독성이 있다니 조심해야 되겠다. 이 조락의 계절에 저 산 아래 어딘가에는 노란빛의 산국 한 무더기가 아직 남아있어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을 붙들고 있을 것이다.

꽃들의향기 2004.11.01

가을 나들이

동료들과 경기도 가평에 있는 매봉을 찾았다. 7명이서 지프와 승용차에 나누어 타고 갔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고 외진 산이어서선지 험한 비포장길을 한참을 가야 했다. 결국 승용차는 끝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K와 나는 자원해서 뒤에 처지게 되었다. 그래서 정상에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산 아랫쪽에서 수락폭포라는 비경을 만나서 늦가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었다. 산의 나무들은 벌써 몸의 물을 비우면서 겨울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땅으로 돌아온 나뭇잎들이 발에 밟히는 소리가 유난히 사각거렸다. 특히 계곡의 물 위에 떨어진 잎은 단풍의 선명한 색깔을 그대로 유지한 채 평화롭고 아름답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화려한 단풍철은 지나서마치 잔치가 끝난 자리처럼 아쉽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대신에 늦가을의 산은 삶의..

사진속일상 2004.10.31

가을날 / 허영자

세상엔 가을이 우리한텐 이별이 왔다 안녕히 늘 안녕히 우리는 가난한 연인이나 가진 것 모두 서로 주었기 빈 알몸으로 후회는 없다 꽃이나 나무나 온갖 식물이 그러하듯 나도 빛나는 사랑의 열매 하나 달고 이 愁心 깊은 계절을 견디리라 정녕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던 열정의 시간 보랏빛 추억의 때를 저 높다란 구름 선반 위에 갈무리 하느니 더욱 넉넉히 허용될 아름다운 날을 위하여 낙엽 쌓인 조롱길이 열린다 가앙 가앙 푸르른 가을 하늘 열린다 - 가을날 / 허영자 올해는 유난히 파란 가을 하늘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 되돌아보니 봄에는 황사도 덜 했고, 여름 태풍도 비켜갔고, 비 피해도 적었고, 다른 해보다 자연 혜택을 많이 받은 해인 것 같아 고맙다. 상대적인지 이웃 일본은 태풍과 지진의 자연 재해로 ..

시읽는기쁨 2004.10.29

메멘토모리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합시다!) 유럽의 어느 수도원에서 수도사들 사이에 주고받는 일상적인 인사말이라고한다. 매 순간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자는 마음다짐이 이 인사말 속에는 들어있다. 사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면서 결정적 문제인 이 죽음만큼 무시되고 경원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애써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다. 이웃의 죽음에 슬퍼 하지만 가까운 가족이 아닌 경우 그 효과가 며칠 가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다시 천년 만년 살 듯이 일상을 살아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죽음만큼 우리 존재를 뒤흔들어놓을 사건도 없다. 죽음은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거대한 블랙홀이다. 죽음은 이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이며 모든 인연의 끈을 끊어버리는 가위이다. 저 세상 너머의 일을 알 수 없는 한 ..

길위의단상 2004.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