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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견진 받는 날

오늘은 친구가 견진을 받는 날이다. 이 친구와는 시골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그런데 서로 가까와진 건 서울에 있는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었다. 당시 4명이 올라 왔는데 이 친구와는 1학년 때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60년대 말, 모두가 어려운 때였다. 시골 학생들은 대부분 셋방을 얻어 자취 생활을 했다. 친구도 형들과 함께 산동네 좁은 방에서 어렵게 지냈다. 그래도 우리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한 친구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할 정도로 곤궁했다. 어떤 때는 셋방에서 쫒겨나독서실서 살기도 했다. 그런 힘든 환경에서도 모두들 공부는 열심히 했다. 그리고 웃음을 잃지도 않았다. 아마도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그 때에 가장 꽃 피지 않았는가 싶다. 친구는 법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사시에 도전했으나 계속 ..

길위의단상 2003.11.08

솔직한 급훈

어느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 걸려 있는 급훈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설명을 듣고는 이해가 되었지만 그러나 뒷 맛이 씁쓸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주위에는 유명 대학들이 여럿 있다. 연대, 이화여대, 서강대, 홍익대, 서울대, 건국대, 한양대 등등..... 여기에 다니는 학생들은 주로 2호선을 타고 등하교를 한다. 결국 `2호선을 타자`란 말은 이런 유명 대학들에 진학하자는 뜻일게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겉으로는 전인 교육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은 입시 학원에 다름없다. 교육 과정이나 활동이 지적 분야의 경쟁에만 편중되어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성실이라든가 노력, 착함 같은 인성적 측면을 강조했는데 이젠 노골적으로 입시 경쟁에 내몰고 있다. 그나마 솔직하다고 인정해주어야 할 것인지..

사진속일상 2003.11.07

너와집 한 채 / 김명인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베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잣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플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넣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

시읽는기쁨 2003.11.06

Learning to fall

가을은 떠나 가고, 떠나 보내는 계절인가 보다. 담안에 계시는 어느 분이 최근에 슬픈 일을 연달아 겪으셨다. 친한 친구가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져서 사망하고,경황이 없던 바로 그 날에 언니가 또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바로 어제의 일이다. 그 분의 지금 심정이 어떠할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 분에게 지금 어떤 위로의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나간다. 아무 이별의 말도 없이, 무심히 떨어지는 저 낙엽처럼 그렇게 이 곳에서 사라져 간다. 그 분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같은 날 동시에 잃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밖에는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살다 보면 내 것이라 여겼던 애지중지하던 그 무언가를 상실하는 경험을 ..

길위의단상 2003.11.04

본회퍼의 `옥중서간`을 읽고

이번 주말 집에서 쉬면서 본회퍼의 `옥중서간`을 다시 읽어보다. 그의 신학적 사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의 삶이 나에게는 자극제가 되고 성찰이 된다. 그의 삶 자체가 무언의 메시지이다. 우리가, 특히 신앙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고민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독일의 촉망받던 신학자며 목사였다. 히틀러가 집권한 후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반나찌 운동에 가담한다. 1943년 봄에그는 체포되고 히틀러 암살 계획에 연루되어 종전을 몇 달 앞두고 처형되었다.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소명에 몸을 던진 사람이었다. 그의 용기와 사랑,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신앙이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종교의 ..

읽고본느낌 2003.11.02

내 생에 그런 기쁜 길이 남아있을까 / 이시영

내 생에 그런 기쁜 길이 남아 있을까 이 시영 중학 1학년 새벽밥 일찍 먹고 한 손엔 책가방 한 손엔 영어 단어장 들고 가름젱이 콩밭 사잇길로 시오리를 가로질러 읍내 중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면 막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해에 함뿍 젖은 아랫도리가 모락모락 흰 김을 뿜으며 반짝이던 간혹 거기까지 잘못 따라온 콩밭 이슬 머금은 작은 청개구리가 영롱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팔짝 튀어 달아나던 내 생에 그런 기쁜 길을 다시 한번 걸을 수 있을까 과거는 아름답다? 하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나이 탓인가, 계절 탓인가 요즘은 옛날 생각이 자주 난다. 오늘 만난 이 시도 내 마음을 울린다. 나도 이십리 길을 걸어 읍내 중학교에 다녔다. 합승이라고 불렀던 작은 버스가 다녔지만 시골 아이들 대부분은..

시읽는기쁨 2003.11.01

작살나무

이름도 특이하지만 열매가 색다른 나무이다. 그런데 작살이라는 이름은나무 가지가 원줄기에서 갈라져 나온 모양이 작살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가을 열매가 대부분 붉은 색이나갈색 계통인데 작살나무는 밝은 보라색이다. 이 열매를 처음 보고 신기해하지 않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워낙 색깔이나 모양이특이하고 아름다워서 한참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올림픽 공원 동편 호수가에 이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에서 신혼부부 한 쌍이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면사포를 입은 신부가 이 열매를 발견하고 신기해 하며 사진사에게 물었다. "너무 이쁘다. 아저씨, 이 열매 이름이 뭐예요?" 그러자 대포같은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진사 왈 "그걸 알면 내가 지금 이 짓 하고 있겠어요?" 신부가 피식..

꽃들의향기 2003.10.31

쓸쓸한 건배

일과를 일찍 마치고 동료들은 남한산성으로 단풍 구경을 떠났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그냥 보낼 수 없단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단풍나무 아래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가을 정취를 즐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혼자 있고 싶다. 지난 한 달 동안은 사람들과 자주 어울릴려고 노력했다. 여러 모임에도 참여하고 개인적으로 만나 술도 마셨다. 그것은 잊기 위해서였다. 나에게는 벅차게 다가온 사건들의 고통, 그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희석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이나술이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다. 어떤 때는 도리어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오늘은일찍 집으로 들어가야지. 그냥 아내와 둘이서 소주 몇 잔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사라져가는 마가리의 꿈을 향하여 쓸쓸한 건배라도 했으면 좋겠다.

참살이의꿈 200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