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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이 없다고?

"휴대폰이 없다고?" 연말이 되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가끔 듣게 되는 반문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마치 괴짜를 만난 듯한 표정을 짓는다. 현재 국내의 휴대폰 가입자 수가 3600만 명에 달해서 전 국민의 휴대폰 보유 시대가 되었는데 아직 휴대폰이 없다는 것은 의아하게 생각될 만도 할 것이다. 그런데 왜 휴대폰이 없는지에 대한 답을 하려니 궁해질 수밖에 없다. 휴대폰 사용에 부담을 느낄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뭔가 사연이 있는 대답을 바라는 것 같은데, 사실 휴대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 다른 이유는 없다. 워낙 대인 관계가 좁다보니 그 물건이 필요하지 않을 뿐이다. 한 때는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TV나 신문, 컴퓨터 등을 멀리 하기도..

길위의단상 2004.12.06

내 꿈

겨울비가 내린다. 가늘고 곱게 내린다. 닫힌 창문 사이로 낙숫물 소리가 똑 똑 여리게 들린다. 시골 마을 한가운데서 느끼는 이 계절은 방안의 기온만큼 썰렁하다. 초겨울의 빗소리를 들으며, 존경하는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는다. 선생님은 우리 글과 자연을 진정으로 사랑하신 참 교육자였고 시대의 예언자였다. '악마들이 하는 짓을 경고하고, 가엾게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겠다'고 말씀하신 선생님이 가신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 구름이 한 점도 보이지 않는 이런 맑은 날에도 하늘은 그 옛날의 하늘빛이 아니다. 흐릿한 잿빛이 좀 섞인 파란빛이다. 산을 보면 여름과 다름없이 흐릿하고, 먼 산은 잿빛으로 가려져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렇게 하늘과 땅이 언제나 매연으로 덮여 있고..

참살이의꿈 2004.12.05

따스한 겨울

겨울이 왔건만 봄날처럼 따스하다. 뜰에 있는 목련나무가 보드라운 솜털을 내며 꽃망울을 내밀려고 한다. 12월 초순이 되도록 아직 서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것도 전에 없던 현상이라고 한다. 올 겨울은 큰 추위가 없을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겨울의 시작부터 심상치가 않다. 날씨가 따스하면 겨울나기에는 좋겠지만 지구 기온 상승이 가져다 줄 재앙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 보도에는 북극의 빙하가 눈에 띄게 줄어든 사진이 실렸다. 그리고 중동과 중남미 지방에서는 메뚜기와 나비가 이상 번식을 해서 떼로 몰려다니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바다 속에도 열대성 어류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호주 해안가에서는 고래들이 땅 위로 올라와 때죽음을 했는데 이것도 인간의 해저 ..

사진속일상 2004.12.03

가면 / 홍윤숙

이 나이에도 나는 아직 마음 들키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문다 부질없는 호감을 사기 위해 미소를 짓는다 수치와 굴욕을 감추기 위해 큰소리로 떠든다 그러다 돌아와 자신을 향해 침을 뱉는다 눈물을 쏟는다 무거웠던 가면 전흔의 상처 남루한 또 하나의 얼굴이 쓸쓸히 누워있다 - 가면 / 홍윤숙 인생은 흥겹고도 쓸쓸한 가면 무도회..... 잔치가 끝나면 내 지친 얼굴은 외로이 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하나씩 새 가면을 만드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지금 열심히 들락거리고 있는 이 블로그도 요사이 만들어낸 새 가면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적당히 화내고, 적당히 미소 짓고, 적당히 떠들며 저 시끌벅적한 가면 무도회에 동참하기 위해 내 손에는 늘 무거운 가면이 들려있다. 언제쯤일까? 神 앞에 서게 되는 날, 그분의 빛으로 이..

시읽는기쁨 2004.12.02

처녀치마

처녀치마는 수줍은 듯 숨어서 피어나는 꽃이다. 이른 봄, 아직 산에는 잔설이 남아있는데 처녀치마는 어두운 산골짜기에서 외롭게 꽃을 피운다. 이 꽃은 모양도, 이름도 특이하다. 굵은 꽃대 위에 다닥다닥 보라색 꽃이 달려있고, 크고 긴 잎은 땅에 붙어서 펼쳐져 있다. 그러고 보니 꽃이나 잎이 여성의 치마 모습을 닮은 것도 같다. 꽃은 주름이 많아 부풀어오른 풍성한 스커트가 연상이 되고, 잎이 땅에 펼쳐진 모습은 늘씬한 롱스커트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처녀치마'라는 이름은 이 꽃의 일본명을 잘못 옮긴 것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이 꽃의 일본 이름이 猩猩袴(쇼우조우바카마, 성성이치마)인데, '쇼우조우'라는 발음이 소녀(少女)의 '쇼우조'와 비슷해서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처녀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

꽃들의향기 2004.12.01

익숙한 것과의 결별

IMF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직이나 파산을 당했다. 한 순간에 찾아온 낯선 환경에 사람들은 절망하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거리로 나섰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 이 말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말이 아니었던가 싶다. 익숙한 것에서 떠난다는 것은 가슴 쓰라린 일이지만 그런 결별이 없이는 새로운 역사가 씌어질 수 없다는 의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에게 있어 어느 순간 불가항력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하지만 그것이 한 인간에게 있어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도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말로 쓰이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은 어떻게 변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만약 내가 사회학자라면 조사, 연구해 보고 싶은 바램도 있다. 그런 외적인 충격이 한 개인..

참살이의꿈 2004.11.30

[펌] 당신들은 예수의 친구가 아니다

나는 예수쟁이이다. 왜 “크리스찬”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정 이런 식의 약간은 자기비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지 헤아려주었으면 좋겠다. 한국 기독교는 너무나 가진 자들의 편에 서게 되었다는 생각, 따라서 진실로 예수라고 하는 한 팔레스타인의 지독한 주변인이었던 기독교의 창시자의 정신으로부터 너무나 멀어졌다는 생각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주변성을 자기 정체성 안에 통합해 넣는 용어를 일부러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를 비천한 자리에 가져다 놓을 줄 모르는 자는 크리스찬이 아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스스로의 결단에 의거하여 자신을 옭죄던 봉건성을 기독교라는 각성의 형식으로 극복했던 1세대 기독교도의 아들이다. 내 아버지는 대한민국 최대의 교회 중 하나인 영락교회를 창건하신 열 분 장로님 중..

길위의단상 2004.11.29

창덕궁의 늦단풍

창덕궁에 갔다가 뜻밖에도 아직 남아있는 단풍을 만났다.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후원으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진홍빛 단풍들이 올해의 마지막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창덕궁은 경복궁에 비해서 조용하고 여성적인 느낌이 든다. 특히 궁궐의 정원으로 조성된 후원은 뒷산의 자연 환경을 그대로 이용해서 만들어 그 안에 들면 엄마 품처럼 포근하다. 단풍나무길을 걸어가는 한 가족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후원에 있는 부용정(芙蓉亭)이다. 임금이 산책하다가 쉬는 장소였다는데 이곳에서 낚시를 하기고 했다 한다. 정자 모양이아담하고 예쁘다. 자연 속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으려 한 선조들의 지혜가 느껴진다. 산기슭의 낙엽이 오색 색종이를 뿌려놓은듯 다채롭다. 인정전(仁政殿). 편액에 쓰여있는대로 정말로 인정(仁政)이 실천되..

사진속일상 2004.11.27

아름다운 서울

어제, 첫눈이 흩뿌리던 날, 한국일보사 13층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먹구름이 몰려와서 눈발을 날리다가 어느새 해가 나기도 하는 변덕스런 날씨였다. 예전에는 이런 날을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서울시의 전망이 내 눈에는 다른 어디보다 제일 좋다. 경복궁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뒤쪽에는 북악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가 유일하게 높은 빌딩과 아파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악산과 인왕산 아래, 효자동을 중심으로 하는 이곳 주거지역은오래된 한옥들과 빌라들이 어우러져 있다. 건물들은 대부분 5층 이하의 낮은 키여서 나무들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이상적인 녹색도시의 모습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남산에 오른..

사진속일상 2004.11.27

가정 /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동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가정 / 박목월 아버지가 그립다. 이젠 찾아볼 길 없는 아버지의 위엄과 권위가 그립다. 지금 아..

시읽는기쁨 200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