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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터의 산문(散文)

며칠 전, 일간지에 재미있는 광고가 실렸다. ㅎ 정수기 회사에서 이양하 님의 '페이터의 산문'을 70년대 국어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 전면 광고로 실은 것이다. 30여년 전에 공부했던 교과서를 다시 보게 되니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의 교실로 되돌아간 것 같다. 저 부분에 밑줄을 긋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새롭다. 그때에 나는 국어 과목을 제일 좋아했다. 국어 선생님은 작은 키에 목소리가 낭낭하셨는데 시를 낭송해 주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그때는 국어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모른다. 그 시간이면 선생님 따라서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하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랜드케년 기행기였다. 얼마나 실감나게 설명해 주시는지 나중에 그랜드케년은 꼭 가보리라고 다짐을 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미..

읽고본느낌 2004.11.24

역마복(驛馬福)이 터진 해

2004년은 우리 가정에 역마복(驛馬福)이 터진 해이다. 역마살(驛馬煞)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전에서 찾아보니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된 액운'으로 나와 있는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을 액운으로보다는 복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 역마복(驛馬福)이라는 말로 써 보았다. 우선 집이 이사를 했고, 나는 직장을 옮겼다. 이사를 하고 직장을 옮기는 것이 가끔씩 있는 일이지만 묘하게도 금년에 두 가지가 동시에 겹쳤다. 변화는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새로운 직장,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는 일이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힘든 만큼 얻는 것도 많다. 이사나 전근이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것도 역마복(驛馬福)이라고 부를 수 ..

사진속일상 2004.11.23

겨울 준비

오늘이 소설(小雪)이다. 어느새 벌써 겨울에 들어섰다. 곧 첫눈 소식도 찾아올 것이다. 가을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간다. 힘들었을 때는 일년이 휙 지나가 버렸으면 하고 바랐지만 이제 한 해의 끝자락이 바로 코 앞에 다가오니 아쉬운 맘이 크다. 예전에 겨울 준비로는 김장과 연탄이었다. 70년대에 서울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 때 몇 식구가 되지 않았는데도 김장을 한 접씩 담근 기억이 난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당시에는 김치를 엄청나게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이맘때가 되면 집집마다 서로 어울려 김장을 하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여러 집이 어울려 김장을 할 때는 마당이 좁아서 골목길이 작업장이 되곤 했다. 그때의 시끌벅적하던 겨울 준비가 그립기도 하다. 그리고 부엌 한 켠에다 연탄을 가..

참살이의꿈 2004.11.22

내가 보고 싶은 것들 / 박노해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장애우 앵커를 보고 싶어요 노동하는 삶의 철학을 강의하는 노동자 교수님을 보고 싶어요 이혼한 젊은 여자가 실력 있는 대통령으로 뽑히는 걸 보고 싶어요 동남아시아계 서울 시장이 세계경영을 이끄는 걸 보고 싶어요 서울역에서 상경하는 농사꾼에게 정중히 경례하는 경찰들이 보고 싶어요 안기부 청사에 아이들과 김밥 싸들고 격려 방문하는 시민들을 보고 싶어요 북한 노동자의 손에 깨끗이 쓰러진 수령의 동상을, 항일 운동하던 시절의 김일성 장군 사진이 독립기념관에 걸려진 걸 보고 싶어요 거리에 자동차보다 많은 자전거의 물결을 보고 싶어요 안 갖는 긍지로 적게 벌고 나누어 쓰자며 '푸른 생산'을 내건 파업 노동자들을 만나고 싶어요 토실토실 살 오른 아프리카 아이들이 두 뺨 발그레한 남북한 아이들과 어..

시읽는기쁨 2004.11.21

IXY50을 사다

남대문에 나가서 캐논 디지털 카메라 'IXY50'을 샀다. 막내의 카메라가 고장나서 그동안 쓰던 IXUS400을 물려주고 비슷한 기능이지만 훨씬 가벼워지고 얇아진 것으로 바꾼 것이다. 이왕 바꾸는 것 욕심을 내어서 SLR 디카도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휴대성을 우선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 카메라 편력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우선 디카는 COOLPIX2500, IXUS400을 거쳐서 지금이 세 번째이다. 모두가 소형 자동카메라인데 사실 고급기종에 대한 욕심은 지금은 없다. 그 전의 필카 때는 카메라나 렌즈에 대해 실력 이상으로무리를 했다. 지금 집에 있는 필름 카메라만도 4개나 된다. 렌즈는 광각 20mm 부터 망원 300mm 까지 7종류이다. 구름을 찍는다고, 별을 찍는다고, 그리고 나중에..

사진속일상 2004.11.20

모든 것은 지나간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현상계(現象界)는 무상(無常)의 세계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이 말만큼 우리 우주의 실상을 적절히 표현한 말도 없을 것이다. 우주는 변화하는 세계다. 삼라만상은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없다. 사실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사물의 변화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알고 있는 원리마저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생성, 변화, 소멸을 되풀이하는 것이 물질계만은 아니다.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온갖 생각들을 관찰해 보면 명멸하는 변화에 넋이 나갈 정도이다. 작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는다. 기쁨이 지나가면 슬픔이 찾아오고, 희열 뒤에는 고통이 따른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절망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간다. 불시에 찾아온 화(禍)가 어느새 복(福)으로 변하기..

길위의단상 2004.11.19

사람만이 희망이다

일민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최민식 사진 전시회에 다녀오다. 다큐멘타리 사진작가로서 최민식 님은 흑백사진을 통해서 5, 60년대의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이웃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이 너무나 변했지만 사진 속의 모습들은 사실 우리들 어제의 모습이었다. 거기에는 궁핍과 삶의 무게에 찌들었던 우리의 모습이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면 왠지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받는다. 사진 속에서 따스한 인간애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가난하지만 천진한 아이들의 얼굴, 자갈치 시장 아줌마의 건강한 웃음, 아이를 꼭 껴안고 국수를 먹이는 야윈 엄마의 행복한 미소 등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워도 결코 절망에 무너지지 않을 희망과 사랑이 사진에는 있다. 사진을 보며 나는 역설적..

읽고본느낌 2004.11.15

말채나무

바람이 차다. 지난 밤에 분 바람으로 나뭇잎들이 많이 떨어졌다. 느티나무, 느릎나무에 마지막까지 달려있던잎들도 이젠 대부분으로 땅으로 돌아갔다. 말채나무의 노오란 잎들만이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끝까지 남아 '아듀-'의 인사를 보내고 있다. 11월이 되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그래도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쉽게 느껴질 때가 좋은 때이다. 삶이 힘들고 고달플지라도 머리 위의 저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를 잃어서는 안 되겠다. 언제나 아름답고 맑은 하루하루가 되길 소망해 본다. 같은 말채나무이다. 그런데 이놈은 색깔이 붉다. 이웃해 있는 같은 두 나무가 하나는 노란 잎을, 다른 하나는 붉은 잎을 달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꽃들의향기 2004.11.13

합격 기원제

수능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수험생이나 가족들의 마음이 무척 초조하고 불안할 것이다. 그 과정을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로 생각하며 견디고 있지만 사실 대학을 향한 경쟁은 전쟁터와 비슷하다. 고3을 경험해 본 당사자나 학부모는 현 입시 제도나 교육 현실에 대하여 비판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뚜렷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제까지나 이런 경쟁 체제 속에 우리 아이들을 팽개쳐 둘 것인지 이때가 되면 더 안타까워진다. 오늘 학교에서는 수능 고득점을 위한 기원제가 열렸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행사까지 열리는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지켜보는 내내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기원문이 낭독되고, 절을 하고, 돼지머리에는 봉투가 쌓인다. '제신(諸神)들이시여, 우리 아이들이 모르..

사진속일상 2004.11.12

나무들 / 칼머

나무보다 아름다운 시를 나는 결코 알지 못할 것 같다. 대지의 달콤한 가슴에 허기진 입술을 대고 있는 나무 하루 종일 신을 우러러보며 잎이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여름에는 머리 위에 개똥지빠귀의 둥지를 이고 있는 나무 가슴에는 눈이 내려앉고 또 비와 함께 다정히 살아가는 나무 시는 나 같은 바보가 짓지만 나무를 만드는 건 신만이 할 수 있는 일 - 나무들 / 칼머 사람보다는 나무가 더 좋다는 친구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 친구는 꼭 나무를 닮았다. 그의 곁에 가면 숲에 든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의 별명은 물푸레나무이다. 이 친구 따라 나무 설명을 들으며 나도 나무와 많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나무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눈이 떠진 느낌이다. 지금 밖에는 다가오..

시읽는기쁨 2004.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