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지나간다.
현상계(現象界)는 무상(無常)의 세계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이 말만큼 우리 우주의 실상을 적절히 표현한 말도 없을 것이다.
우주는 변화하는 세계다. 삼라만상은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없다. 사실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사물의 변화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알고 있는 원리마저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생성, 변화, 소멸을 되풀이하는 것이 물질계만은 아니다.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온갖 생각들을 관찰해 보면 명멸하는 변화에 넋이 나갈 정도이다.
작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는다.
기쁨이 지나가면 슬픔이 찾아오고, 희열 뒤에는 고통이 따른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절망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간다. 불시에 찾아온 화(禍)가 어느새 복(福)으로 변하기도 한다. 모든 것은 변해간다.
즉 하나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 만물의 본성이다.
그런데 사람은 대개 어느 하나에 집착한다. 머물지 않는 것에 머물려하는데서 고통과 번뇌가 생긴다.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속알을 비우는 사람이 자유인(自由人)이다.
대상에 매일 때 그는 부자유하다. 쉼 없이 변하는 대상을 따라 쫓다가 그의 삶은 힘들고 피곤해진다. 그것은 자신의 욕구(欲求)를 따라 사는 삶이다.
무엇을 이루려는 것은 생명에게 주어진 몫이지만 그것이 자아 성취를 넘어선 이기적 욕망이 될 때 문제가 생긴다. 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마음에는 평화가 자리잡을 수 없다.
무엇을 추구하는 것과 거기에 연연하는 것과는 겉으로 보이는 행동은 비슷할지 몰라도 본질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자유인은 대상에 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추구하던 대상이 사라지더라도 아쉬울 것이 없다. 열심히 일하지만 부자가 되든, 가난해지든 별 관계가 없다.
그가 일하는 것은 목표 자체가 아니라 일을 통한 자족(自足)이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삶의 희열이나 영혼의 평화는 대상이 아니라 존재감 자체에서 우러난다.
흐르는 물결에 거슬려서 싸울 필요는 없다. 물결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힘들고 어려울 때 이 말을 상기해 보면 한결 위로가 된다. 또한 일이 잘 풀릴 때 기고만장해지려는 마음을 지켜주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무엇이고 영속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나무들도 잎들을 대부분 떨어뜨리고 빈 모습으로 서 있다. 가을 나무는 무성했던 잎들을 때가 되면 우수수 땅으로 돌려보낸다.
계절의 순환을 통해 배우고 느끼게 되는 것들이 많다.
만약 어떤 나무가 있어 자기 것이라고 우기며 잎들을 붙들고 내주지 않는다면 그 나무는 겨울 추위에 얼어죽고 말 것이다.
나도 어리석은 나무처럼 뭔가를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악착같이 움켜 쥘려고만 하지는 않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변화하는 만상(萬象)의 어느 한 부분에 집착하거나 머무르지 않고 물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살고픈 바램이 자꾸만 간절해지는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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