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그 소리가 그립다

샌. 2004. 10. 15. 10:44

가을걷이로 한창 바쁜 농촌이지만 마을 안은 조용하다.

벼 수확 작업이 대부분 기계의 힘으로 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벼를 베는 일에서부터 탈곡하고 나르는 작업이 밖에서 다 이루어진다. 집으로 들어오는 벼는 없고 직접 건조장이나 도로 위로 옮겨진다.

예전에 이 무렵에는 온 동네가 북적거렸다. 모든 일이 오직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이루어졌다.

낫으로 벤 벼를 논에서 말린 다음 지게나 달구지를 이용해서 볏단을 집으로 옮겼다. 딸랑 딸랑 목에 달린 종을 울리며 쉼 없이 벼를 실어 나르던 우리 집 황소가 기억난다.

저녁이 되면 볏가래를 쌓는다. 등불을 여기 저기 켜놓고 마치 탑이 쌓아지듯 하늘로 올라간다. 볏가래는 가운데가 볼록한 항아리 모양으로 생겼다.

높이가 점점 올라갈수록 밑에서 볏단을 던져주는 일꾼들의 숨소리도 거칠어진다. 비록 거친 노동이었지만 생의 활력과 에너지가 느껴지던 그때 마당의 소란스러움이 그립다.

또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도 있다.

마당에서는 윙윙거리며 며칠을 탈곡기가 돌아갔다. 노란 나락이 모래처럼 쌓여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신나고 배가 불렀다.

일꾼들이 쉴 때 몰래 흉내를 내다가 손에서 놓친 볏단이 탈곡기에 걸려서 황당해하던 기억도 난다. 손을 다친다고 어른들은 탈곡기에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몰래 빈 탈곡기를 밟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놀이였다.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그 소리가 재미있었다.

젊은이가 떠난 요즈음 농촌 마을은 사시사철 적막하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그때는 살아가는 많은 소리들이 있었다.

집집마다 몇 종류의 동물은 키우고 있었는데 대체로 소, 돼지, 개, 닭은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었다.

외양간에 매여 있는 송아지가 음메 하고 우는 소리, 돼지우리에서는 돼지의 꿀꿀거리는 소리, 그리고 헛간에서 꼬꼬댁꼬꼬 하며 닭이 알 낳는 소리가 늘 옆에 있었다.

집집마다 새벽을 깨우는 장닭들의 울음소리도 이제는 없다. 닭들은 전부 양계장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저녁이 되면 동네 골목길은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리로 시끌시끌했다.

공치기, 술레잡기, 전쟁놀이, 딱지치기.... 저녁 마당이나 골목길은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운동장이었다.

해가 기울고 어두워져 가면 온 마을이 쩡쩡 울리도록 아이들을 부르는 어머니의 소리가 들려왔다.

대답은 하지만 한 번에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는 없었다. 그러면 어머니의 소리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어떨 때는 욕이 퍼부어지기도 했다.

못 살던 시대의 농촌은 그렇게 생명들의 살아있는 소리로 가득했다.

가난하고 고단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의 적막한 농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옛날의 그 북적거렸던 사람살이가 그리워진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그 소리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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