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메멘토모리

샌. 2004. 10. 28. 14:16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합시다!)

유럽의 어느 수도원에서 수도사들 사이에 주고받는 일상적인 인사말이라고한다.

매 순간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가자는 마음다짐이 이 인사말 속에는 들어있다.

사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면서 결정적 문제인 이 죽음만큼 무시되고 경원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애써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다. 이웃의 죽음에 슬퍼 하지만 가까운 가족이 아닌 경우 그 효과가 며칠 가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다시 천년 만년 살 듯이 일상을 살아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죽음만큼 우리 존재를 뒤흔들어놓을 사건도 없다.

죽음은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거대한 블랙홀이다. 죽음은 이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이며 모든 인연의 끈을 끊어버리는 가위이다. 저 세상 너머의 일을 알 수 없는 한 죽음은 이곳에서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한다.

그리고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바로 내일이 될 수도 있다.

'메멘토모리'를 간직하며 산다는 것은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언젠가는 이 지상에서 소멸되어 없어질 유한한 존재라는 인식은 우주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메멘토모리'는 인생의 덧없음과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어둡고 무겁거나 부정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있는 그대로에 가깝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현세의 가벼움과 경박함에 대한 훌륭한 견제 장치가 될 수 있다.

죽음을 기억할 때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의 우선 순위도 달라질 것이다.

어느 대학에서 심리학 시간에 학생들에게 만약 앞으로 남은 생애가 3일만 주어진다면 꼭 하고 싶은 일 세 가지를 발표하게 하는 과제를 주었다고 한다.

결과는 우리의 일상에서 아주 사소하게 여기는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하기,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나무 심기, 등 돌렸던 친구와 화해하기, 홀로 또는 사랑하는 이와 여행을 가기 등.....

죽음을 앞두고 평소에 최고의 할 일이라 여기며 노심초사하던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대신에 너무나 사소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던 일들이 소중하게 다가온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죽음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에 변화가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재물이나 권세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랑과 관심과 따스한 인간 관계였던 것이다.

'나의 생이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메멘토모리'란 이런 질문을 나 자신에게 계속 던지는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삶이란 마치 영원을 살 듯이 헛된 환상을 쫓아 시간을 허비하는 일에서 떠나 참으로 소중한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며, 작아 보이지만 소중한 일을 뒤로 미루지 않고 지금 실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지금 해야 할 소중한 일이란 바로 이런 것일지 모른다.

파란 가을 하늘을 한 번 더 쳐다보기, 화를 낼 사람에게 미소로 답해주기, 오늘 병원에 다녀온 아내에게 어떻느냐고 전화해 주기, 옆의 동료에게 작은 관심을 가져주기, 아름다운 자연과 생명들에게 '사랑합니다'라고 속삭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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