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휴대폰이 없다고?

샌. 2004. 12. 6. 13:15

"휴대폰이 없다고?"

연말이 되어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가끔 듣게 되는 반문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마치 괴짜를 만난 듯한 표정을 짓는다.

현재 국내의 휴대폰 가입자 수가 3600만 명에 달해서 전 국민의 휴대폰 보유 시대가 되었는데 아직 휴대폰이 없다는 것은 의아하게 생각될 만도 할 것이다.

그런데 왜 휴대폰이 없는지에 대한 답을 하려니 궁해질 수밖에 없다. 휴대폰 사용에 부담을 느낄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뭔가 사연이 있는 대답을 바라는 것 같은데, 사실 휴대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 다른 이유는 없다. 워낙 대인 관계가 좁다보니 그 물건이 필요하지 않을 뿐이다. 한 때는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TV나 신문, 컴퓨터 등을 멀리 하기도 했지만 그때의 고집이 아직까지 휴대폰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생활의 전 분야에서 과학과 문명이 주는 단맛을 즐기면서, 일방적으로 과학과 문명을 성토하는 것은 뭔가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연락 수단은 편지였다. 급한 것은 전보를 이용했고, 굳이 전화를 하려면 십 리 길을 걸어나가 우체국에 가야 했다.

중학교 때였다. 친구의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었는데 그 집에는 전화가 있었다. 친구가 촌놈 전화 소리 듣게 해 준다면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주었다. 그때 수화기를 통해 처음 들어보던 기계음의 신기하고 생소한 느낌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대학교 때는 이웃집 전화를 빌려서 신문에 가정교사를 원한다는 아르바이트 광고를 내곤 했다. "학생, 전화 왔어요."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부리나케 달려가서 전화를 받곤 했다.

그러다가 우리 집에 전화가 들어온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것도 아버님이 소위 말하는 빽을 써서 가능했는데, 당시만 해도 가정집에 전화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던 시기였다.

그것이 불과 2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때에 어느 누구가 지금과 같이 초등학생까지도 개인 전화기를 갖고 다니며 자유롭게 통화를 하는 미래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 시절로부터 불과 얼마 지나지도 않은 지금, 이제 사람들은 휴대폰이 없는 세상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다. 그 시절은 이제 호랑이가 곶감 먹던 때가 되었다.

지난 달 아내가 중국에 갔을 때 전화를 거니까 아내의 휴대폰으로 바로 연결되었다. 첨단 시대에 살고 있지만 신기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지구 반대편에 가있어도 언제라도 연결이 되는 편리한 세상이 된 것이다. 나중에는 숨고 싶어도 이 넓은 지구상에서 숨을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휴대폰에 대해 전혀 유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휴대폰은 일부 직종의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신이 내린 선물일 수가 있다. 그러나 휴대폰을 꼭 가지고 다녀야 하는지 회의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무척 많다.

아무 때나 울리는 벨 소리, 의미 없는 수다, 공공장소에서 남의 사생활을 억지로 들어야하는 고역, 그리고 게임에 뺏기는 아까운 시간 등 부정적인 측면도 한 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는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일전에 한 사람을 만났는데 대화 중에 잇달아 울리는 벨소리 때문에 신경이 무척 거슬렸던 경험이 있었다. 그때마다 통화를 하느라 분위기가 어색해지곤 했다. 내가 볼 때는 꼭 전화를 받아야 할 정도로 긴요한 내용도 아닌 것 같았는데, 그런데 그분 입장에서는 걸려온 전화를 안 받을 수 없었는지도 모르다.

휴대폰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즉시적으로 이루어주지만, 반대로 현대인의 자기만의 시간을 앗아가는 주범이기도 하다. 온갖 사람과 기계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자기 혼자만 있게될 때 불안해진다. 고독에 익숙해지지 못한 현대인은 이제 휴대폰의 등장으로 결정적 카운터 펀치를 맞은 셈이다.

어찌 되었든 앞으로 휴대폰은 계속 진화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능이 한 손 안에 들어오는 기계로 변할 것이다. 그때는 휴대폰이 아니라 휴대 만능기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휴대폰이 없어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지만, 거역할 수 없는 제 3의 물결 앞에서 조만간 내 손에도 휴대폰이 들려질 것 같다. 뭐든지 쓰는 사람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거라고 위안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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