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는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나그네는 소유하지 않는다. 그의 짐은 작고, 발걸음은 가볍다.
나그네는 길 위의 사람이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존재를 사랑한다.
나그네는 겸손하고 너그럽다. 그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나그네는 조심스럽다. 그의 언행은 얇은 얼음판을 건너는 사람처럼 조심스럽다.
나그네는 순례자다. 그의 걸음은 삶의 의미로 차있다.
나그네로 살고 싶다.
누구나 주인이 되고 싶어 하는 세상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나그네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
인류가 유목 생활을 떠나 땅에 정착하면서, 땅에다 금을 긋고 자기 소유물을 축적하면서 지금의 문화가 태어났다. 지금 우리가 건설해 놓은 사회는 이해관계와 경쟁과 투쟁으로 얽혀있다. 거기서는 모두가 서로에게 주인이 되려고 한다. 또한 주인이 되고, 일등이 되라고 부추긴다. 그런 사회는 경박하고 천박하다.
자본가나 노동자가 주인이 되려는 기업, 재단이 주인 행세를 하는 학교.... 그래서 요즈음 왜 내 밥그릇을 뺏으려 하냐며 주인 행세를 하려는 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그네는 방관자가 아니다.
그의 마음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으므로 모든 존재와 진정한 관계로 얽혀있다.
나그네로 된 사회는 포근하고 여성적일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인되기를 포기할 때 그 사회는 따스하고 부드러워질 것이다.
한 해가 기울고 찬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우리는 이 지상에 나그네로 찾아왔음을 새롭게 각성하게 된다.
모든 존재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철저히 혼자임을 안다. 이러한 때 나그네는 외로움을 느낀다. 쓸쓸히 혼자서 근원으로 돌아가는 존재들의 모습은 외롭게 보인다. 그러나 그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젠 주인이 아니라 나그네의 마음으로 살고 싶다.
욕심부리며 보따리 마다 가득 채워놓은 짐들은 버리고, 바람처럼 가볍게, 물처럼 자유롭게 그렇게 닮아가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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