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나무들 / 칼머

샌. 2004. 11. 11. 14:30

나무보다 아름다운 시를

나는 결코 알지 못할 것 같다.


대지의 달콤한 가슴에

허기진 입술을 대고 있는 나무


하루 종일 신을 우러러보며

잎이 무성한 팔을 들어 기도하는 나무


여름에는 머리 위에

개똥지빠귀의 둥지를 이고 있는 나무


가슴에는 눈이 내려앉고

또 비와 함께 다정히 살아가는 나무


시는 나 같은 바보가 짓지만

나무를 만드는 건 신만이 할 수 있는 일


- 나무들 / 칼머

 

사람보다는 나무가 더 좋다는 친구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 친구는 꼭 나무를 닮았다. 그의 곁에 가면 숲에 든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의 별명은 물푸레나무이다.

이 친구 따라 나무 설명을 들으며 나도 나무와 많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나무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눈이 떠진 느낌이다.

지금 밖에는 다가오는 겨울을 견디기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버리는 가을 나무들이 서 있다.

그들은 시인이며 철학자며 말 없는 스승이다.

인간이 나무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를 닮은 사람이 많아진다면 세상은살기 좋은 마을로 변하지 않을까?

 

어떤 마을에 안나 바실리예브라는 선생님이 있었어.

부임한 지 이 년밖에 안 되었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지. 그러나 그녀에겐 골칫덩어리 학생이 한 명 있었어. 지각 단골생 서브시킨이라는 아이. 참다못한 그녀는 어느 날 서브시킨을 교무실로 불러 지각하는 이유를 물었어.

그러자 서브시킨이 대답했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매일 1시간 전에 집에서 나오거든요."

그녀는 서브시킨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서브시킨의 등교 길을 함께 나섰어.

서브시킨은 학교 뒷문에서 시작되는 오솔길로 선생님을 안내했단다. 그 오솔길은 주위가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는 숲속이었어. 사람들 손길이 닿지 않는 그곳엔 새들이 재잘거리면서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고, 들판엔 토끼와 사슴 발자국이 찍혀 있었지.

서브시킨과 함께 그 모든 것을 바라보던 안나 선생님은 숲의 고요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놀라움으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단다.

오솔길은 산사나무 주위를 휘돌며 이어져 있었고, 숲은 거기서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 커다란 떡갈나무가 새하얀 옷을 입고 우뚝 서 있었어. 떡갈나무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작은 거울들로 반짝였는데, 그 맑은 거울 하나하나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걸 보고 그녀는 나무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단다.

그런 그녀에게 서브시킨은 나무 밑둥을 파 고슴도치를 살짝 보여 주기도 하고, 또 작은 굴 속에서 잠자는 개구리, 투구벌레, 도마뱀, 무당벌레들을 보여주기도 했어. 그러는 동안 학교에서 출발한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지.

그제서야 그녀는 서브시킨에게 말했어.

"멋진 산책을 시켜줘서 고맙구나. 앞으로 계속 이 길을 통해 학교를 다녀도 좋아."

 

- '겨울 떡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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